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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11코스는 나아 해변에서 마을길을 따라 "나아, 원자력발전소 후문"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시내버스를 타고 봉길 해변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아 해변에서 좌회전하여 마을길을 따라 올라간다. 31번 국도를 만날 때까지 올라가서 31번 국도를 만나면 길을 건너지 않고 좌회전하면 "나아리, 원자력발전소 후문" 버스 정류장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150번, 150-1번, 160번을 타고 10여분 이동하여 터널을 지나서 "봉길"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버스가 30분여의 간격으로 도착하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정류장에서 덜덜 떨 수 있었는데 위의 사진처럼 "추위를 피해 가세요~"하는 안내처럼 바람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의자에 앉으면 열기가 나오는 고마운 정류장이었다.
나아리에서 버스를 타고 "봉길" 정류장에서 내린 다음에 바라본 봉길터널 방향의 모습이다. 2,430미터에 이르는 봉길 터널을 걸어서 지나는 것은 트레킹 코스로는 적절치 않은 선택이므로 버스를 타라고 가이드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시내버스를 타고 터널을 지나오는데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한 남성이 터널을 걸어서 오고 있었다. 길 옆으로 좁은 갓길이 있긴 했지만 위태위태해 보였다. 버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더라도 버스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는 것을 추천한다.
봉길리 교차로에는 청정 누리 공원이 세워져 있다. 우회전하면 월성 원자력 발전소로 가는 길이고, 해파랑길은 길을 건너 좌회전한다. 이 지역은 한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방폐장이 완공되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길을 건너면 봉길 대왕암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예로부터 이곳은 영험한 곳으로 여겨져서 제를 올리는 무속인들이나 대왕암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많다고 한다. 신라 30대 왕인 문무왕의 수중 왕릉이다.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문헌적 뒷받침이나 기타 증거로 보았을 때 무덤 아래에 유골함이나 부장품은 없지만 수중 왕릉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한다. 울산에도 앞서 다녀왔던 대왕암 공원이 있는데 그곳은 문무왕의 왕비인 자의 왕후의 무덤이라는 설화가 있지만 문헌적 뒷받침이나 증거는 없다고 한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을 대신하여 전장을 누볐고, 아버지가 이룩하지 못한 삼국 통일을 완성한 인물이다. 재위 기간 내내 백제 및 고구려 부흥 세력과의 전투, 당나라와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래서 그럴까?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슈퍼나 매점에서도 컵 초, 향, 오색천 등 제수용 상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모래사장이기는 하지만 중간중간에 몽돌이 있는 널찍한 봉길 해수욕장.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대본리 방향의 모습. 해수욕장 끝 부분에서 좌회전해서 마을길을 통해 다리를 건너야 한다.
해안길을 따라 해파랑길을 걷다 보면 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개천을 건너기 위해서 마을길을 통해 다리를 우회하곤 한다. 때로는 인도교가 있어서 우회 없이 길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마을길을 통해 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수량이 많지 않은 개천인 경우에는 개천 하구가 모래사장이어서 개천 물이 모래사장 아래로 스며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그냥 직진하면 될 일을 빙 돌아서 가게 되면 괜히 억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멀리서 바라보니 모래사장으로 이어져 있는 듯 보여서 이번 경우에도 모래사장으로 직진하면 되겠지 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마을 분들이 우리를 돌려세운다. "저기로 지나가려고? 안돼! 여기서 보면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끝에 가면 깊어!" 그러시는 것이다. 이 당시만 해도 저분들이 우리를 골탕 먹이는 것 아니야!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래 그냥 돌아가자 하며 원래의 우회로를 따라 디시 걷기 시작했다. 결국 반대편 위치에 이르러 보니 마을분들의 말씀대로 한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대종천을 건너기 위해 우회하는 마을길을 대종천을 따라 올라간다. 경주의 토함산, 백두산(449.1m), 함월산 등에서 발원하여 동해 고속도로를 지나 동해로 흐르는 강으로 이곳의 행정구역인 문무대왕면 곳곳에서 흘러 내려온 강이다. 원래는 양북면이었는데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올해 4월부터 문무대왕면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주에도 백두산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진짜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대종천의 대종은 큰 종이란 의미로 대종천에 얽힌 전설이 있다. 여몽 전쟁 당시 황룡사에 큰 종이 있었는데 몽고군이 황룡사를 불태우고 그 종을 바다를 통해 본국으로 가져 가려다가 대종천 하구에서 종을 물에 빠뜨렸고 종은 바다로 흘러내려갔다는 것이다. 2013년에는 감포 앞바다에서 2미터 크기의 종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다는 신고가 있었는데 이것이 이 대종이나 감은사에 있었던 종이 아닌가 하는 기대와 소동이 있었지만 탐사 결과 결국 타원형의 바위였다고 한다.
마을길을 걸어 31번 국도까지 올라가고 거기서 우회전하여 대종교를 건넌다.
대종교에서 바라본 감은사지 3층 석탑. 국보 112호로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세운 탑이다. 경주에서 가장 큰 3층 석탑답게 멀리서도 그 모습이 잘 보인다. 절터만 남아있는 감은사는 문무왕이 세우기 시작하여 그 아들이 신문왕이 완성한 사찰로 끊임없이 쳐들어오는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겠다는 의도로 세운 것이라 한다. 조사에 의하면 감은사를 지을 당시만 해도 절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한다.
역사와 전설이 얽혀있는 대종천을 건너서 우회전하면 길을 이어갈 수 있다.
해파랑길 안내판과 정자를 바라보면서 우측 길로 내려간다. 이 걷기 여행을 계획하는 시점만 해도 원래의 해파랑길은 감은사지를 거쳐서 산을 돌아 31번 국도를 횡단해서 이곳까지 오는 경로였는데 이 경로가 삭제되고 대종교에서 바로 이곳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두 번이나 국도를 횡단하는 위험성 때문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이니까.
부산의 이기대와 이름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이곳은 이견대(利見臺)로 기록에 있는 것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 문무대왕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원래의 위치에 복원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용이 나타난 것을 본 장소라는 의미이다.
대종천 하구의 모습이다. 마을분들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곳까지 그냥 걸어왔다면 신발을 젖히거나, 맨발로 강을 건너는 상황이라도 물살이 조금 있어서 위험할뻔했다. 수량이 적을 때도 이 정도인데 수량이 많을 때를 상상하면 이곳을 걸어서 건너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선택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멀리 문무대왕릉이 아득하다.
대본리 방파제와 작은 어항에 도착했다. 배 뒤에 "대본"이라 적힌 글씨가 이곳이 대본리 어항임을 말해준다. 여기서부터는 경주시 문무대왕면을 지나 경주시 감포읍에 해당한다. 마치 철도 레일처럼 설치된 것은 동해안 어항들을 걷다 보면 자주 만나게 되는 선가대로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장치이다. 어떤 항구에는 모터의 힘으로 배를 끌어올릴 수 있도록 케이블 등을 설치한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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