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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대교 전망대 앞 데크에서 울산의 광활한 풍경을 감상한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체육 시설 벤치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옆지기는 그동안 걷기하며 자주 만났던 초대형 훌라후프를 돌려 보겠다고 나선다. 이곳은 화정산 삼거리라 부르는 곳으로 해파랑길은 해안을 따라서 울산대교 전망대를 지나서 가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일산 해수욕장" 표지판을 따라서 울산 동구청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해파랑길 순방향 색상인 빨간색 표지판 때문이었을까? 내년 1월까지 공사 중인 전망대로 가는 걸음을 내딛는 것이 부담되었을까? 아니면 초대형 훌라후프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을까? 아마도 목적지인 일산 해수욕장 표지를 보고는 이 길이 맞다고 여겼나 보다. "화정천내 봉수대" 표지판을 따라가야 했다.
길을 씩씩하게 내려갈 때만 해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전망대까지 가는 시내버스도 있네! 전망대를 닫았는데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네! 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내려갔다. 울산 동구청 앞에 이르러서야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마트폰에서 맵스 닷미 어플을 열고 현재 위치와 해파랑길을 비교해 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원래의 해파랑길 경로를 향해서 봉수로 도로를 따라 걷는다.
봉수로를 따라 해파랑길의 원래를 경로를 찾아가는 길에서는 울산 과학대 캠퍼스도 지나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가로를 따라 담쟁이덩굴이 많았다는 것이다.
태화강이 생태 하천으로 변모한것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울산시는 1999년부터 기업체, 환경 단체, 봉사 단체와 함께 벽면 녹화 사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도로변, 하천변, 공원, 학교 등 도시의 수많은 벽면에 담쟁이덩굴이나 송악을 심었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이고 한국의 아이비라 불리는 송악은 두릅 나뭇과 이다.
길을 걸으며 들었던 생각은 덩굴 식물들로 인해서 도시가 푸르게 녹화되는 것은 좋은데 담쟁이가 건물 벽면을 타고 올라가면 건물이나 벽에 손상을 입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그렇지만 담쟁이나 송악이 벽을 타기 위해 흡착하는 과정에서 구조물에 손상을 입힐 정도로 파고들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산성비와 자외선을 차단시켜서 내구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건물을 담쟁이가 둘러싼 경우 여름철 온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다만, 약한 구조물의 경우에는 덩굴이 틈 사이로 들어가면서 구조물에 손상을 가할 수도 있다.
드디어 해파랑길과 합류했다. 사진은 해파랑길에서 내려오는 길이다.
염포산을 내려온 해파랑길은 방어진항을 향해서 도심을 가로질러간다. 방어진항에 이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든베이비치라는 오피스텔과 그 앞 주차장 공사 때문에 길을 빙 둘러가야 했지만 지금은 항구에서 그냥 직진해도 된다.
일단 산을 따라 내려오는 봉수로에서 방어진 순환도로를 향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울산 동구를 남북으로 달리는 방어진 순환도로를 만나면 좌회전한다.
문재 사거리를 만나면 횡단보도로 방어진 순환도로를 건너고 대각선 방향으로 내리막 길을 걷는다.
독특한 모양의 보도블록.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만큼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보도블록을 제작해서 깔았나 보다. 시멘트 블록이지만 괜찮은 아이디어다.
지나는 길에 이게 뭐지? 하면서 궁금증을 유발했던 건물. 건물의 모양은 유럽의 대형 성당을 연상시키는데 과연 무엇일까? 했는데 성당이 아니고 개신교 교회인 방어진 제일 교회의 모습이었다.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두 아들의 순교와 함께 자신도 순교했던 손양원 목사가 전도사로 시무했던 교회라고 한다.
언덕길로 내려가면서 드는 생각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조선시대에 방어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 방어진.
방어진 항구에 들어가는 모서리에서 만난 증곡 천재동 인간문화재의 탈과 토우. 탈은 선생이 동래 야류라는 부산 동래에서 내러 오던 탈 놀음에 사용하는 탈들을 만든 것이고, 토우는 선생이 1990년대에 제작한 "가자 가자 장에 가자 개기 사러 장에 가자"라는 작은 토우 작품을 청동으로 복원한 것이라 한다. 울산 방어진 출신의 그가 십 대의 나이에 동네 친구들과 "부대장"이란 창작 연극 무대를 올렸다는 이야기. 일본 유학시절 미술과 연극 기초를 배웠고 국내로 돌아와서는 동시, 그림, 탈, 토우, 연극 대본, 연출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이야기. 야구 선수, 공무원, 교사, 예술인까지 다양한 색깔의 삶을 살았던 그분의 인생 역정이 매력적이었다. 일장기를 올리고 예를 표한 후 예배를 드리라는 당국의 지시를 거부한 것으로 폐쇄되었던 지금의 방어진 제일 교회에서 일본 승려의 주례로 독립투사의 딸과 결혼식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소설의 한 장면과 같았다. 결혼식을 하려면 신사에서만 가능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선생이 결혼하려고 했던 신부는 일본에서 천황을 암살하려다가 체포되어 고문으로 사망한 울산 동구 출신의 서진문 의사였다. 이렇게 방어진항 입구에서 귀중한 인물을 만난다.
방어진 항구의 모습. 오후 시간이라 위판장은 한적하고 항구도 조용하다.
한 어선에 꽂혀있는 대나무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풍어제에서 사용했다는 풍어기에 대한 해설을 보면 "대나무로 깃대를 만들고 길고 검은 천에 적·청·황·백의 가늘고 긴 기폭을 달고, 깃대 위에는 생대나무 가지를 꽂은 오색기"라고 하는데 왜 꽂았는지는 선장에게 물여 보아야 할 테고, 미루어 짐작해 보면 풍어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선 위로 해가 내려간다. 이곳이 동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풍경이다.
방어진항 끝에서는 길로 나가서 동진항을 돌아가는 성끝마을을 진입한다. 성의 끝에 있다 해서 붙은 이름 성끝마을은 벽화 마을로도 유명하지만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이 있는 모양이었다. 근처 대왕암 공원 조성 사업으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에 맞추어 지자체는 주차장이나 광장 등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는 모양이었다. 성끝마을의 90% 이상이 국유지라니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는 이들의 아픔이 있다. 동진항은 방어진 구석에 있는 작은 어항으로 작은 배들이 정백해 있는데 이곳도 매립 예정이라 한다. 개발의 광풍 속에서 이곳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뭍에 올려져 정비를 앞두고 있는 작은 선박의 모습이 이곳 사람들의 처지인 것 같아 쓸쓸해 보인다.
방어진 등대 옆으로 일몰이 화려하다.
성끝 마을 앞에 있는 슬도의 모습이다. 방어진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무인도로 성끝 마을에서 슬도까지 둑이 있어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슬도는 파도가 치거나 바람이 불면 거문고 소리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도 한다. 동해에서 일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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