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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차마르틴(Madrid Chamartín)역에 올라오니 저희처럼 배낭을 메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저희가 탈 기차는 13시 05분 루고(LOGO)행 기차입니다. 이 기차는 사연이 조금 있습니다. 한국에서 렌페를 통해 기차표를 예매 했는데 여행 출발하기 몇주전에 메일이 하나 날라 왔습니다. 공사 때문에 중간 구간을 버스로 이동한다는 내용이었죠. 표를 반환하고 비행기로 이동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기차를 예매 했는데 중간에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탄다니? 조금 황당했죠. 그렇지만 어떻게든 목적지인 사리아까지 데려다 준다니까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행 출발 직전에 원래 일정대로 기차를 운행한다는 메일이 다시 날라 왔습니다. 다행이었죠. 그런데 기차를 타고 가다보니 실제로 공사중인 구간도 있었고 산악 구간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경관은 장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릉가는 V-Train을 타본 분이라면 상상할 만한 그 경관에 못지 않은 경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역 주변을 잠깐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역 주변 풍경은 마드리드 외곽역 답습니다. 




프랑스가는 기차도 있고, 역 한쪽 끝에서 반대쪽까지 한참 걸릴 정도로 큰 역입니다.



역사 서쪽에는 고층 빌딩 4개가 서있는 콰트로 토레스 비즈니스 지구(Cuatro Torres Business Area)가 있습니다. 비즈니스 빌딩과 호텔들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 주차장 벽에 그려진 벽화입니다. 색상은 마드리드 시내 공원에 있던 낙서들과 비슷한데 여기는 작품이네요.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 입구에는 옛 침목으로 만들어 놓은 설치 작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나무 침목이 아니라 콘크리트 침목을 사용하고 있죠. 수명이 길어 관리 비용을 줄여 줄 뿐만아니라 철도의 고속화에도 적절하다고 합니다. 그런 철도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여기의 커피 가격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커피 가격은 부담이 없고 맛은 좋고 만족감이 높았던 품목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 카페에서 폼나게 카페라떼를 마셔도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훌륭한 커피가 2천원이 않되는 가격이니 유로화 동전 쓰기에 딱이었습니다.



저희가 탈 기차의 플랫폼이 표시 되기를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무료 인터넷을 잡아 카톡으로 가족에게 안부도 보내며 설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희가 앉아 있던 바로 앞 의자에 큰 배낭을 가지고 있는 두 여성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저희 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왠지 진지하고 비장함이 느껴지는 표정들...... 


그런데, 이분들을 기차 안에서도 만날줄이야......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저희는 이분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두 여성분중에 한분은 대합실에서 부터 기차 안에서까지 갱지로 만든 노트에 빽빽하게 뭔가를 쓰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스마트폰 사진을 둘러보고, 가끔은 다른 메모도 들춰 보면서 ...... 아마도 여행 작가나 전문 블로그를 작성하는 여행사 직원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았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옆지기와 저는 "너희는 뭐하냐?"하는 무언의 잔소리를 듣는 느낌이었죠. 결국은 배낭을 뒤져 수첩을 꺼내서 펜을 들게 했습니다.


인연일까 한시간전부터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여성 두분이 우리 바로 옆 좌석에 앉았다. 역 내부를 서성이며 뭐가 있나 둘러 볼 때도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을 구입해다가 따뜻하게 속을 채운 시간에도 노란색 갱지 노트에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던 분이었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지, 일기를 쓰고 있는지, 오래전 부터 구상해온 작품 창작에 한창이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부부간에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던 우리가 노트와 펜을 들게한 강력한 힘을 가진 분들이다.





장거리 기차인 만큼 승차 절차가 있었습니다. 짐은 공항처럼 엑스레이 투시 장비를 통과시켰고 한국에서 미리 인쇄해간 티켓은 바코드 리더기로 검사했습니다. 한국에서 인쇄해간 렌페 티켓은 따로 교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LED 표시가 조금 선명하지 않는 것이 흠이기는 한데 우리나라 기차의 몇호차라고 하는 것은 "꼬체, COCHE"라고 표시된 부분입니다. 좌석번호는 티켓의 "Plaza"가 좌석번호입니다.




우리나라 KTX가 프랑스 TGV를 만든 알스톰에서 온 것이라 그런지 기차 차량은 KTX와 비슷했습니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철도 차량을 많이 만드는 CAF사는 TGV를 만든 알스톰과 기술 제휴를 했다고 하네요. 승객들은 일반인들도 있었지만 배낭을 둘러멘 순례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동지들을 만난 반가움이 있었습니다.



13:05에 출발한 루고(LUGO)행 기차는 스페인의 들판과 터널들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있습니다.



마드리드 차마르틴 역에서 기차가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 건물들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장관으로 다가옵니다. 두눈을 앞도하는 장관.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장관에 그저 탄성을 꿀꺽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차가 출발한지 10여분이 지난 시점에 기차는 시속 200Km에 육박하는 속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순례길 가는 길목인 사리아까지 태워주는 이 기차가 이런 영화와 같은 차창 밖 풍경을 제공할 지는 상상도 못했는데 크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마드리드에서 산티아고 공항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사리아까지 가야 했는데 기차를 타기로 한것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사리아까지 가는 렌페 기차는 서비스도 좋았습니다. 출발시점에는 비행기처럼 개인 이어폰을 나눠 주었고 주기적으로 커피와 간식을 판매하는 매점도 있었기 때문에 긴 기차 시간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는 풍경들, 야간 기차가 없어져 아쉬웠던 마음은 자리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풍력 발전기, 너무 이쁜 그림들의 연속입니다.




첫 번째 정차역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시골역도 이쁘고 역 근처 마을도 그림입니다.



들판을 가로 지르는 높다란 교각이 기차가 서서히 산악 지대로 들어서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멀리 산등성이에 들어선 풍력 발전기.




산악지대에 들어선 기차가 굴곡을 그리며 또다른 창밖 풍경을 만들어내지만 사진으로 담아 내기에는 한계가 있군요.




기차의 좌석은 서양인 체형에 맞추어서 그런지 숏다리인 저희에게는 널널 했습니다.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차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저희 자리 바로 앞 좌석에는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성 한분과 20대 숙녀가 함께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언뜻 언뜻 대화가 들리더군요. 가끔 귀를 쫑긋해서 대화를 들어보니 두분은 오늘 좌석에서 처음 만난 분들인데 모두 순례길을 나선 길이었습니다. 남성 분은 영어를 사용하시는 분인데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셨는데 여성이 어떻게 스페인어를 배웠냐고 물어보니 듀오링고 앱으로 배웠다는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필자도 듀오링고를 통해서 스페인어를 독학하고 있는 터라 정말 반가워서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는......




기차가 출발한지 4시간 정도 지날 무렵 호수인지, 강인지 모를 또다른 비경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산등이성이를 달리는 기차가만이 줄 수 있는 풍경입니다.




기차는 4시간 40분 여를 달려 오우렌세(Ourense)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북의 영주역과 같은 곳입니다. 태백산맥을 넘어 강릉으로 가는 영동선으로 갈아타기 때문에 서울이나 천안쪽에서 내려온 기차는 영주역에서 오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분들은 당황하기도 합니다. 마드리드에서 출발하여 사리아를 거쳐 루고까지 까지 가는 기차로 이곳 오우렌세(Ourense)에서 방향을 바꾸어 본격적인 산악 열차로 탈바꿈합니다. 오우렌세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는 갈리시아 지방의 주도로 갈리시아 지방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고 합니다. 미뇨(Miño)강을 건너는 철교에서 보이는 오우렌세도 참 아름다운 도시로 보입니다. 여름에는 30도, 겨울에는 12도 정도의 지중해성 기후를 가진다고 합니다. 살아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오우렌세는 스펜인 북서부의 교통 중심지로 저희 기차는 오우렌세에서 방향을 틀어 강 바로 옆을 따라 산을 오릅니다. 여기서부터의 경관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강추하는 여정입니다.



오우렌세 역의 풍경도 수많은 기차가 대기하는 우리나라 영주역의 풍경과 비슷합니다.




강 바로 옆을 따라 산을 오르는 기차는 창밖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선물하지만 기차 방향이 바뀌어 창밖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내기에 어렵네요.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출입구 밖으로 나가 풍경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으로 모두 담아내기 어려운 환상적인 풍경. 배낭 여행자에게 주는 선물이었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높이의 교각 아래를 지납니다.




미뇨(Miño)강을 따라 기차는 고도를 조금씩 올립니다.




미뇨(Miño)강을 가로 질러 1960년대에 세워진 수력발전소(Central Hidroeléctrica de Velle)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미뇨(Miño)강은 이 기차의 종착지인 루고(LUGO)에서 발원하여 340Km를 흘러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강으로 하류에서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을 이룹니다.




기차에서 두번정도 집중해서 본 플라멩코(flamenco)를 소재로한 영화. 영화라기 보다는 토크쇼 형식으로 여러 세대에 걸친 플라멩코 기타 연주자의 공연과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컨텐츠였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플라멩코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 내용이었습니다. 잘 알아 듣지는 못해도 기차에서 나누어준 이어폰으로 들린 음악이 들을만 했기 때문이겠죠? 플라멩코는 문외한인 저는 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춤(Baile, Bailaores de flamenco)과 노래(Cante, Cantaores de flamenco), 기타 연주(Toque, Guitarristas de flamenco)로 구성되는 복합적인 예술이었습니다. 스페인 민속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되어 미국와 일본에서 특히 인기가 높고 일본의 플라멩코 아카데미는 스페인보다 많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드디어 기차 전광판에 저희가 내릴 목적지인 사리아(SARRIA)가 나타났습니다. 현재 시간으로 18:50이 넘어가고 있으니 거의 6시간 가까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넉넉한 자리에 지루할 틈이 없었던 즐거운 기차 여행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앞길이 기대가 되는 좋은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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