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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 주변을 걷는 해파랑길 39코스는 잠시 허균, 허난설헌 기념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온다. 다시 경포호로 나오면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길, 머리를 바싹 들어야 볼 수 있는 엄청난 높이의 소나무 숲이 만들어 내는 나무 그늘은 신비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해파랑길 39코스의 대부분을 함께 가는 강릉 바우길 5구간은 여기로 들어오지 않고 경포호 주변을 그대로 걷지만 대신 바우길 11구간과 16구간이 길을 함께한다. 그런데, 바우길 11구간은 이곳이 시작점이지만 16구간은 강릉 원주 대학교 홍보관에서 시작하여 이곳을 거쳐가는 것이므로 이제부터는 바우길 표지만 따라가면 엉뚱한 길로 갈 수 있다. 실제로 우리 부부도 바우길 표지를 따라가다가 살짝 길을 잃었었다. 이곳에서는 해파랑길 표지판만 따라가야 한다.

 

높은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면 허균, 허난설헌 생가터를 만난다. 허균, 허난설헌 두 남매가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2007년 조성한 것이라 한다. 문학사에 기념비적인 발자취를 남긴 형제를 부모님은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집 안에는 허균 생애를 기록한 액자가 걸려 있었다. 호는 교산(蛟山)이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하고 임진왜란 때는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조, 광해군에 걸쳐 고위 관리를 지냈지만 계축옥사로 인해 허무한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말았다. 유교에 기반한 문인이었지만 불교의 사명대사를 스승으로 두고, 도교의 인물과 교류하는 등 자유로운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누님인 허난설헌이 죽자, 그녀의 시집을 펴내서 당시 동아시아에 조선을 알렸다는 공로로 벼슬을 얻기도 했지만 사실 허균의 누님인 허난설헌은 유언으로 자신의 글을 모두 불태우라고 했다 한다. 허균이 홍길동을 집필한 것은 죽기 전 전라북도 부안에서라고 한다.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 원본이 없는 상황이라 그가 홍길동전의 저자가 아니라는 주장도 상당히 있다. 홍길동전이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그가 가진 불교, 도교적 사상 배경과 그가 적극적으로 나섰던 적서 차별 철폐 주장은 그가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게 한다.

 

생가터 건너편으로는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과 함께 인형극도 열리고 전통차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한다. 허난설헌의 난설헌은 호이고 본명은 허초희이므로 난설헌 허초희라 부르는 것이 맞다. 사실 문인으로 화가로 이름은 유명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잠시 여러 생각에 잠길 수 있었던 허균, 허난설헌 기념 공원을 뒤로하고 다시 경포호로 나간다.

 

6미터에 달하는 대형 달 조형물. 낮이라 느낌이 덜하지만 밤에 조명을 받은 달 조형물은 제대로 자신의 모습을 뽐낼 것 같다. 경포호와 연관된 다섯 가지 달 이야기가 그 배경이다. 다섯 가지 달은 하늘의 달, 호수에 비친 달, 바다에 비친 달, 술잔에 비친 달, 님의 눈에 비친 달이라고 한다.

 

경포호 산책길은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름하여 경호포 조각 로드이다. 구름을 타고 있는 홍길동 조각도 그 자리를 하나 차지했다.

 

경포호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서너 군데 다리를 건너 가시연 습지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원래는 습지였다가 50여 년간 농경지로 사용했던 공간을 습지 생태계 복원과 수질 정화를 위해서 2009년부터 다시 습지로 조성한 곳이다.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이 복원된 공간이기도 한다. 부들, 연꽃, 옥잠이 수질을 정화하고 홍수와 가뭄도 조절하는 습지가 복원되고 경포호도 살아났으니 잘한 선택이다 싶다. 

 

오상일 작가의 실낙원이란 작품. 두 남녀가 누드지만 외설적이라기보다는 고뇌에 찬 모습이다. 17세기 존 밀턴이 인간의 타락과 구원을 주제로 쓴 실낙원("잃어버린 낙원")과 맥이 닿아 있는 작품처럼 보인다. 

 

호수 건너편 언덕으로는 경포대가 서 있다. 왕눈이 개구리 두 마리가 제공하는 돌 벤치에 미소 지으며 길을 이어간다.

 

김문기 작가의 고독한 동행이라는 작품. 경호포 조각 로드의 여러 작품 중에서 도무지 이해가 어려웠던 작품 중의 하나다.

 

경포호 산책길을 걸으면서 조금 부러웠던 것은 2인용 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었다. 뙤약볕 속에서 터덜터덜 걷다 보니 자전거를 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사실 경포호 초입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시작 부분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반대편에서 반납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런 방법은 없다고 한다. 모두들 왜 빌린 곳에서 반납해야 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지......

 

해파랑길은 경포호 바로 옆에 있는 경포대도 들렀다 간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경포대 방문은 생략하기로 하고 산책길을 직진했다. 혼자서도, 옆지기와 둘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도 여러 번 방문했던 장소이므로 저질 체력의 발걸음을 조금 가볍게 해 주기로 했다.

 

관동 팔경의 하나인 경포대의 역사는 14세기 고려시대 충숙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차례 보수 과정을 거쳐 지금은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머리에 남는 기억으로는 겨울에 경포대에 올라서면 꽁꽁 얼은 경포호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얼음을 뚫고 얼음낚시하던 그림이었다.

 

경포대를 지나 해안을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호숫가 풍경은 아름답지만 뙤약볕 아래서 그늘 하나 없는 길을 이어간다. 멀리 해변에 자리 잡은 대형 호텔은 경포 해변과 경포호의 경관을 모두 꿀꺽한 듯한 자리에 우뚝 서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겨냥해서 세워졌다고 한다.

 

호수 한가운데는 새바위와 월파정이 있다. 새바위라는 이름답게 정자까지 새똥으로 하얗다. 정자는 1950년대에 마을 주민들이 세운 것인데 이름하여 월파정이다. 호수에 비친 달빛이 물결에 흔들리는 것을 묘사한 이름이다.

 

홍장암이라는 강원도 안렴사 박신과 기생 홍장의 러브스토리가 있는 바위에 대한 안내판이 있었다. 처음에는 뭘 모르고 호수 중앙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저게 홍장암인가? 하며 옆지기와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근처에서 쉬고 있는 한 사람이 저건 그 바위가 아니란다. 오잉! 무슨 망신! 새바위를 홍장암이라 했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근처에 보이는 특이한 바위를 가리키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 홍장암은 호숫가에 있는 바위다. 재미있는 것은 이 러브 스토리를 해안으로 이동하며 조각과 글을 읽으면 책 한 권 읽듯 이야기 한편을 뚝딱 읽게 된다는 것이다.

 

"1, 박신이 강원도 안렴사로 부임하여 강릉을 순찰하게 되었다." 안렴사는 고려 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지방에 단기간 파견되어 지방 행정을 감찰하던 관리이다. "2. 홍장이라는 기생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가 홍장을 만나게 된다."

 

"3. 소문대로 절세가인이라 박신은 한눈에 홍장에 반해 그녀를 흠모하게 된다."  "4. 첫눈에 반한 박신은 홍장에게 구애를 하게 되었다." 반해 버렸다는 표현을 조각에서는 혀를 내 두르고 머리를 잡는 것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녀를 보니 혼이 나갈 정도였다", "그녀의 미모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정도지 않을까? 무릎을 꿇고 꽃 한 송이를 전하는 박신의 모습은 마치 현대의 프러포즈하는 느낌이다.

 

"5. 홍장과 박신은 강릉에 있는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깊은 정도 나누게 된다." "6. 박신은 다른 마을의 순찰을 가야 하는 터라 어쩔 수 없이 강릉을 떠나야 했다" 갈라진 땅, 두 사람을 붙잡고 있는 사람으로 표현한 조각은 애절한 이별 순간을 제대로 표현했다. 안렴사였던 박신의 신분을 보면 예견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7. 다른 마을에서 일을 하면서도 홍장이 눈앞에 어른거려 대충 일을 마치고 서둘러 강릉으로 돌아오게 된다" "8. 홍장은 간 곳이 없고 친구인 강릉부사 조운흘이 말하기를 홍장이 죽었다는 것이다."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공의 애타는 마음을 말하는 듯하다.

 

"9. 박신은 잠시 시름을 잊기 위해 경포대 뱃놀이에 나왔다가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10. 홍장의 죽음이 자신을 놀리기 위한 친구의 장난임을 알고 박장대소하였다."

 

"11, 홍장과 박신이 행복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아슬아슬한 중간 전개에 비하면 평탄한 결말이지만 지역에 있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를 조각과 글로 대하니 이 또한 재미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아주 느릿느릿 걸으면서 한 편의 동화책을 읽는 해파랑길 바다 옆 방호벽에 그려있던 어린 왕자 이야기도 떠오른다.

이제 경포 호수 걷기를 끝내고 경포 해변으로 다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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