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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나이 정부 박물관의 고고학관은 위의 지도에서 (1)로 표시된 본관의 1층과 2층에서 시작하여 2층에 있는 통로를 통해서 옆 건물로 이동하여 전시가 이어지는 형태이다.  옆 건물 2층에서 고고학관이 끝나면 동물학과 지질학관이 이어진다.

 

고고학관의 시작은 힌두 문화를 기반으로 한 남인도 조각(South Indian Sculptures) 작품들에 대한 전시로 시작한다. 좌측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지닌 가네샤(Ganesa) 신의 조각. 인간의 몸과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지혜와 재산의 신. 우측은 4~16세기경의 조각들이다.

10~11세기 남인도 놀람바 왕조(Nolamba dynasty)의 유물. 마헨드라(Mahendra) 1세 및 2세가 이 왕조에 있었던 국왕이었다.

 

첸나이 정부 박물관의 모형. 

 

11세기~14세기 남인도에는 칸나다인들이 세운 호이샬라 왕조가 있었는데 사진처럼 화려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4세기에 걸쳐 현재의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와 타밀나두 주 일부를 통치한 왕조인데 지배자들이 예술과 문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면서 남인도의 예술, 건축, 종교의 발달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고대의 조각이나 현대의 조각이나 그 작품의 소재가 힌두신이기 때문에 우리네 눈에는 큰 차이가 없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힌두의 문화가 사회를 지배하는 곳이니 불교, 유교를 거쳐 다양한 종교로 세분화된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대목이다.

 

남성신이 있고 여성 신이 따로 존재하는 힌두 조각들을 계속 보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적인 포즈가 하나 있는데 바로 일명 짝다리 포즈이다. 우리말에서는 짝다리를 짚는다고 하는데 선다고 하지 않고 짚는다는 표현을 생각하다 보니 재미난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물소 모습의 악신을 밟고 있는 조각이다. 인도에서 소가 고속도로를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풍경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일 만큼 소를 숭배하지만 같은 소라도 물소는 악신이기 때문에 잡아먹는다는 것을 네팔에서 들었는데 이 조각을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사실 인도는 세계 소고기 수출 시장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소고기 수출 1위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호주산이나 미국산 정도이지만 인도산 소고기는 가까운 베트남이나 말레이시아 등지로 수출된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알아보니 인도 인구의 80% 정도가 힌두교 신자이지만 워낙 인구가 많다 보니 비율은 작더라도 이슬람교의 인구가 세계에서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을 정도로 2억 명에 이른다고 한다. 바로 이들이 물소 위주로 소를 사육하고 수출하는 것이었다. 

 

첸나이 시내를 오가며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가장 안타까웠던 모습 중에 하나는 소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끔은 넓은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들도 있었지만 많은 소들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로변에서 비닐 투성이인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소는 악신으로 분류되는 물소가 아니라 어깨에 혹이 있는 인도 혹 소(Zebu)로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하여 소를 숭배하는 이유는 소에 많은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때로 소가 차에 치여 로드킬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카스트의 최하층 사람들이 처리한다고 한다.

 

코끼리상과 댄서 조각인데 유물에 건물과 일체 된 모습도 재미있고, 신이나 일반 무용수나 최고의 포즈는 짝다리라는 것도 재미있다.

 

7세기~15세기 중세의 조각들.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전시되고 있다.

 

조금은 많이 들어 보았던 굽타 왕조(Gupta)의 유물들은 기본적인 보호 장치를 갖추었다. 굽타 제국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북인도를 통치하던 제국으로 인도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남인도까지는 통일하지 하지 못했고 인도 왕조중 그 어떤 왕조도 인도 전체를 통일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기원전 인도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마우리아 왕조도 남인도는 지배 범위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아소카 왕조, 무굴 왕조, 굽타 제국 까지도 남인도까지 통일하지는 못했다. 현재의 인도는 영국 식민지의 결과물 일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불교의 부처상. 인도의 종교는 브라만교에서 불교로 불교에서 힌두교로 변화되었는데 불교는 브라만교의 분파라 할 수 있고 힌두교는 불교를 수용한 브라만교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금식하고 있는 부처상. 뼈와 핏줄까지 사실적 묘사가 인상적인 조각 작품이다. 해부학적인 조예를 기반으로 작품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실제 금식하는 수행자를 모델로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아닐까 싶다.

 

초기 북인도 조각 작품. 지역 차이가 조각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부처의 발을 경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 아마라바티(Amaravathi) 지역의 유물로 관람자들이 하도 만져서 반들반들한 부분도 있고 하단은 흠집이 가득하다.

 

동판 문서(Copper Plates Grants) 유물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나는 유물이었다. 스페인에서 만화 작품을 표현한 인쇄용 동판을 본 적이 있지만 문서로 사용되는 동판은 처음이었다. 인도에서는 고대로부터 정부의 공식문서 내지 부동산 권리서 등 법적 효력이 있는 공식문서를 동판에 새기는 방법으로 작성했다고 한다. 남인도를 새김 글의 땅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사원 벽에 새기는 것과 함께 동판에 남긴 유물이 많은 모양이었다.

 

종이 문서도 가치가 있겠지만 사람의 심리가 동판에 글을 새기면 더 확실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영국인들이 강에서 특정 마을로 물을 끌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이 적힌 동판 문서.

 

비문(Inscriptions) 유물. 글이 적힌 유물은 어느 민족에게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당시의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아닌가 싶다. 비문에 새겨진 문자는 데바나가리(Devanagari)라 부르는 문자로 고대 인도에서부터 발전한 문자이다.  산스크리트어를 적는데도 쓰였고 현대에 있어서는 영어와 함께 인도의 공용어인 힌디어를 적는데도 쓰이고 카슈미르어, 마라티어, 네팔어를 적는데도 쓰인다. 네팔 여행 시 열심히 외워 보았던 네팔 숫자 ० १ २ ३ ४ ५ ६ ७ ८ ९ 도 데바나가리 문자인 것이다.

 

본격적인 힌두 조각으로 들어서면 반복적으로 많이 추아되는 힌두신의 이름들이 반복된다. 비슈누(Vishnu)는 악을 제거하고 정의를 유지하는 평화의 신이다. 춤추는 가네샤(Ganesa). 인간의 몸과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지혜와 재산의 신.

나가 스톤(Naga stone, Nagakkal)이라 불리는 유물. 나가(Naga)는 산스크리트어로 뱀을 의미하는데 인도 신화에서는 반신격으로 대지의 보물을 지키는 뱀이라고 한다.

 

2층 통로를 통해서 옆 건물로 이동하면 각 방별로 전시실이 이어진다. 오전의 햇살이 들어오는 전시실에서 아주머니들이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건 청소를 하는 건지, 청소하는 시늉을 하는 건지, 오히려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들의 사정을 모르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해야 한다면 일을 하는 사람도 보람이 있는 일이 돼야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 변화, 죽음의 여신 칼리(KALI). 파괴와 광란의 무시 무시한 여신을 만나면서 왜 옆지기가 생각날까? ㅎㅎ 시바가 남편이 된다고 한다. 칼리 아래에 있는 것은 혹시 나? 

 

박물관에서는 거대한 힌두 사원을 부분적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박물관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기반한 수많은 조각을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서구 박물관과의 차이점이라면 에어컨과 인공조명보다는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과 자연 채광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전의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기둥처럼 힌두 사원의 기둥들도 나름의 예술적 품위를 뽐내고 있다.

 

나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힌두 사원의 기둥 장식들. 

 

힌두 조각에 이어지는 자이나 조각(Jain Sculptures) 전시실. 자이나교는 불교가 발생한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종교이자 철학으로 불교처럼 기존 종교인 브라만교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불교의 창시자가 석가모니라면 자이나교의 창시자는 바르다마나(Vardhamana)로 석가모니와 동시대의 인물로 석가모니처럼 높은 계급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이나교는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완전한 해탈을 목표로 하는데 해탈을 이룬 사람을 지나(Jina)라고 하는데 자이나교의 이름이 이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이나교 유물들을 보면 불교 유물과 같은 듯 다른, 약간의 차이점이 있어 보이기는 하다. 인도에 여전히 자이나교 신자들이 있지만 불교와 자이나교를 합쳐도 인구의 1% 정도라고 한다. 그래도 2백만 명이지만......

 

불교와 자이나교는 그 당시 기성 종교인 브라만교에 반동해서 일어났으며 카스트를 부정하고 평등을 주창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지만 자이나교 조각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는 듯하다. 수행자의 머리 위에 뭔가를 올려 두고 있는데 자이나 교는 특히 금욕과 고행을 강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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