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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봉에서 영덕의 탁 뜨인 전경을 감상한 다음에는 일단 고불봉을 내려간다. 고도를 급격히 낮추며 내려간다. 영덕 터미널 인근의 우곡리에서 산을 넘어 바닷가 하저리로 이어지는 하저로를 따라가다가 영덕군 환경 자원 관리 센터 방면으로 좌회전하는데 이전의 해파랑길 20코스는 자원 관리 센터 앞을 지나 임도로 들어섰다면 지금은 센터 입구 길에서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자원 관리 센터 지나는 임도와 다시 만나고 그 이후부터 널찍한 임도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생태 공원 입구의 쉼터까지 길을 이어간다.

 

고불봉(高不峯, 235m)이라는 이름은 "높지 않은 봉우리" 의미이지만 주변의 고만고만한 봉우리 중에서는 으뜸이라 이곳에 보는 전망은 최고라고 할만하다. 1638년 유배를 온 고산 윤선도가 이곳의 경치에 반해서 고불봉 아래에 유배소를 정하고 "고불봉"이란 시를 남겼다.

峯名高不人皆怪, 봉명고불인개괴, 고봉이란 이름이 이상하다고 하지만
峯在諸峯崔特然, 봉재제봉최특연, 여러 봉우리 중 최고로 뛰어난 봉우리이네
何用孤高比雲月, 하용고고비운월, 어디에 쓰이려고 구름, 달 사이로 높이 솟았나
用時猶得獨擎天, 용시유득독경천, 때가 되면, 홀로 하늘 받들 기둥이 될 것이네

 

고불봉에 연결된 길은 총 네 갈래로 우리가 올라온 강구항 방면의 길이 있고 강구항 방면으로 가다가 좌측으로 꺾어지는 풍력 발전 단지 방향이 있으며 영덕역에서 올라오는 길(신세계 아파트)과 우곡리 못골로 가는 길이 있다. 영덕 해맞이 공원으로 가려면 풍력 발전 단지 방향으로 가면 된다.

 

영덕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바로 아래로는 7번 국도가 돌아나가고 시가지 외곽으로는 오십천이 휘감고 지나가는 모양새다. 2021년 영덕군은 예산이 5천억을 넘어섰지만 인구는 3만 5천여 명이다. 농어촌 지역 중에는 그나마 인구가 많은 편이다. 대부분의 농어촌 지역이 그렇지만 고령화가 심해서 주요 대도시 및 전국 평균 연령이 40대 초반이라면 영덕은 55.9세 이른다.

 

고불봉에서 바라본 강구면 방면의 모습이다. 구불구불한 오십천과 대비를 이루며 직선으로 대지를 가로지르는 동해선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영덕 해맞이 공원 방면의 전경이다.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풍력 발전 단지를 지나서 바닷가까지 걸어갈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때로는 먼 목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영덕읍내에서 바닷가 하저리로 이어지는 하저로 도로가 보인다. 고불봉을 내려가면 잠시 동안 저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멀리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이 하늘과 수평선을 구분해 준다.

 

풍력 발전 단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누군가 돌을 쌓아놓은 것이 인물상처럼 보인다.

 

고불봉에서 풍력 발전 단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울 수 있으므로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다행인 것은 이쪽 방향으로는 운동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읍내에서 오시는 분들이므로 고불봉에서 왔던 방향으로 돌아가신다.

 

고불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경사가 급한 만큼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하저로를 만나면 우회전하여 한동안 도로변 길을 따라 걷는다.

 

해맞이 공원 안내판을 따라 하저로 도로변을 걷다가 영덕군 환경 자원 관리 센터 표지판을 보면서 길을 건너 좌회전한다. 따로 횡단보도가 없고 도로가 내리막길인 데다가 반대편은 커브길이라 조심해서 길을 건너야 한다.

 

이전의 해파랑길은 자원 관리 센터 앞을 지나 임도를 걷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길 입구에서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안내판의 꺾어진 화살표가 조금은 불쌍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면 데크로 만들어 놓은 전망대가 있다.

 

강구항에서 고불봉으로 가는 길의 숲에 있던 나무들이 장년의 숲이라면 이곳의 나무들은 청년의 싱싱함과 생동감이 있는 숲이다. 단지 기분일까 싶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상당수 산림들은 40~50년 전에 조성되어 지금은 사람처럼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숲은 약 10% 정도가 50년을 넘는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50년생이 넘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은 탄소 흡수율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병충해와 산불에도 약하고 생물 다양성도 떨어진다고 한다. 그냥 방치한다고 좋은 숲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50년이 넘은 나무를 무식하게 벌목하고 민둥산처럼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산림 및 환경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과 여건에 맞는 좋은 방안들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데크 전망대에 오르면 바로 앞에 있는 고불봉의 모습도 볼 수 있지만 멀리 영덕 읍내의 전경도 감상할 수 있다. 신발끈을 풀고 잠시 쉬어간다.

 

데크 전망대를 떠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보면 자원 순환 센터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만난다. 산림 생태 공원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산림 생태 공원까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경사도가 급하지 않으니 음악을 들으며 주변도 둘러보면서 유유자적 걸을 수 있다.

 

하얀 나무껍질을 가진 자작나무 군락이다. 숲 속의 미인이라 할 만큼 자작나무는 언제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자작나무 껍질이 하얀색인 이유는 추운 지방에 사는 나무답게 눈이 쌓여서 눈에 반사되는 태양빛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작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나무를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에는 기름이 많아서 습한 날에도 불이 잘 꺼지지 않는다. 결혼식이나 신혼방에서 화촉을 밝힌다고 할 때,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 껍질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초가 흔하지 않았으니......

 

어린 나무들을 심어 놓고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어린 나무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고 하니 쉬운 일은 아니다. 사진처럼 경사가 심하고 척박한 땅이라면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의도가 어떠하든 자연이 하는 일 또한 신박하다. 조림지 일부에는 소나무가 싹을 틔워 새로 심은 나무와 경쟁하고 있고 길 근처 어떤 나무는 양분이 많은 땅인지 눈에 띄는 성장 속도를 보인다.

 

어떤 민가도 없는 깊은 산속의 임도는 삼림 경영이라는 원래의 목적과 함께 걷기족에게는 산길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산림청은 전국 곳곳에 임도를 계속 추가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임도 건설로 인한 산사태가 없도록, 그리고 산사태로 임도가 손상되어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하지 않도록 잘 설계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획일화된 숲이 아니라 자작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나무가 살아가고 있는 산길을 걷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임도에서 드디어 풍력 발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통상 풍력발전기는 날개가 3개인데 날개가 2개도 4개도 아닌 3개인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라고 한다. 1888년 처음 풍력발전기 등장할 당시만 해도 날개는 4개였다고 한다. 대형화 과정을 거치면서 날개 3개가 일반화되었는데 날개가 많아지면 힘은 많이 받겠지만 날개 하나에 10톤에 이르는 날개 무게를 기둥이 지탱하기도 어렵고 그 무게 때문에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날개 6개짜리 풍력 발전기가 등장했다. 사실은 풍력 발전기 2대가 1대로 보이는 것이다. 앞 뒤로 있는 풍력 발전기가 위치 때문에 기둥은 하나로 보이고 날개가 여섯 개로 보이는 것이다.

 

자원 순환 센터에서 영덕 산림 생태 공원 입구까지 절반 정도를 걸었다. 이 굽이를 돌아서면 도착할 것 같고, 저 굽이를 돌아서면 끝일 것 같은 임도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임도가 이어지며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도 걷다 보면 이내 목적지에 닿는다. 처음에는 아찔해 보이고 과연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네 저질 체력도 기어코 목적지에 도달하고 마는 장거리 걷기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블루로드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며 남아있는 김밥 도시락을 먹었다. 숙소에서 코펠로 지은 밥으로 싸왔던 이번 도시락은 정말 성공적이었다. 긴 걷기 여정 가운데 충분한 에너지 공급원이 되었다. 쉼터에서는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될 풍력 발전기들을 지척에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전망이 있었다. 이 쉼터 인근에는 천지산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있는데 "천지원전"이라는 새로운 원자력 발전소가 이 산자락에 지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영덕군 석리, 매정리, 창포리에서 건설이 추진되다가 현재 정부의 새로운 원전 정책에 따라 백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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