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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봉을 내려온 올레길 11코스는 신평리 마을길을 지나 신평 곶자왈에 이른다. 숲과 마을길이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는 그러한 길이다.
모슬봉을 내려와 만난 도로를 따라서 신평리 방향으로 이동한다. 모슬봉을 내려와 도로를 걷는 위치는 올레길 11코스 7Km 지점이다.
한참 길을 가는데 교차로 부근에서 쓰레기를 줍고 계시는 분들 중에 한 분이 우리를 보시고는 손을 흔들며 아주 반가운 인사를 하신다. 우리도 쭈뼛쭈뼛하며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아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에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었다. 올레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등을 물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어제 10 코스 종점이자 11 코스 시작점에서 문을 열고 우리를 환하게 반겨 주었던 그분이 아닌가 싶다. 어제는 몸이 지쳐서 가벼운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면 최소한 얼굴은 기억했을 텐데...... 두 번이나 우리를 반겨준 그분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일행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올레길 주요 지점에서 쓰레기 줍기를 하시는 모양이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거나 실수라도 떨구지 않는다면 참 좋겠는데 의외로 쓰레기가 조금은 있는 편이다.
올레길 11코스는 우리가 올레길 관계자들을 만났던 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모슬포 천주교 공동묘지와 대정 성지를 돌아서 다시 우리가 걸어왔던 도로로 나오는데 우리는 이 길은 생략하고 도로를 직진하여 대정 성지에서 나오는 올레길로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11코스를 끝내고 12코스까지 가려면 체력을 관리할 필요가 있고, 묘지는 이미 모슬봉에서 질리도록 만났으므로......
천주교 공동묘지와 대정 성지를 생략하고 도로를 따라 직진하는데 도로변 보성리 개울에서 피서를 나온 누렁소 한 무리를 만났다. 새끼를 키우는 어미소와 송아지의 모습이 마치 여름휴가를 맞아 제주도 물가를 찾아가는 어린아이들과 그 부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방목하는 소라 그런지 모두들 털도 깨끗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물 없는 초지에서 풀을 뜯어도 좋을 텐데 굳이 물에 들어온 것을 보면 소들도 덥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우리가 생략한 천주교 공동묘지와 대정 성지 구간을 다녀왔다면 이길로 나왔을 것이다. 밭, 농로, 묘지, 태양광 발전소, 감귤밭을 지나는 길,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대정 성지의 주인공인 정난주라는 분은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현의 딸로 신유박해 당시 박해 상황을 외부에 알리려 했던 황사영 백서 사건의 황사영이 정난주의 남편이었다. 남편이 죽고 제주도에 관비로 유배되어 이곳 대정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길은 신평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계속된다. 이곳은 참깨가 한창이다. 대정 읍내로 오던 상모리에서는 참깨를 한참 말리고 있었는데 이곳은 아직 꽃이 한창이다. 참깨는 고추처럼 꽃이 계속 피는 무한 화서 식물이기 때문에 줄기가 쓰러지지만 않는다면 최대한 늦게 수확하여도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아래는 꽃이 지면서 맺힌 참깨 꼬투리가 익으면서 터져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보통은 꼬투리가 12개 정도가 넘어갈 때 꼭대기의 순을 잘라서 꽃은 그만 피우고 이미 맺힌 꼬투리들이 충실하게 크도록 한다. 그런데, 이렇게 큰 참깨 밭을 순지르기 할 수 있을까 상상하니 억! 소리가 난다. 안 되는 일이다. 이런 밭은 참깨를 잘라서 말리는 것도 사람 손이 없어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텃밭 농사와 농사를 업으로 하는 것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 아무튼 물 빠짐이 좋은 제주는 참깨 농사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도로를 따라 걷던 올레길은 신평리에 접어들면서 좌회전하여 신평리 마을길을 걷는다. 신평리라는 마을 이름은 평야지에 들어선 새로운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물을 대어 논농사도 지었다고 한다. 옹기를 굽던 가마터도 있는 마을이다.
낮은 현무암 돌담과 밭 사이 마을길을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올레길 11코스는 신평 사거리를 지난다. 신평 사거리에 쉼터가 있는데 근처에 화장실과 편의점도 있어서 푹 쉬어 가기 좋은 장소다. 12코스 중간에 있는 숙소까지 가는 길에는 별다른 마트나 편의점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필요한 것을 구입해야 했다. 편의점을 다녀오는데 인근에 식당 간판이 두어 개나 있었다. 그런데, 괜찮다 싶은 식당을 찾아갔더니, 아뿔싸! 휴일이란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아침에 준비한 삼각 김밥으로 간식을 먹고 신평 사거리를 지나 길을 이어가기로 했다.
마을길을 지나던 올레길 11코스는 신평 무릉 사이 곶자왈로 간다. 곶자왈의 곶은 숲을 뜻하고 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바닥은 울퉁불퉁한 지형이고 양치류와 나무와 덩굴이 우거져 원시림 같은 숲을 이룬 지대를 말한다. 제주 곳곳에 곶자왈이 있는데 이곳 대정읍에는 곶자왈 도립 공원도 위치하고 있다.
올레 11코스 중에서도 신평 곶자왈, 무릉 곶자왈을 걷는 구간에서는 편의점도 마트도 없을뿐더러 오로지 돌과 숲과 함께 가는 구간이므로 식수나 간식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신평 사거리가 휴식과 충전에 좋은 지점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인가 모기가 옷을 뚫고 들어오고 무수한 파리떼가 배낭에 잔뜩 달라붙기도 한다. 숲길 입구에 있는 해충 방지제 살포기는 우리가 꼭 들르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런 들판에서 잘 동작하는 해충 방지제 살포기가 있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울퉁불퉁한 바닥의 숲길이 시작되었다. 깔끔하게 정비된 걷기 좋은 길은 아니지만 원시 자연의 맛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울퉁불퉁한 바위 바닥을 보니 홍콩의 드래곤 백 트레킹이 생각난다. 트레킹 경로의 울퉁불퉁한 바닥이 마치 용의 등을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드래곤 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곳 바닥도 장난이 아니다.
울창한 숲길, 이름 그대로 곶자왈 다운 길이다.
잠시 숲 밖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이내 동굴 같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여기가 도통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오로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무에 걸려 있는 올레 리본뿐이다.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나무에 달린 올레길 11코스 13Km 표식이 반갑다. 곶자왈의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돌길을 걷다가 넓은 숲길을 걸어도 이제는 편안하다.
정오를 바라보는 시각, 그늘진 숲 속에서는 더우니 모자를 손에 들었다가, 태양이 내리쬐는 그늘 없는 큰길에서는 챙이 큰 모자를 급하게 눌러쓴다. 태양과의 밀당이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운 곶자왈 길이 터널과 같다. 숲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법, 수많은 올레꾼들의 발자국도 이 아름다운 길의 조연일 것이다.
신평 곶자왈에서 무릉 곶자왈로 넘어가는 부분에는 넓은 광장이 하나 만들어져 있다. 이곳의 우측 바로 인근으로 제주 영어 교육 도시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질 않는다. 생각해 보면 육지 촌놈에게 곶자왈도 영어 교육 도시도 신세계인 것은 매 한 가지다. 몇 년 후에는 국제 학교 옆으로 올레길을 걸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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