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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 마을을 떠난 해파랑길 11코스는 나정 해수욕장과 전촌항을 거쳐 감포항에 이르는 것으로 걷기를 마친다.

 

나정 해변에 도착했다. 멀리 우리가 가야 할 전촌항이 보인다. 전촌항의 뒷산을 넘어야 한다. 오늘의 마지막 고비이다. 오후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보니 흐린 날씨에 벌써 어둑해지고 있다.

 

나정 해변은 한창 정비가 진행 중이었다.

 

나정 해수욕장에서 나정항 쪽으로 바라본 모습. 나정 고운 모래 해변이라는 이름답게 모래가 곱다.

 

나정 해수욕장과 전촌 솔밭의 트레킹 코스를 이어주는 인도교가 생겨서 우회로 갔다가 돌아올 필요가 없어졌다. 다리가 놓인 개천을 경계선으로 감포읍 나정리에서 감포읍 전촌리로 넘어간다.

 

전촌리 해변길도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를 통해서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용한 어촌 마을인 전촌리의 해변 산책길에서는 어촌임에도 저녁시간 산책 나온 마을 분들이 여러분 계셨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몸도 돌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 살기 좋은 동네인가 싶다. 전촌이라는 마을 이름은 "법동"이란 옛 이름에서 온 것인데 법을 잘 지켜서 문을 열어 놓고 살 정도였다고 한다.

 

가로등에 "해파랑"이 새겨진 길은 여기서 처음 본다. 

 

등대도 불을 밝히고, 해파랑 가로등도 화려한 불을 밝히고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 닥칠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캄캄한 산길, 캄캄한 해안길을 선택해야 했다.

 

바로 앞에 전촌항을 두고, 감포항까지는 2.2Km가 남은 거리이지만 해는 이미 먼 산 아래로 내려갔고 가로등에 의지해서 어슴푸레한 어촌 마을길을 걷는다.

 

전촌항에 세워진 거마상. 신라 시대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병마들을 주둔시키면서 이 지역을 ‘거마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감포로 가려면 지나가야 할 전촌항 뒷산도 말이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거마산이라 한다.

 

전촌항에서 감포항으로 가는 해파랑길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해파랑길로 안내하고 있는 경로로 전촌항 앞 삼거리에서 거마산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산을 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전촌항 끝에 있는 해파랑길 안내판을 따라 데크길을 통해 해안길을 가는 방법이다. 우리는 처음에는 거마산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마을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지점부터는 아무런 불빛도 없었다. 손전등을 가져왔어도 길을 찾기는 어려웠을듯한 길이었다. 아무리 작은 산이라도 산길인데, 모르는 길을 계속 갈 수는 없었다. 하는 수없이 맵스 닷미 어플에 저장해둔 GPS 경로를 따라서 전촌항 끝으로 이동하여 데크길을 따라 해안길로 가기로 했다. 물론 이곳도 조명이 없기는 했지만 GPS 경로를 따라가는 최소한의 안전성도 있고, 데크길을 걷는 길이므로 걷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캄캄한 산책길을 걷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길 옆으로 가이드가 있어도 가로등이 나타나는 지점까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도 데크로 잘 정비된 길이 많았지만, 캄캄한 가운데 오르막, 내리막 계단을 지나는 것은 온 신경을 발 앞에 두어야 하는 최대한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되도록 해가 지기 전에 걷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겠지만 혹여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다음번 걷기에는 손전등이나 헤드 랜턴을 꼭 가져와야겠다. 핸드폰 손전등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애매한 불빛보다는 불 없이 야간 시력으로 걷는 것이 나았다.

 

귀에는 철썩철썩 보이지 않는 파도 소리가 울리고 눈에는 전촌 마을과 나아 마을의 화려한 불빛이 보일 뿐이다.

 

이곳은 사룡굴, 단용굴이라는 해식동굴이 있는데, 이 캄캄한 시야로 동굴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니 감포항 방향으로 길을 계속 이어간다. 이 두 개의 동굴을 전촌 용굴이라 부른다.

 

우리가 해안길을 지난 처음 불빛을 본 것은 갯바위에서 한창 낚시 중인 사람들의 불빛이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암흑 속의 걷기 끝에 만난 사람들의 불빛은 모든 긴장을 흘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산을 넘어오는 해파랑길과 만나서 길을 이어간다.

 

드디어 감포항 주변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 저녁 식사는 감포항 근처에 있는 늘 시원 펜션의 식당에서 오므라이스와 돈가스로 해결했다. 펜션 앞을 지나다가 "생고기 돈가스"라 붙인 현수막을 보고는 "먹고 가자" 하는 옆지기의 결단 때문이었다.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아늑하고, 성탄 분위기를 내고 있는 공간에서 여유 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감포항에서 100번이나 100-1번 버스를 타고 경주 시내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 도착 예정을 알리는 전광판을 보니 방금 전에 버스가 지나갔나 보다. 버스를 한대 놓치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경주의 버스 정류장들에는 바람막이도 있고 엉덩이를 데워주는 따스한 의자도 있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추위에 떨지는 않았다. 감포항에서 경주 시내의 "경주 중앙 시장" 정류장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소요되었고 같은 정류장에서 신경주로 가는 버스로의 환승은 바로 이루어졌다. 50번, 51번, 70번 버스로 환승하면 되는데 이 경로는 다음 해파랑길 12코스로 이동할 때도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

 

드디어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옛 경주역은 폐선되고 KTX 뿐만 아니라 영천으로 이어지는 노선과 포항으로 이어지는 노선, 울산으로 이어지는 노선까지 모두 이전된다고 한다. 이번 여정은 저질 체력으로 3일 동안 5개의 코스를 걷느라 조금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위기와 어려움이 있는 걷기는 그만큼 다채롭고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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