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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산을 지난 해파랑길 20코스는 번영길 구름다리를 지나서 고불봉에 이른다.
봉화산을 떠난 해파랑길은 봉화산 자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번영길을 구름다리를 통해서 통과한다. 번영길은 서쪽 오십천 강변의 금호리에서 동쪽 동해 바닷가의 금진리까지 산을 횡단한다. 트레킹 경로에서 이런 구조물을 만나는 것은 나름 색다른 재미를 더해준다.
번영길 구름다리를 지나면 다시 오르막으로 길을 이어간다. 평일의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드문 드문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른 시간 운동하는 부부도 있었고 한 무리의 모임 분들도 있었다. 영덕 블루로드 산길이 좋았던 것은 좋은 숲도 있었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사를 건네주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출발하셨냐고 물어보며 밝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영덕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강구교에서 고불봉까지 가는 길에서 절반 정도를 걸은 모양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한 겨울에 지난가을 밟지 못했던 낙엽을 실컷 밟으면서 걷는 길이다. 겨울 산행이라면 눈을 밟으며 걸어야겠지만 지난해 쌓인 낙엽 밟기도 감사할 뿐이다.
해파랑길과 영덕 블루로드가 함께 가는 것은 익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곳에는 문화 생태 탐방로라는 명패도 붙어있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한 걷기 열풍에 발맞추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정부의 주도하에 전국 곳곳에 만든 걷기 길로 해파랑길도 문화 생태 탐방로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좋은 경관을 보면서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걷는 과정에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도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한 길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능선길 걷기는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도 아니면서 마음껏 숲의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고불봉으로 가는 길의 숲 속 나무들은 굵직굵직하니 산림의 상태가 참 좋았다. 좋은 나무 숲은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경사가 조금 급한 곳에 길게 놓인 계단을 리듬을 타면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것은 힘이 많이 들지 않아 좋기는 한데, 내려간 만큼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갈 일을 생각하면 좋기만 하지도 않다.
민봉 인근의 갈림길. 하금호라는 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계곡을 지나는 길에서는 옷매무새 가다듬어야 한다. 내륙의 산맥에서 바다를 향해 불어 가는 찬바람이 살을 에인다. 바람에 거의 수평으로 나부끼는 해파랑길 리본이 바람의 세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양달이라면 어디든 쉬어간다.
오로지 숲 속의 나무와 바닥에 떨어진 낙엽만 보던 시야가 오래간만에 양쪽으로 트였다. 영덕 읍내 방향으로는 동해선 철로도 눈에 들어오지만 여전히 동쪽으로는 작은 봉우리들만 보인다.
전망 좋은 곳이라 표지 붙어 있지만 여전히 시야는 나무에 가려서 최고의 전망은 고불봉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고불봉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쉽지 않다. 지금까지 걸어온 5.8Km는 지리산 등반으로 치면 백무동 계곡에서 천왕봉 직전 산장인 장터목 산장까지의 거리다. 물론 계속 오르막을 가야 하는 지리산 등반과는 차이가 있다. 이곳에서의 오르막은 숨이 가빠질 때쯤이면 끝이 나기 때문이다. 5.8Km의 길이가 같더라도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은 끊임없는 오르막으로 조금은 지루하고 두려운 오르막이라면 이곳은 재미있고 부담 없는 오르막이다.
따뜻한 양달에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 따뜻한 곳에 도착했을 때 우리 귓전으로 경상도 사투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두 분의 아주머니가 걸으면서 한참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분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며 지나가는데 "어디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으시더니 대답을 듣고는, "멀리서도 오셨네요. 강구에서 출발하셨어요? 아침 일찍 출발하셨나 봐요!"라고 하신다. 코스를 완전히 꾀고 계신 그분의 말씀에 그저 "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고불봉으로 가는 블루로드를 걷다 보면 일부 구간에서는 동글동글하게 생긴 동물의 배설물들이 자주 목격된다. 이러다가 멧돼지라도 나오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다 다를까 멧돼지, 고라니, 뱀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이므로 주의하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멧돼지 똥도 동글동글한 덩어리지만 조금 큰 편이고 등산로에서는 쉽게 찾을 수는 없다. 길바닥에서 자주 본 것은 고라니 똥이나 토끼똥으로 보인다. 멧돼지는 깊은 산속에 서식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는 꺼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큰 염려를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들은 사람을 보면 알아서 도망가므로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놀라서 소리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나뭇가지로 위협해서 동물을 자극하지 말고 조용히 주시하면서 대처해야 한다고 한다.
숭덕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먹었다. 시장기가 많이 몰려오기 전에 먹어두는 것이 좋다. 해파랑길 20코스를 걸으려면 마실물과 점심 식사는 반드시 챙겨 와야 한다. 오늘의 점심 식사는 새로운 방식으로 숙소에서 말아온 김밥이었다. 어제 마트에서 구입한 단무지와 우엉을 절반으로 자르고 큰 조미김도 절반으로 잘라서 코펠로 지은 밥을 대충 올린 다음 치즈 소시지와 함께 말아서 가져왔는데, 아주 성공적인 시도였다. 도시락을 가져오면 언제든지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니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길을 걷다가 식당 찾느라 애태우는 일 없어 좋다.
이제 고불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눈앞에 보이는 고불봉 정상을 올라갔다가 우측 산길로 내려가야 한다.
얼마 전부터 멀리 어떤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과연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해파랑길은 그 옆을 돌아서 내려가는데 길을 내려와 확인하니 "산림녹화"라는 구호가 적힌 입간판이었다. 70년대와 80년대에 걸친 치산 녹화의 결과물이 지금 2차 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차원이 아니라 산지 자원화와 산림 경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고불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냥 해파랑길을 빨리 가고 싶다면 우측 능선길로 계속 가면 되지만 최고의 전망을 놓치고 가는 방법이다. 우측 길로 가면 고불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우리도 잠시 망설였다. 만약 옆지기가 힘드니까 그냥 가자고 했다면 최고의 뷰를 그냥 놓칠 뻔했다. 경사가 조금 급하기는 하지만 많이 걸리지 않는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오르니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 고불봉 정상에 도착한다.
고불봉(235m)에 연결되는 4갈래의 길이 있는데 우리가 올라온 강구항 방면의 길이 있고 정상에서 다시 우측으로 내려갈 때 이용할 풍력 발전 단지 방향이 있으며 영덕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우곡리 못골로 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정상에서 전망을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가 풍력 발전 단지 방향으로 내려간다.
고불봉은 235m의 높지 않은 산이지만 막힘없이 영덕 읍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풍력 발전 단지 쪽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하는 장소다. 올라오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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