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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올레길 14 코스는 저지 마을을 출발하여 마을 길과 숲길을 지나 굴렁진 숲길에 이른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올레길 걷기의 마지막 날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대,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기쁨이 섞여서 가슴 벅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육지는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있지만 이렇게 맑은 하늘에 집에 가는 비행기가 뜨지 못할 것이라는 상상은 곁들일 여지가 없다. 19.1Km라는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다른 날과 달리 한 코스만 걷는다는 가벼움도 있다.

 

저지 수눌음 마을 행복센터라는 곳을 지나는데 그 앞에는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수눌음은 제주식 품앗이와 같은 것이라 한다. 여름철 김매기부터 가축 관리까지 공동체로 해야 할 일 들을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서 해내는 과정이었다 한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김매기를 해본 사람만이 품앗이도 수눌음도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기계화되고 외국인 근로자가 고용되어 이루어지는 농업 현장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이다. 점점 없어지는 우리의 문화다.

 

장학 굿물이라는 샘터도 지난다. 굿은 샘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습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물은 없었다.

 

들길을 걸어가는 길, 동쪽으로는 상명 풍력 발전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지 오름을 뒤로하고 해안으로 향하는 길, 저지리의 푸른 콩밭이 푸른 하늘과 흰구름 아래 아름답다.

 

어제는 저지 오름을 향해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걸었지만, 오늘은 저지 오름을 뒤로하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걷는다. 오호! 발걸음이 가볍다.

 

저지 오름에서 내려온 올레길은 1115번 지방도 용금로를 만나 좌회전하여 한동안 도로변을 걷는다. 용금로는 해변의 한경면 용당리와 한림리 금악리를 동서로 이어주는 도로이다.

 

도로변을 걷던 올레길은 이내 우회전하여 마을길을 걸어간다, 오전 9시를 바라보는 시각, 그림자도 흰구름을 눈부시게 하는 빛도 태양이 동쪽에서 열심히 중천을 향해 올라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저지리 마을길을 걷다가 만난 제주 약용 작물 허브 단지. 제주산 약용 작물을 이용한 기능성 한방 제품을 생산하는 공간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백수오, 백도라지, 방풍, 석창포, 반하, 황금, 우슬, 작약, 하수오, 백출을 제주 10대 약용작물로 선정하여 육성하고 있다.

 

황화 코스모스라고도 불리는 노랑 코스모스가 눈을 상쾌하게 한다. 날씨는 무덥지만 청명한 하늘과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벌써 가을이 온듯하다.

 

한동안 포장길을 걸었던 올레길은 잠시 울퉁 불통한 밭 사이 오솔길을 걷는다.

 

큰 소낭 숲길을 지나는데 그리 긴 숲은 아니므로 금방 다시 포장길로 나온다. 저지 오름이 이제 멀리 보이는 지점이다.

 

한림읍 월림리 마을길에서 만난 빈집은 덩굴이 집을 덮었다. 사람이 모일수록 빈집은 없고 사람이 떠나는 농촌일수록 빈집 비율이 높은 것이 우리나라 현실인데 제주도도 그런 시류를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은 빈집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3.2%라면 농촌이 많은 전라남도와 제주도는 빈집 비율이 가장 높아 14.3%과 13%에 이른다.  

 

올레길은 한경면 저지리와 한림읍 월림리의 경계를 이루는 마을길을 걷는데 "꽃과 새와 사람이 모두 함께 사는 한립읍"이라는 마을 환영 안내판이 인상적이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외관에 그림을 그려 넣은 고가수조를 만나곤 하는데 이 고가수조는 힘들게 그린 그림은 어떻게 하라고, 그림 위를 덩굴이 덮어 버렸다. ㅠㅠ

 

잠시 서쪽을 보면서 걸어가는 길, 멀리 한경면 두모리와 금등리 앞바다에 설치된 10기의 해상 풍력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국내 첫 해상 풍력 발전 단지인 탐라 해상 풍력 발전으로 2017년부터 상업 운전을 하고 있는데 발전 용량을 3배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 에너지로만 사용하겠다는 협약인 RE100이 확산되고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풍력은 상당히 중요한 재생 에너지인데 그중에서도 해상 풍력은 점차 그 중요성과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땅이 좁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해상 풍력 발전을 늘려가야만 하는 게 현실이라면 어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철새 이동 경로에 설치된다는 문제, 국내 풍력 발전 기술 발전 문제 등이 조화롭게 해결되면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저지리와 월림리의 경계를 따라 서쪽으로 걷던 올레길 14코스는 이제 해안을 향해 걷는다. 오시록헌 농로라 이름이 붙은 작은 오솔길로 진입한다.

 

"오시록헌"은 아늑하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인데, 아늑하다는 말도 좋지만 오시록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숲길이다.

 

오솔길과 포장된 농로를 번갈아 걷지만 해안으로 내려가는 완만한 내리막 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올레길 14코스 19.1Km 중에서 5Km 지점이라는 표식을 지난다.

 

올레길은 무명천 산책길이라 이름 붙은 길도 지난다. 무슨 하천 자락을 지나는 길인가? 하는 무식 상상도 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사연이 있는 길이었다.

 

무명천 산책길은 4.3 당시 토벌대의 총을 맞고 턱을 잃어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다니며 평생을 후유증에 고통받다 돌아가신 진아영 할머니를 기리는 길이라 한다. 푸른 들판과 맑은 하늘과 달리 제주의 역사는 민초들이 겪은 고통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무명천 산책길을 지나면 지리 저리 굴곡진 숲길이라는 의미의 굴렁진 숲길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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