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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의 산책길을 걸어온 해파랑길 7코스의 나머지는 내황교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U턴하여 강변으로 진입하는 것으로 길을 이어간다. 태화강 강변의 억새 군락지를 지나면 아산로를 따라서 도로변 산책길을 통해 7코스 종점인 염포산 입구까지 걷는다.

 

내황교를 지난 다음 U턴하여 강변 산책로로 진입하려면 내황교 아래를 지나야 하는데 다리 교각에 그려진 낙서와 같은 그림들이 정겹게 눈에 들어온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놀던 노랫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남자아이들은 주로 짬뽕 야구나 비석 치기, 오징어 놀이, 땅따먹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말뚝박기 놀이를 했지만 동네를 울리는 여자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찾으러 왔느냐 왔느냐
예쁜 꽃을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가위 바위 보

 

억새 군락지를 지나는 산책길. 겨울 햇살을 받은 억색의 이삭이 더욱 희게 보인다.

 

태화강 산책길에서 마지막으로 지나는 다리인 명촌 대교 아래를 지난다. 명촌대교와 학성교는 교통 체증이 심해서 학성교와 명촌대교 사이에 제2 명촌교를 건설할 예정이라 한다.

 

명촌대교 바로 옆에는 동해선 철교가 나란히 지나고 있는데 때마침 태화강 역으로 향하는 기차가 있었다. 강을 건너면 태화강역이 있고 그 다음 역이 6코스의 기점인 덕하역이다. 부산에서 시작하는 동해선 광역 전철이 올해 태화강역까지 연결된 예정이고 이후에는 북울산역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태화강의 억새 군락지 풍경은 정말 엄지 척이다.

 

억새 군락지를 지나 아산로를 접어드는 지점에 이르니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가 들린다. 비행기 한대가 울산 북구에 있는 울산 공항으로의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울산역 KTX가 생기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이 바로 울산 공항이라 한다. 여전히 코로나 시국이라 항공 업계의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지만 코로나 직전에는 저가 항공 업계 덕분에 공항 수요의 상당 부분을 회복했었다고 한다. 울산 시민들의 입장에서도 저가 항공에서 국제선과의 화물 연계 서비스가 지원된다면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비용이나 편의성 면에서 매력적이지 않을 싶다.

 

해파랑길은 태화강의 산책길을 벗어나 아산로의 도로변 자전거, 보행자 겸용 도로를 따라 걷는다. 왕복 6차로의 도로변을 걷는 길이므로 자동차 소음은 어쩔 수 없지만 바다와 인접한 태화강 하류를 보면서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1996년 완공된 아산로 안내판에 정주영 회장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 도로의 개설은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의 도로가 되기까지 20년이 걸린 셈인데 결론적으로 지자체는 도로의 경로를 변경해주고 현대자동차는 건설 후 기부채납 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2015년 염포산 터널이 개통되면서 아산로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울산 동구까지 쉽게 갈 수 있는 경로도 생겼다.

 

아산로 초입에서 바라본 울산대교 쪽의 모습. 

 

가는 길에 빗물 통로에서 씨앗이 발아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이는 나무를 만났다. 생명이란, 정말 대단하다.

 

아산로 옆의 자전거, 보행자 겸용 도로는 가드레일도 있고 많은 구간이 차로보다 높게 만들어져 있어 걷기에는 안전한 길이다. 소나무와 바다 바람을 맞으며 걷는 길이다.

 

바다와 만나는 태화강 하류는 강폭이 600미터에 이르고 울산항 부근은 1.5Km에 이르는데 때마침 부는 바람을 맞으며 윈드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 건너편에 태화강 수상 레저 계류장이 있어서 윈드서핑, 카누, 조정, 고무보트 등의 수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파도가 넘실대는 해수욕장에서 타는 서핑의 맛도 있겠지만 바다와 민물이 섞이는 잔잔한 강 하구에서 서핑을 배우는 것도 괜찮다 싶었다. 거대한 산업단지 사이로 흐르는 강 하구에서 부담 없이 서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태화강의 기적에 동의할 수 있겠다 싶다. 그 누가 이 강이 20년 전 악취가 풍기고 숭어가 떼죽음을 당하는 죽음의 강이었다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오랜 시간 태화강이 살아있는 생태 하천으로 남아 주기를 바라본다.

 

햇빛에 반짝이는 태화강과 뒤고 산업 현장을 배경으로 한 울산 대교의 전경이다.

 

염포산 터널로 연결되는 성내 고가교 우측을 통해 성내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 좌회전한다. 7코스의 종점인 염포산 입구 근처이다 보니 8코스 안내판이 등장했다. 성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방어진 순환 도로 따라 직진하면 염포산 입구에 닿을 수 있다.

 

오늘의 점심 식사는 염포 삼거리 직전에 있는 성내 식당에서 백반으로 해결했다.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이었는데 저렴한 가격에 맛도 나쁘지 않았다. 기름에 자박하게 튀겨낸 생선 튀김과 얼큰하게 끓여낸 국이 인상적이었다.

 

소금밭이 많았다고 해서 염포라 이름이 붙은 이곳은 지금이야 산업단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예전만 해도 소금과 항구로 유명했던 곳이다. 세종 당시 삼포 개항이라 해서 부산포, 진해 내이포, 울산 염포를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는데 그 주인공의 하나가 바로 염포다. 삼포 왜란 이후에는 국제 무역항의 지위를 잃었지만 해방 당시만 해도 어업으로 번창하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울산이 우리나라 동해안의 최대 소금 산지였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지만 울산만의 천혜의 자연조건과 넓은 산지에서 나오는 풍부한 땔감은 벽화에서처럼 끓여서 만드는 자염을 생산하는데 최적이었겠다 싶다. 천일염은 바닷물을 염전에 끌어들이고 햇빛에 증발시켜 얻지만 의외로 우리 민족이 소금을 얻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백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모두 자염 법에 의해 소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염을 만드는 과정은 염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함토를 만드는 과정으로 시작하는데 갯벌 흙을 부수고 햇빛에 말리고 바닷물을 먹이고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데 울산이 이 작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것이다. 함토가 만들어지면 여기에 바닷물을 붓고 졸이듯이 끓이며 거품을 걷어 내는 것으로 하얀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고된 작업이지만 부드러운 짠맛에 미네랄도 풍부하다고 한다. 물론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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