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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읍내로 들어온 서해랑길은 부안군청을 출발하여 석정로 도로를 따라서 석정문학관에 이른다. 석정문학관 앞을 지나면 작은 고갯길을 하나 넘어서 30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고 봉황교차로 옆의 길을 따라 이동하여 상리마을을 지난다. 백로와 왜가리 떼가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상리마을 앞산을 지나면 신흥마을에 닿고 쌍구마을을 지나서 고마제 호수 주변을 걷는다.

 

5월 중순을 지나 5월 말로 향하는 계절의 오후의 햇빛은 강렬하다. 여름이 벌써 다가온듯하다. 49코스에 이어서 부안군청에서 50코스 걷기를 시작한다.

 

부안군청 입구에는 부안의 역사를 소개하는 부안역사문화관도 자리하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부안금융조합의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라 한다. 부안 군청을 빠져나와 석정로를 향하는데 정말 오래 오래간만에 공중전화 부스를 만났다. 태양광 공중전화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활용되는지는 모르겠다. 외국에서는 태양광 공중전화박스를 활용하여 솔라박스라고 하여 공중전화부스에서 휴대기기를 충전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도 있다. 급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할 수도 있겠다.

 

석정로 가로수길이 일품이다. 역시 도시 경관은 나무가 핵심이다. 가로등에 화분도 매달아 놓고 부안의 주요 명소를 소개하는 사진도 걸어 놓았지만 눈길이 가는 것은 녹음이 우거진 가로수도 마로니에라고도 불리는 칠엽수이다. 가로수길을 따라서 선은 삼거리까지 북쪽으로 이동한다.

 

마로니에 가로수길을 따라 올라온 길은 석정문학관 쪽으로 우회전하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다.

 

부안 출신의 시인 신석정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석정문학관 앞을 지난다. 일반인에게는 널리 알려진 시인은 아니지만 그의 대표작을 읽어보면 시인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진다. 일제 강점기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한 결기가 인상적이다. 이름은 많이 알려지고 문학계에 그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나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창씨개명한 누군가와 비교된다. 신석정의 대표작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를 옮겨 적어본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 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인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 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던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 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전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 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 하는 애기의 잠덧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인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이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석정문학관 앞을 지난 길은 마을 골목길을 가로질러 고갯길을 넘는다. 집 울타리 나무에 포도 덩굴을 정성스레 엮어놓은 주인장의 정성이 엿보이는 집도 지난다.

 

마을 뒤 고개를 넘어가는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공간인지 우거진 풀숲을 통과해야 하지만 이런 구간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생명의 숨구멍을 막아버린 길이 아니라면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자연스레 길이 없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멀리 고개 아래로 보이는 국도를 향해서 내려간다.

 

고개를 넘으며 길은 부안군 부안읍에서 동진면으로 넘어간다. 30번 국도 아래를 통과한 길은 하얀 찔레꽃과 노란 금계국의 환영을 받으며 봉황교차로 인근의 길을 걷는다. 

 

길은 국도변을 벗어나 상리마을로 들어선다.

 

상리마을을 빠져나가자 마을 앞 숲에서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백로와 왜가리 같은 여름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사람이 나무 아래로 지나가면 침입자로 여기는지 더 요란하게 울어대는 것 같다.

 

문제는 새들의 분변으로 인해서 소나무들이 말라죽고 밤낮으로 울어대는 새소리로 주민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인데, 의외로 주민들 상당수는 백로를 길조로 여기며 환영하는 분위기인 모양이다. 

 

상리마을을 지나온 길은 신흥마을을 거쳐간다. 버스 정류장을 품격 있게 지어 놓았다.

 

동진남로 도로를 따라서 얼마동안 남쪽으로 걷던 길은 쌍구마을에서 마을길로 들어가 고마제 저수지로 향한다.

 

쌍구마을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 고마제 저수지에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마제윗길 도로를 서쪽으로 따라가다가 호수 산책로로 진입한다. 입구에서 샤스타데이지가 우리를 밝게 맞이한다.

 

고마지, 동고지라고도 부르는 고마제는 1950년대 말에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이다. 주말을 맞이하여 많은 강태공들이 찾고 있었다. 연꽃이 피는 여름이 아직 오지 않아서 꽃은 볼 수 없지만 물 위에 잎을 키우고 있는 연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호수변 산책로를 걸어간다.

 

보라색이 인상적인 붓꽃을 비롯하여 수변 공원을 잘 가꾸어 놓았다. 지금은 꽃들이 활짝 피어 있지만, 꽃이 피지 않은 꽃봉오리 모양이 붓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학명이 그리스어로 아이리스이다.

 

수변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뽐내고 있는 노랑꽃창포는 붓꽃의 일종이라고 한다.

 

고마제 입구에서 오늘의 여정을 잠시 쉬고 부안읍내에서 하룻밤 쉬었다가 내일 다시 여정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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