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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루이팡에서 지우펀으로 올라갈수록 시야도 점점 더 넓어져서 가깝게는 선아오 항구(深澳漁港)가 보이고 머리는 지룽섬(基隆島)도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에서 벗어나서 바다를 보니 마음이 활짝 트이는 느낌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지우펀 마을 입구(Jiufen Old Street, 九份老街)가 아니라 그 이전 정류장인 지우펀 파출소 앞에서 하차하여 마을길을 걷기로 했다. 파출소 벽에 새겨진 九份(지우펀)이라는 글씨가 우리를 맞아준다. 빛날 빈(份) 한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지만 중국에서는 사람의 몫을 의미한다고 한다. 지우펀(九份)이라는 마을의 이름도 단지 아홉 가구가 살던 산골 마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타이베이 대종주 이후로 거친 계단을 오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시 계단의 굴레 속으로 들어간다. 고색이 짙게 베인 계단 골목길은 지우펀이라 새겨진 홍등으로 장식해 놓았다. 오전 9시 30분이 넘어가는 시각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골목길 곳곳에는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상점들로 빼곡하다. 이곳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가오나시"를 소재로 한 상품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동남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목줄 없는 개는 졸린 듯 지나가는 사람도 그냥 개무시다.
지우펀이라 새겨진 홍등의 행렬은 골목길의 정상부로 갈수록 더 많아진다.
애니메이션이 이곳을 그대로 옮겨 갔는지, 아니면 거꾸로 애니메이션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현실로 옮겨 놓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비싼 비용을 내고 예약하며 찾는 찻집 아메이차루(阿妹茶樓)이다.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우롱차를 마신다고 들 한다.
일제강점기 직전에 발견된 금광으로 아홉 가구만이 살던 마을은 대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마을이 되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그들에게는 열악한 채굴환경으로 인한 질병, 그리고 술과 여흥으로 위안을 삼는 것으로 생겨난 수많은 술집과 식당이 밝히는 화려한 홍등이 이곳 모습을 대표하게 되었다. 금맥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으면서 그 화려함이 사라졌다가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금은 많은 이들이 찾고 싶은 찻집의 홍등 거리이지만 홍등의 과거에는 아픔이 서려있다.
아직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골목길 뷰를 감상하기도 좋고,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의 경관도 차분하게 즐길 수 있었다. 지우펀으로 들어오는 도로부터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면 선아오 항구와 지룽섬이 좀 더 가깝게 보이지만 멀리 바다에서 깊게 들어간 지룽 시내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지우펀의 동쪽으로는 지룽산(基隆山)이 버티고 있는 형세이다.
정해진 길이 없는 여정에서 골목길을 걷다가 사원 지붕을 보면서 사원 쪽으로 이동해 보니 성명궁(聖明宮)이라는 사원이었다. 홍콩이나 마카오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원이다.
마을 건너편 동쪽 언덕에는 작은 집들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있었는데 루이팡의 공원묘지였다. 한때는 작은 홍콩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했던 곳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아 들어오던 곳이었지만 사람의 삶에는 늘 죽음이 따라오는 법, 주거지와 별로 떨어져 있지 않은 공원묘지의 모습에 묘한 감정이 찾아온다.
우리는 지붕 아래에서 지붕 위 고양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며 바라보고 있지만 고양이는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ㅠㅠ. 지우펀 마을 입구(Jiufen Old Street, 九份老街) 정류장을 향해서 골목길을 빠져나가는데 골목길로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들리는 한국 아저씨,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와 이들을 상대하는 가게들의 호객 소리에 카메라를 끄집어낼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왜 사람들이 우스개로 이곳을 지우펀이 아니라 지옥펀이라 하는데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지우펀 마을 입구(Jiufen Old Street, 九份老街)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다음 여정지인 황금 박물관으로 향한다. 재미있는 것은 정류장 바로 옆으로는 거대한 지붕을 가진 지우펀 샤하이 성신사(九份霞海城隍廟)라는 사찰과 함께 작은 길을 사이로 지우펀 교회가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대만 기독교 장로 교회란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합쳐도 인구의 4%가 될까 말까 한 나라인데 이런 산중에 교회가 있다는 것이, 그것도 사원과 나란히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 만큼 지우펀에서 황금 박금관으로 가는 시내버스는 자주 있었다. 거리도 멀지 않다. 진과스(金瓜石) 표지판을 보고 버스를 타면 된다.
황금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예전에 이곳 진과스(金瓜石)와 타이베이 시내를 오갔던 시내버스를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예매한 바우처를 가지고 입장한다. 따로 티켓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고양이 조형물을 세워둔 식당 앞에 고양이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으니 주인이나 손님이 먹을 것을 주는 모양인데, 아무튼 독특한 그림이다. 원래는 이곳에서 다른 이들처럼 광부 도시락을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들도 필자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아주머니들이 바우처를 확인하시고 손목에 도장을 찍어 주는 것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마도 동네 주민을 직원으로 채용한 모양이었다. 관람 시작은 벽면의 영상에서 휴대폰 앱을 통하여 광물을 찾는 전시물 시작했다. 역시 신문물에 익숙한 아들 덕분에 이것이 뭐 하는 물건인지 빠르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산속에 무수하게 뚫린 터널들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조형물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겹친다.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목숨을 걸고 작업 환경도 좋지 않은 저 터널로 들어갔을 것이고, 2차 대전의 풍랑 속에서 일본군에게 잡혀 포로로 끌려온 누군가는 죽음을 위협하는 일본군의 총칼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저 터널에 들어갔을 것이다. 첫 건물 관람을 짧게 끝내고 건물을 옆으로 돌아서 관람을 이어간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벽면을 바라보면서 길을 이어간다. 한때는 일본군 주도로 그리고 한때는 현지인 주도로 금을 캐던 시절의 이곳을 상상해 본다. 고금을 불구하고 사람에게 일확천금의 망상은 마약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개미가 주인공인 동화를 언급하지 않아도 일확천금의 망상은 사람의 영혼을 태워 버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황금 박물관은 옛 흔적들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외국인 포로를 비롯한 수많은 희생자의 노고는 누가 위로해 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금을 비롯하여 일본이 대만에서 수탈해 간 수많은 물자와 그들이 행한 폭압을 생각해 보면 일본에 우호적인 대만의 문화가 신기하기도 하다. 혹자는 대만이 네덜란드, 스페인을 비롯한 외세의 지배가 많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에서 받은 배상금으로 대만에 상당한 투자를 하면서 첫 식민지인 대만에 공을 많이 들였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금(金)을 커다랗게 새겨 놓은 전시실로 들어간다. 손목에 찍힌 도장을 보여 주면 들어갈 수 있다.
갱도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데 1백여 미터 들어간다고 한다.
광부들의 소지품 전시를 보니 우리가 어린 시절 사용했던 도시락의 두 배 크기인 커다란 도시락도 인상적이지만, 명패를 보니 짠한 마음이 든다. 미니어처로 당시의 현장을 재현해 놓았는데 그냥 보아도 위험 천만한 현장이다.
갱도에 침목을 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린 시절 강원도 무슨 탄광에서 사람들이 매몰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렸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여러 가지 암석을 보면서 전시실을 나가려는데 외국인들이 금괴 앞에 모여 소란스럽다. 220Kg짜리 순금 금괴라는데, 기네스북에도 올라갔다고 하지만 진짜 금이라니 그렇구나 하지 금 장신구 하나 달고 있지 않은 필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ㅎㅎ
전시실 바깥으로 나오니 동쪽으로 지룽산이 위엄 있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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