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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2코스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걷기를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나는 시점이다 보니 옆지기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내가 생생하다는 말은 아니다. 옆지기의 힘듦을 핑계로 가끔씩 쉬어가고 있는 신세이다. 계단이나 내리막 길을 내려갈 때면 얼굴의 모든 근육이 지렁이를 만들고 있는 듯하다. 해동 용궁사 입구의 모습인데, 이 근처 인기 관광지 답다고 해야 할까?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주말이라고 상상하니, 억! 소리가 난다.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 하는 12 지상이 세워진 입구의 모습이다. 홍콩 어딘가, 마카오 어딘가에서 본모습이다. 중국뿐 아니라 동양권 어디를 가든지 만날 수 있는 모습이다. 하루의 시간대를 나누고, 방향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한 십이간지가 이제는 자신의 띠에 뭔가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내 띠가 어떤 것인지 찾기 위해 "자축인묘..."를 다시 읊는다.
용문석굴이라 적힌 인공동굴, 아니, 출입통로.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용문석굴을 검색하면 5세기 북위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룽먼석굴이 나온다. 그것에 비할바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사찰인 만큼 설치물도 풍부하다. 계단을 따라 쭉 이어져 설치된 석등들. 이른바 108계단, 장수 계단이라 한다. 백팔번뇌를 연상시키는 의도일 듯도 하다.
고려말 공민왕 당시 처음 절을 세웠다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모습은 임진왜란때 소실된 이후 400여 년이 지난 1970년대에 새로 지은 것이라 한다. 유서 깊은 사찰이라기보다는 부산 지역 대표적인 관광지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해동용궁사를 살려주는 것은 사찰의 역사, 참선의 깊이, 이런것 보다는 아름다운 절경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해파랑길은 해동용궁사 경내로 들어 가지는 않고 중간에 "해변 산책길"로 빠진다.
불상 앞에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무엇인가를 빌었을 작은 깔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해동 용궁사의 해변 산책길은 국립 수산 과학원 외부 벽을 따라서 해안가로 이어진다.
해안 바위 위에 작게 올려진 돌탑들. 세찬 바다 바람에도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가 이 돌탑을 쌓았던 그 누군가가 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돌탑을 쌓으며 간절함으로 가졌던 그 소망을 더욱 굳건하게 다시 세울 수 있을지......
국립 수산 과학원 담장을 따라 걷다가 뒤를 돌아본 모습. 바위 해안 너머로 해동 용궁사가 멀리 보인다.
국립 수산 과학원 앞쪽으로는 최고의 전망 지역에 자리 잡은 힐튼 호텔이 보인다. 공식 이름은 "아난티 힐튼"으로 건물 주인은 국내 레저 그룹이고 운영은 글로벌 호텔 체인인 힐튼에서 맡는 구조하고 한다. 비즈니스의 세계란, 돈을 벌고 쌓는 사람들의 세계는 참으로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수산 과학원 앞바다 트라이포트 더미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새들. 태양광 패널도, 트라이포트도 인간의 의도와 새들의 자연스러운 본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인다.
국립 수산 과학원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들꽃.
이름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계요등(鷄尿藤)이란 식물로 보인다. 닭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식물 분류로 보면 더 재미있는데 계요등의 식물 분류가 꼭두서니과에 속한다. 꼭두서니는 우리나라에서 붉은 물을 들일 때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뿌리를 사용한다. 꼭두 색이 옛말로 붉은색이었다고 한다.
수산 과학원과 힐튼 호텔 사이의 동암항. 2코스 목적지인 대변항까지 4km가 남았다. 몸 상태가 좋다면 1시간이면 빠른 걸음으로 충분하겠지만, 이제는 너무 멀어 보인다. 사실 옆지기는 수산 과학원 담장에 설치된 벤치에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나의 몸 상태도 엄청 지쳐 있기는 하지만, 거의 환자 수준으로 누워 있었던 동반자가 다시 배낭을 메고 걷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동암항의 모습. 부산시 기장읍 시랑리에 위치한 포구로 인근이 오시리아 핵심 지구라서 개발의 폭풍을 피해서 이곳이 포구로 조용히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이 오시리아 해안 산책로의 시작점이다.
오시리아 해안 산책로는 동암항에서 오랑대 공원을 지나는 2.6Km에 이르는 쾌적한 걷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길이 잘 포장되고 정리된 만큼 사람들이 많다는 단점은 있지만 아름다운 길인 만큼은 확실하다.
다행인 것은 힐튼 호텔 앞을 지나가기는 하지만 호텔을 찾은 사람들도 해안 산책길을 걷는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호텔 수영장에서 물에 몸을 담근 상태로 내려다 보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조금 있으면 닿을 숙소에 대한 기대로 힘을 내고 있다.
길지 않은 풀밭 사이로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 이 산책로에서 만난 두 분의 남성분이 있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 산책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계셨다. 아마도 공공 근로를 하고 계신 분들로 보였다. 이런 산책길에 음료수 캔, 플라스틱 컵을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호텔 앞 산책길인데 왜 공공 기관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점도 들었다.
아무튼 호텔 앞의 바다, 바위, 풀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책을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을 넘으면서 길은 오랑대 공원으로 이어진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니 오늘 목적지인 대변항이 멀리 보인다. 우앙, 얼른 가서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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