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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오면 콩코드 광장을 거쳐서 쁘띠 팔레로 향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을 나서면 바로 만날 수 있는 뷰가 바로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 입니다. 드디어 세느강 너머 에펠탑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오랑주리에서 콩코드 광장으로 가려면 미술관으로 왔던 튀일리 정원 쪽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오랑주리 미술관이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튀일리 정원을 내려다 보는 풍경이 특별합니다. 팔각 연못(Bassin Octogonal) 주변의 거대한 공간으로 각자의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모형과 같습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튀일리 정원을 나오면 만날 대회전차(The Big Wheel, 라 그랑 루, La Grande Roue)를 돈을 내고 탈것인지 말것인지를 고민할 것으로 생각 했었는데 막상 현재에 도착해 보니 대회전차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알아보니 바로 한달전에(2017년 5월) 해체되었다고 하는 군요. 파리에 관람차가 처음 등장했던 것은 1900년 엑스포 때문이었는데 그 관람차는 1920년까지만 운행되었다고 합니다. 최근까지 있었던 "라 그랑 루"는 2000년을 기념하면서 세워졌다가 최근에 해체된 것인 게지요. 만약 있었다면 탈지, 말지를 고민 했을텐데......고민 할 필요없이 바로 콩코드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콩코드 광장의 남쪽에는 바다의 분수(Fontaine des Mers)가 북쪽에는 강의 분수(Fontaine des Fleuves)가 대칭으로 자로하고 있습니다. 콩코드 광장은 프랑스 대혁명 전에는 루이 15세 광장으로 혁명 당시에는 혁명 광장(Place de la Revolution)으로 불리다가 1795년, 공포 정치가 끝난 후에 콩코드 광장 (Place de la Concorde)이 되었다고 합니다. 분수는 1830년의 7월 혁명이후에 건축가 자크 이그나스 이토르프(Jacques Ignace Hittorff)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원래는 4개를 만들려고 했는데 물을 끌어오는 것이 여의치 않아서 2개로 축소했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처럼 강의 분수는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흐르는 론강(Rhône)의 신과 북해로 흐르는 라인강(Rhin)의 신을 나타내는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고 가운데로는 신들이 받치고 있는 분수가 있습니다.



강의 분수 가운데에서 분수를 받치고 있는 신들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프랑스의 주요 수확물인 밀, 포도, 꽃, 과일입니다.



또다른 강의 신. 분수를 감안한 조각상도 멋있지만 물이 떨어지는 모습과 함께하는 조각상은 생동감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주요 수확물을 들고 있는 신들의 모습.



광장의 중앙에 있는 오벨리스크(Obelisk). 상단에 새겨진 것은 람세스 2세(Ramesses II)의 업적을 새긴 것이라 합니다. 19세기에 이집트에서 프랑스에 2개의 오벨리스크를 선물로 주었는데 당시 기술로는 옮기기가 너무 무거워서 하나만 가져온 것이라 합니다. 받침대에는 오벨리스크의 4년에 걸친 운송 과정이 그려져 있습니다. 맨꼭대기에 있는 피라미드는 원래는 BC6세기 경에 분실 된것으로 추정하는데 1998년에 복원한 것이라 합니다. 



받침대에는 19세기에 이집트에서 프랑스까지 227톤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를 운송하는데 사용한 도구들을 그려 놓았습니다.



오벨리스크에는 람세스 2세의 업적을 기리는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오벨리스크는 그노몬(gnomon) 또는 해시계 역할을 해서 바닥에 새겨진 숫자와 선을 따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에투알 개선문과 샹젤리제 거리, 튀일리 정원을 지나 카루젤 개선문과 라데팡스로 이어지는 "파리 역사의 축"(Te line of the historic axis of Paris)에 위치하는 나름의 상징이 있습니다.



콩코드 광장에서 바라본 샹젤리제 거리의 가로수들. 가로수들을 무슨 아이스바처럼 직사각형으로 가지치기 한것이 인상적입니다.



기욤 쿠스투(Guillaume COUSTOU)의 "마부에 의해 길들여지고 있는 말, Horse Restrained by a Groom". 마를리의 말들(Marly Horses)이라고도 불리는 이 조각상은 루이 15세가 마를리 중정을 꾸미기 위해 쿠스투에게 주문한 것으로 혁명 과정에서 파손되었다가 현재 위치인 상젤리제 거리 끝에 설치되었으며 1984년에 공해등의 이유로 홰손 방지를 위해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지금 있는 것은 복사본이라 합니다.



콩코드 광장에서 쁘띠 팔레 가는 길에 만난 넓직한 샹젤리제 거리의 인도. 가로수를 도로쪽은 직사각형으로 가지치기 했지만 인도 안쪽 나무들은 손대지 않은 것이 눈에 들어 옵니다. 우리나라도 파리의 가로수 가지치기를 벤치마킹해서 2009년부터 지방자치 단체 나름으로 시행하고 있고, 잠실 종합운동장 가로수, 수원 팔달구 정조사 거리등등 여러 곳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잎이 본격적으로 올라오기 전에 "강한 가지치기"를 보통 수행했는데, 직사각형 형태로 가지치기 하면 겨울에 횡한 느낌도 덜하고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파리 걷기를에서 이따금 만날 수 있는 왈라스 분수(Wallace fountain)입니다. 많은 분수들이 장식용이라면 이 분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인도에 위치하여 식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습니다. 파리에 80여개가 세워졌는데 위에 그림과 같은 모델을 포함하여 총 4개의 모델이 있다고 합니다. 파리외에도 프랑스 전역을 비롯한 전세계에 설치되고 있습니다. 파리의 경우 동파 방지를 위해서 3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운영한다고 합니다. 


1870년 아버지에게 큰 재산을 상속 받은 영국 출신의 왈라스(Richard Wallace)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파리 시민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결심했고 1871년 수많은 희생자를 낸 파리 코뮌과 포위된 파리의 심각한 상황에서 병원을 설립해서 희생자들을 도왔고 물보다 술의 가격이 쌀 정도로 청전부지를 치 솓는 물값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료로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분수를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 비용은 왈라스가 댄 것이고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부자들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거대 기업은 편법 증여를 당연한 것인양 뻔뻔스럽게 하고 있고 그냥 적법하게 상속세를 내면 칭찬을 받는 현실이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마를리의 말 조각상이 세워진 곳 부터가 파리 공원(Jardin de Paris)입니다. 지도에도 잘 나타나지 않는 거의 이름 없는 공원이지만 "파리 걷기"를 수행중인 배낭족에게 공원은 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쉼터입니다. 한불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웠다는 서울 목동에 있는 파리 공원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아무튼 이 공원의 역사는 16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앙리 4세의 부인이자 루이 13세의 어머니인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édicis)가 결정을 내릴때만 해도 습지대 였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서 쁘띠 팔레 가는 길까지 공원이 이어집니다. 조금은 한적하게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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