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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산 임도를 걷고 있는 남파랑길은 임도가 끝나면 고흥만로 도로를 만나서 용동 마을을 가로질러 용동 해수욕장으로 나간다. 해수욕장을 지나면 도로를 따라 걸어 고흥만 수변노을공원 해변캠핑장을 지나고 고흥만 방조제공원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영귀산 임도에서 바라보는 득량만 풍경은 나름 일품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득량만의 이름을 가져온 득량도가 한 자리하고 있다. 득량도라는 섬이름의 유래가 두 가지 정도 있는데 모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그리고 식량과 연관된 것이다. 하나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야기로 장군이 섬 꼭대기에 풀로 군량미를 쌓아 놓은 것처럼 왜군을 속여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섬에서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식량이 떨어지자 육지에서 섬으로 식량을 조달해서 왜군을 무찔렀다는 설이다. 생각해 보면 두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져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겠다 싶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식량이 떨어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일단 산에 풀로 군량미가 넉넉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야음을 틈타 육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야기의 앞뒤가 맞다. ㅎㅎ

 

영귀산 중턱을 가르며 지나는 임도에서 산 아래로는 대곡 마을 해변이 시야에 살짝 들어온다.

 

골짜기에서 남쪽 풍경을 보면 수평선은 없고 득량도 뒤로 보성과 장흥 땅으로 막힌 거대한 호수처럼 보인다. 

 

영귀산 임도는 다양한 식생을 선보이며 길을 이어간다. 때로는 사람의 손길이 미친 구간도 있고 때로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원시림 같은 구간도 있다.

 

영귀산(고백이산)을 오르는 등산로도 만난다. 대곡 마을 인근 도로 옆에서 보았던 등산로와 이제 내륙 쪽으로 방향을 튼 임도에 만난 등산로, 그리고 앞으로 만날 등산로가 하나 더 있다.

 

바다도 보이지 않는 곳인데 임도에 벤치가 있었다. 그늘이 없지만 잠시 엉덩이를 붙였다가 길을 이어간다.  내륙으로 돌아가는 임도에서 길 옆으로 벌을 치고 있는 구간을 통과해야 했는데 벌통들은 철조망 안에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었지만, 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에 긴장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왔다. 호기심을 해결하겠다고 들여다보면 당장이라도 병정벌에 쏘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울창한 나무 숲에서 벌 치는 주인장은 나름 좋은 위치에 좋은 아이디어로 벌을 치시는 모습이었다. 나그네가 호기만 부리지 않으면 사람도 벌도 서로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벌 치는 주인장은 친절하게 주의 문구도 붙여 놓으셨다.

 

도덕면 가야리를 걷던 길은 어느덧 도덕면 끝자락의 용동리로 넘어왔다.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한적 마을이다. 남파랑길은 저곳으로는 가지 않는다.

 

영귀산 임도가 끝나면 한적 마을에서 올라온 고흥만로 도로와 합류하여 작은 고개를 넘는다.

 

도로를 따라서 고개를 넘어 용동 마을로 향하는 길, 산아래로 고흥만의 넓은 담수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 옆 작은 공터에는 작은 폐선을 활용하여 정원을 꾸며 놓았는데 정말 잘 만들어 놓았다. 돈을 많은 쓴 정원보다는 정성을 많이 들인 작은 정원이다.

 

길 옆 과수원에서 주황색 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석류꽃이다. 석류 하면 80여 종의 석류가 있는 이란만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연간 300톤이 넘는 석류를 생산하고 있고 그중에 약 80%에 육박하는 생산량이 고흥에서 나온다고 한다.

 

흔하지 않고 비싸다는 인식에 구입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고흥 석류를 한번 맛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10월이 제철이라니 맛이 궁금해진다. 꽃이 예쁘니 기후만 맞다면 관상용 나무로도 훌륭할 것 같다.

 

커다란 송림이 줄지어 늘어선 용동 해수욕장 전경을 바라보면서 용동 마을로 들어선다. 원래 길은 등산로 입구를 지나 바로 좌측으로 꺾어져 마을길을 관통해서 내려가야 했지만 우리는 그냥 도로를 통해서 가기로 했다. 어치피 길은 용동 마을 회관 앞에서 만난다.

 

용동 마을에 들어서면서 만난 신기한 풍경은 길가에 긴 나무를 경계선 삼아 말리고 있는 쪽파 씨앗 건조 풍경이었다. 씨앗이 굴러가지 않게 나무를 경계선 삼은 것이며, 건조 규모까지 감탄하며 길을 내려간다.

 

길은 용동 마을 회관 앞을 지나서 해변으로 나간다.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청룡에 해당한다고 용동이라 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쪽파 씨를 말리느라고  분주한 모양새다. 쪽파 건조 풍경을 구경하면서 해변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트럭 한 대가 우리 옆에 서더니 말을 건네신다.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느냐?부터 시작해서 마을 소개며, 해수욕장 소개, 예산을 얼마나 탔다는 이야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보다 이장이시라는 그분의 열정에 박수를 드리고 싶었다.

 

골목길을 통해 해변으로 나오면 용동 마을 포구를 만나게 된다.

 

노을이 아름다운 용동이라고 붙여 놓았지만 모래 해변과 송림도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고흥에 피서를 온다면 이곳이다! 할 정도로 훌륭했다. 깔끔한 화장실에 캠핑도 가능하니 일단 찜해 놓는다.

 

물이 많이 빠진 바다 풍경이 어떨지도 궁금하지만, 이 정도 풍경만으로도 훌륭하다.

 

용동 해수욕장 끝자락에서 다시 보니 결코 작은 해수욕장이 아니다. 유명 숙박시설이나 카페, 마트도 없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곳이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이제 길은 해안 도로를 따라서 고흥만 방조제로 향한다.

 

득량만 바다 건너 보성땅을 마주하며 걷는 길, 용동 해수욕장을 지났지만 이곳에도 모래 해변이 이어진다. 

 

해안도로에서 멀리 고흥만 수변노을공원과 리조트가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방조제 인근의 풍경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배수갑문과 콘크리트 일색의 삭막한 풍경이었는데 모래 해변과 리조트라니! 모래 해변에서 아버지와 어린아이가 한참 수영 강습 중이다. 6월도 아닌 5월에 벌써 해수욕이다.

 

용동 마을에서 고흥만 방조제로 오는 길에서 우리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했다. 옆지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조금 뒤처져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서더니 옆지기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녹동 터미널로 이동하면서 김밥집에 들러 김밥을 구매했었는데 그때 김밥집에서 옆지기와 함께 김밥을 기다리던 고객이었다. 이 집 김밥이 맛있어서 자주 온다는 수다와 함께...... 그런데, 그런데 그 남자가 아내와 함께 이곳으로 나들이를 왔는데 배낭을 메고 걷고 있는 옆지기를 발견한 것이었다. 차를 세우고는 트렁크에 실려있던 방울토마토를 건네주었는데 맛이 무지하게 달았다. 옆지기의 전언에 의하면 스테비아 토마토라고 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모를 일이다. 오래 만난 사람도 의가 상해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처음 만난 사람이 넘치는 친절을 베푸는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도 남파랑길을 걸어 보아야겠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스테비아 토마토는 원래 토마토가 그렇게 단것은 아니고 효소 처리한 스테비아를 물에 녹인 다음에 토마토를 이것에 담그고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이곳은 그분들이 나들이로 잠시 다녀가기에도 참 좋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각, 고흥만 방조제 공원 앞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바로 이어서 72코스 걷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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