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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 팔레(Petit Palais) 2층 관람("파리 걷기 여행기 - 29. 쁘띠팔레, 파리 시립 미술관 2층" 참조)이 끝나면 계단을 내려가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부터 17~19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 카르포(Carpeaux, Jean-Baptiste)의 "중국인 남자, Le Chinois". 1872년작 석고상. 카르포는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와 근대의 로댕을 이어주는 거장이라고들 합니다. 실제로 카르포는 미켈란젤로를 신의 수준으로 떠받들었다고 합니다. 그가 만든 작품들에는 표정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인데 위의 중국인 남자 조각 또한 표정이 살아 있는 듯 생생 합니다.
폴 뒤부아(Paul Dubois)의 "이브, Ève naissante". 1873년작 청동상.
18번 전시실에 있는 1900년대 파리의 예술품. 위의 그림은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의 "단검:해초, Dagger: seaweed". 1900년에 제작한 청동 작품으로 미역 귀와 줄기를 단검의 손잡이와 몸체로 삼은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합니다.
유진 그라셋(Eugène Samuel Grasset)의 베버가(Maison VEVER)를 위한 핀 작품. 그라셋은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장식 예술가로 아르누보의 개척자라 불리는 작가입니다. 작품의 예술성도 뛰어 나지만 흥미로운 점은 위 작품의 출처인 베버가와 대한민국과의 인연입니다. 베버가는 가업으로 보석상 또는 골동품 수집상을 했는데 그 가문중에 앙리 베버(Henri Vever)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를 골동품시장에서 구입하였다가 그의 사후에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도서관 서고에서 잠자고 있던 직지를 도서관에서 근무하게된 한국인 박병선 박사가 발견하여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앨버트 바돌로메(Albert Bartholomé)의 "우는 소녀, Weeping Girl". 1894년 작품으로 오르세 미술관에는 동일한 작품이 청동상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장식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장식장 또한 범상치 않습니다. 예술입니다.
뒤에 있는 그림은 마리우스 애비(Joseph Marius Jean Avy)의 "하얀 무도회, The White Ball". 1903년작 유화. 마르세이유 출신의 작가가 당시 상류층 소녀들이 성인으로 진입하기 전에 어머니나 선배로부터 춤을 배우는 장면입니다. 큰 피아노와 대비되는 밝은색의 드레스가 참 아름답습니다. 앞의 작품은 폴 트루베츠코이(Paul Troubetzkoy)의 "어머니와 아이, Mère et enfant". 러시아의 로댕이라 불리는 작가의 아이를 품은 어머니의 조각상과 어머니로부터 춤을 배우며 성인의 반열에 들어서는 소녀들을 그린 그림에서 부모의 마음을 아련하게 생각해 봅니다.
루이 에르네스트 바리아스(Louis-Ernest Barrias)의 "베르나르 팔리시, Bernard Palissy". 1877년 작품으로 주인공이 들고 있는 반원형의 접시는 러스틱웨어(rusticware)라 불리는 것으로 죽은 동물을 세밀하게 박제하듯이 만든것입니다. 팔리시는 중국 도자기의 유약을 재현하기 위해서 전 재산을 탕진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고 합니다. 다양한 생물을 접시에 남겼는데 그 기법은 명확하게 알려진바가 없다고 합니다. 위그노 교도였던 팔리시는 앙리 3세 당시의 혼란스런 정치 지형 가운데서 귀족들과 법원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16인 위원회의 조치에 따라 바스티유에 갇혀 지하 감옥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과 독특한 그의 작품 세계는 이러한 조각상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조명되었나 봅니다.
앙리 조제프(Boichard, Henry-Joseph)의 "베이야르 기사의 용기, La générosité de Bayard". 1827년작 유화. 화려한 의자가 있어 귀족적인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중국의 도자기. 마치 만화책 처럼 칸칸으로 무슨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이들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 까요? 유럽인들에게 동양의 도자기는 나름의 끌리는 매력이 있었겠지요. 그러니 베르나르 팔리시와 같은 사람이 중국 자기의 유약을 알아내기 위해서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치른 것도 이해할만 합니다.
우측의 두 작품은 가브리엘 메취(Gabriël Metsu)의 "거울 앞에 있는 여자, Femme au miroir"와 "여자와 처녀, Femme au virginal". 1662년경의 유화로 네덜란드 작가의 작품입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채광을 배경으로 서 있는 조각상. 뒤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의자가 있는데 루브르와 비교하면 정말 조용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공간입니다.
마인데르트 호베마(Meindert Hobbema)의 "물 방앗간, The Water Mills". 1664-1668년경의 유화. 역시 네덜란드 작가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고 합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황금 시대, Dutch Golden Age"라 불릴 정도로 유럽 교역의 중심지 였고 이때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풍경화와 정물화를 주문하여 집을 장식하는 과정에서 관련 미술도 발전했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귀금속 예술. 귀족층이 누렸을 공예품들을 우리나라의 고려때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게 됩니다. 고려가 서양의 르네상스보다 이른 시기이고 종교 배경이 불교라는 차이가 있지만 그 화려함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침반과 시계와 같은 단순 장식용이 아닌 실제 사용하는 도구에 적용된 장식도 화려합니다.
지금도 동작하고 있다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계. 최초의 기계식 시계를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서 먼저 만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유럽에서 최초의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 것은 13세기 후반입니다. 기계식 시계가 등장한 다음 14세기에는 교회, 성당, 공공 기관등에 공공 시계로 설치 되었고 그 당시의 시계는 오차가 커서 해시계나 물시계등을 기준으로 조정이 필요했지만 17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 오차가 10초 정도로 기술적 진보기 있었습니다. 13세기만 해도 동양의 문명이 서양을 압도하고 있었지만 이후 서양 제국의 세계 패권 제패까지 이르는 밑바탕에는 이 기계식 시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초기 시계공은 금속을 다루는 사람들이었고 군사력의 획기적인 차이를 이룬 대포 또한 이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입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주장입니다.
1490-1500년경의 템페라화. "음악 천사와 함께 있는 마돈나와 아이, Madonna and Child with Angel Musicians"
16세기경의 작품으로 우측은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세례 요한과 성모 마리아, Vierge et Saint Jean adorant l'Enfant".
쁘띠 팔레, 파리 시립 미술관에서는 1900년대 파리부터 19세기, 18세기, 17세기, 16세기, 르네상스와 중세에 이르는 시대별로 작품들을 풍성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내부 정원에서 의자에 앉아서 여유를 즐길 수도 있고 게다가 무료이니 파리 여행을 한다면 이곳은 필수 코스입니다. 세느강변의 산책로, 샹젤리제 거리의 화려함도 근처에서 즐길 수 있으니 조용한 파리 걷기에 이만한 공간이 없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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