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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고개를 넘어온 길은 평탄한 들길과 고창군 부안면의 북쪽 해안선을 걸어서 고창군의 북쪽 끝자락인 흥덕면으로 넘어간다. 미당서정주생가가 있는 선운리를 지나면 들길로 나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반월마을에 이른다. 북쪽 해안선을 돌아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상포마을을 지난다. 해안으로 수많은 양식장들이 즐비한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걷던 길은 갈곡천 하구를 지나 김소희 생가를 거쳐 사포마을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고창 소요산에서 내려와 선운제 저수지를 지나고 있는 길은 멀리 서쪽 해안선을 보면서 마을로 내려간다.

 

질마재로 도로를 따라 내려가던 길은 좌회전하여 마을길을 통해서 서쪽으로 내려간다.

 

미당 서정주 생가 쪽으로 내려가는 마을길, 마을 정자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터널식 고추 재배를 하는 마을길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날이 좋으니 농민들은 비닐 터널에 구멍을 뚫어 주느라 여념이 없다.

 

미당의 생가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마을을 흐르는 수로도 예쁘게 다듬고 나무와 화초를 심어 놓았다. 사실 교과서를 통해서 "국화 옆에서" 시를 접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가 국화 옆에서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야" 했지만, 노란 황국과 거울이 일본 황족을 상징한다는 구체적인 분석을 접하면서 시야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반민특위 해산으로 역사를 망치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른 이승만을 제우스와 단군으로 칭송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을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으로 찬양 시를 쓴 기록을 보면서는 "국화 옆에서"가 일본 천황을 찬양하는 친일시라는  그냥 그렇고 그런 주장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당의 생가 인근에는 시문학 체험관도 있었다. 생가가 있는 진마마을의 수로에는 갖가지 색을 가진 철쭉이 한창이다. 철쭉과 비슷한 영산홍을 소재로 한 미당의 "영산홍"이란 시 한 편을 감상하고 간다.

영산홍 꽃 잎에는
山이 어리고

山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小室宅)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山 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미당의 생가가 있는 진마마을에는 시문학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 질마재 시인마을 복합문화 공간과 책방도 있고, 미당시문학관도 자리하고 있다. 

 

42코스와 43코스 일부를 이어서 걸었던 우리는 선운리 삼거리에 있는 질마재 버스 정류장에서 흥덕행 버스를 타고 흥덕 읍내에서 하룻밤 쉬고 돌아와 여정을 이어간다. 이곳은 흥덕에서 온 버스의 종점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버스는 잠시 휴식을 취하더니 버스 기사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냐는 말을 하며 버스를 출발시켰다. 기사분의 수다는 승객이 우리 밖에 없던 까닭인지 미당의 친일 행적부터 인촌 김성수의 이야기까지 끝이 날줄 모르고 이어졌다. ㅠㅠ

 

흥덕읍내에서 하룻밤 쉬고 돌아온 우리는 농로를 따라서 해안 방향으로 나간다.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와 송현리의 경계가 되는 수로를 건너서  드 넓은 간척지 논길을 북동쪽으로 가로지른다. 선운리에서 흥덕으로 가는 버스가 가던 인촌길 도로를 우측으로 이백여 미터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걷는 길이다.

 

간척지 논길을 걷던 길은 고잔마을의 야산을 만나며 더 해안선 가까이로 나아간다.

 

해안으로 나온 길은 잘 정비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반월마을로 향한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 곰소만 바다 건너편의 부안군이 시야에 좀 더 가까이 다가온다.

 

원래의 서해랑길 경로는 반월마을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마을 안 길을 거쳐가는 경로지만 걷다 보니 표식을 놓쳐버리고 자전거길과 고창 해안 문화마실길을 따라 해안선 끝자락까지 와 버렸다. 그런데, 어차피 방조제를 지나면 원래의 경로와 합류하기도 하고 길도 좋아서 그냥 가기로 한다. 해안선 끝자락에 짧게 갯벌 위로 데크길을 설치해 놓았다.

 

독특한 모양을 가진 참나무가 꽃을 피웠다. 저 꽃이 지고 나면 열매인 도토리가 맺힌다는 것도 상상이 어렵지만, 귀고리처럼 생긴 저 참나무 꽃에서 발산하는 꽃가루가 소나무 꽃가루 보다 독성이 강해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것도 상상이 어렵다. 일반 사람이 알 수 없는 세계가 많다.

 

봄을 맞은 갯벌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들로 활력이 넘친다.

 

데크길을 지나온 길은 방조제 끝자락에서 반월마을을 거쳐서 온 원래의 서해랑길과 합류하여 길을 이어간다. 종점까지 약 7Km가 남았다.

 

광활한 갯벌 너머로 부안 변산반도의 산들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바닷물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곰소만 바다는 갯벌로 가득하다.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은 태양광 발전 단지를 지나 상포마을로 진입한다.

 

마을 앞의 넓은 공터와 쉼터가 잘 마련되어 있는 마을이었다. 이곳 평상에 앉아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쉬고 있었는데, 네댓 명의 중년 남성들이 몰려와 정자에 자리를 잡는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뭐라고들 하는 것 같은데 자신들의 원칙에 남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괜히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졌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걸으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걷는 것조차 승부를 겨루는 것처럼 걸어서, 먼저 가라고 길을 물러선다. 다양한 부류들을 만날 수밖에 없으나 마음의 평정은 나를 내려놓고 무념무상 가운데 자연과 하나 되어 걷는 가운데 찾아온다. 

 

상포마을을 떠난 길은 다시 해안 제방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가운데 걷는 길이다. 연신 물을 들이켜지만 강렬한 봄 햇살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한쪽은 양식장, 다른 한쪽은 간척지 논인 풍경은 한동안 계속 이어진다. 작년 가을의 흔적이 여전하지만 이곳 들판은 봄기운이 한창이다.

 

멀리 남쪽으로 우리가 지나왔던 선운산 방향의 풍경을 바라본다. 확실한 걷기는 이런 휑한 들판보다는 숲길이 좋았다.

 

부안면의 북쪽 해안을 걸었던 길은 이제 남동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간다. 

 

고창 방장산에서 발원하여 곰소만으로 빠져나가는 갈곡천을 따라 내려간다.

 

방조제 둑에 그려진 장어를 보니 풍천장어의 고장 고창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브랜드는 고창의 풍천장어가 으뜸이지만 우리나라 민물장어의 최대 생산지는 고창이 속한 전북이 아니라 인근의 전남이라고 한다. 전국 민물장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전남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길은 어느덧 갈곡천 배수갑문을 지나 김소희 생가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다.

 

길은 사포마을에 있는 김소희 생가를 지난다. 고창 출신의 판소리 명창으로 국창이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고창군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흥덕면이다.

 

사포마을을 지나온 길은 마을 입구에 있는 위령탑 앞에서 코스를 마무리한다. 정유재란 당시 조총을 앞세운 왜군 앞에서 죽창과 활, 칼로 대항하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위령탑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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