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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4코스는 한 여름의 열정이 넘치는 협재 해변을 떠나 옹포리 포구와 한림항을 지나 여정을 마무리한다.

 

야자수와 은빛 모래까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금능 해변에서 협재 해변으로 이동한다.

 

금능 해변을 뒤로하면서 바라보니 이곳에서 물놀이하시는 분들은 무릎까지만 물을 참방 거리는 모양이다. 물에 몸 전체를 담그는 수영을 하지 않아도 일상을 잊고, 시원한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부드러운 백사장을 밟고,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감상하며, 피부에 시원한 바닷물의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피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변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바로 근처에 물가가 없는 지역까지도 작은 그늘막 하나 세우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비양도를 배경으로 세워져 있는 협재 해변 조형물을 보니 이제 금능리에서 협재리로 넘어온 모양이다. 비양도의 건물들이 보일 정도로 비양도를 가장 가까운 거리로 지나는 지점이다.

 

오래간만에 모래밭 위를 통해서 길을 이어간다. 부드럽고 고운 모래이지만 푹푹 빠지는 모래밭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각양각색의 그늘막이 지금이 절정의 피서철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햇빛을 막기 위해 챙이 긴 모자를 쓰고 긴팔 셔츠에 배낭까지 둘러메고 걷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맨발에 웃통까지 벗고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큰 대비를 이룬다. 이곳에서 우리는 이방인이다. 

 

산책하듯 백사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그늘에 앉아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펼쳐 놓는 사람들, 태양 아래서 모래와 씨름하는 사람들, 세상 편한 자세로 멍 때리는 사람들, 노는 방식과 즐기는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협재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에게서 세상 시름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아무리 아름다운 해변도 한 사람도 없는 쓸쓸한 곳이라면 어떨까? 하는 질문을 던져 보면 협재 해변 아름다운 풍경의 절반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다.

 

협재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의 밝은 모습은 좋지만, 사람들의 북적거림 속에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빠른 걸음으로 인파를 빠져나간다. 올레길 14코스의 19.1Km 중에서 15Km 지점이니 이제 4Km가 남았다.

 

비양도를 품고 있는 금능 해변과 협재 해변은 정말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아쉬움을 남기며 협재 포구를 향하여 길을 이어간다.

 

이제는 해안으로 사유지들이 있어서 해변을 따라 걷지는 못하고 협재리 마을길을 통해서 길을 이어간다.

 

협재 포구 앞에 있는 쉼터에서 배낭과 신발을 벗고 잠시 쉬어 간다. 이곳도 협재 해변이 멀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해수욕장보다는 덜하지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쉼터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이곳도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남기는 가족도 있었고,  차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하러 가는 커플도 있었다.

 

협재 포구가 비양도 바로 앞에 있지만 이곳은 작은 포구일 뿐이고 비양도로 가는 배편은 한림항으로 가야 한다. 올레길도 이제 마을을 빠져나가 옹포리 포구를 거쳐 한림항으로 향한다. 올레길 14코스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협재리 마을 입구에서 오랜 세월의 마을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나무 앞에서 한림로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한동안 이 도로변을 따라 걷는다. 마을 곳곳에 펜션과 카페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도 마을의 나무를 지키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싶었다. 망월대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통상 "안녕히 가십시오, 어서 오십시오"하는 표지석은 시도 경계에 세워지는 법인데 이곳은 시도 경계도, 읍면 경계도 아닌 한림읍 협재리와 옹포리의 경계이다. 읍내가 아님에도 1천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애정만큼 마을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없을 것이다. 비양도도 협재리에 속해 있다. 

 

한림로 도로를 걷다가 좌회전하면 옹포리 포구를 만날 수 있는데 좌회전하는 지점에 있는 음식점 이름 덕택에 옹포리 포구의 또 다른 이름인 독개물항도 알게 된다. 고려 시대에는 명월포라 불리며 서부 제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협재 해변의 북적이는 인파가 있었는가? 할 정도로 조용한 옹포리 포구를 올레길은 둘러 지나간다.

 

물이 빠져 현무암 바닥이 드러난 포구를 보니 썰물 때의 서해 포구를 보는 듯하다. 실제로 제주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서해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편으로 한림항 물때표를 보면 보름달이 뜰 때면 2미터가 넘는 조수 간만의 차이를 보인다. 한산한 어촌 마을을 일상을 뒤로하고 이제 이번 여정 마지막 목적지인 한림항을 향해서 나아간다.

 

마을길에서 만난 제주 돌집. 마을에 새롭게 들어서는 펜션과 카페들을 보면 과연 이 돌집들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수많은 돌집들을 생각하면 지붕과 내부가 바뀌면서 수많은 변신을 거듭할 것이라는 예상도 해본다. 돌집 위에 지붕으로 띠를 올리고 새끼줄로 꽁꽁 둘러메었던 시절이 지나고 스레트 지붕에서 함석지붕으로 변신해 왔던 역사처럼, 옛 돌집을 게스트 하우스, 카페, 책방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신시키려는 시도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리아에서의 첫날밤,  통나무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던 돌집에서의 시간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간다.

 

옹포리 끝자락에 이르면 커다란 돌기둥 네 개가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정자를 만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정자 속에서는 산책 나오신 어르신 한분이 의자에 앉아서 먼바다를 말없이 바라보고 계신다. 지나온 긴 세월에 대한 회한일까? 바다 건너 육지에 살고 있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일까? 비양도 사이 바다를 주름잡던 젊은 시절을 떠올릴까? 조용한 어르신 근처에서 풍경 사진 찍기도 조심스럽다. 아마도 아름다운 일몰까지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 정자 옆에는 바른 물이라는 용천수 목욕탕도 있었다.

 

중문 관광단지에서 조형물로 만났었던 방사탑이 옹포리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옹포리 마을길에서 돌담을 타고 가느다란 가지를 가진 유홍초 덩굴이 자태를 뽐낸다.

 

앙증맞은 빨간 꽃을 피운 유홍초는 잎사귀 모양 때문에 새깃 유홍초, 깃털 유홍초라고도 부른다.

 

용수사 사찰 앞에서 좌회전하고 마을 나무가 교통순경처럼 처럼 서 있는 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옹포리를 떠난다.

 

고즈넉했던 옹포리를 빠져나오면 좌회전하여 4차선의 한림 해안로를 따라서 도로변을 걷는다.

 

한림 해안로의 장점은 옹포리에서 최단 거리로 한림항을 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겠지만 올레꾼에게는 바로 한라산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라는 것이다. 

 

올레길의 마지막 구간에서 이런저런 오름들이 호위하고 있는 한라산의 위용을 제대로 만난다.

 

지금 걷고 있는 한림 해안로는 원래는 옹포천이 바다로 흘러 나가는 자리였다. 지금은 도로 중간 지점에 있는 통로를 통해서 물이 오 간다고 한다. 예로부터 물이 풍부했던 옹포천은 지금도 여름이면 무료 야외 수영장을 운영하고 있고 하류 끝에는 70년 넘은 한라산 소주 공장도 자리하고 있다. 

 

한림항은 일제강점기 어업 전진 기지로 사용했던 곳으로 지금은 감귤이나 시멘트와 같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제주 서부의 최대 물동항이다.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한림항 옆을 지나니 엄청난 항구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항구별 물동량은 제주항이 월등하게 높지만 그다음이 애월항, 화순항, 한림항 순이다.

 

드디어 올레길 14코스의 종점인 한림항 포구에 도착했다.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15코스를 시작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아이들도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한여름에 아이들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고 우리 부부 둘 뿐이다. 긴 세월의 간격이 있고 계절조차 다르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수첩을 꺼내서 스탬프를 찍던 그때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올레길을 모두 끝낸 마음은 시원섭섭함이 적당한 것 같다.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면 경험하지도 만나지도 알지도 못했을 수많은 것들에 넘치는 감사함도 남는다. 올레길 걷기는 우리 부부의 파리 걷기,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알프스 TMB 걷기, 일본 구마노 고도 걷기, 히말라야 ABC 걷기, 해파랑길 걷기의 싹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으니 그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위로와 충전이 되는 걷기의 발견을 하고 싶다면 올레길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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