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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반도 중심에 있는 성 아우구스틴 광장과 성 로렌스 성당을 지나서 마카오 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아마 사원과 해사 박물관까지 걷는 여정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촌락과 마을을 구성하려면 예나 지금이나 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릴라우 광장(Lilau Square, 亞婆井前地)도 마카오의 주요 수원중에 하나가 있던 자리라고 합니다. 릴라우는 "산에서 솟는 샘물"이란 의미입니다.
릴라우 광장 주변의 건물들. "리라우 물을 마신 사람은 마카오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현재 마카오의 상수도는 중국에서 온다고 합니다.
릴라우 광장 주변은 포르투갈의 초기 정착지들중의 하나로 만다린 하우스등의 유적지가 근처에 있고 아마 사원과 성 로렌스 성당의 중간 지점 정도라서 그런지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여러 사람들이 광장에서 휴식과 만남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 이 광장을 지켜 왔을 큰 나무가 이곳에서의 휴식을 달콤하게 해줍니다. 재미있는 것은 광장 중앙에 있는 남자 1명, 여자 2명의 경찰들로 무슨 수다가 그리 많은지 서로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더군요. 그리고 저 경찰들이 우리를 따라 온것인지, 우리가 경찰을 따라 간 것인지. 아마 사원 앞 광장에서 세명의 경찰이 자리를 옮겨서 수다 삼매경이었습니다.
청나라 말기, 중국 국민정부 초기 애민교육계몽영웅(愛民敎育啓蒙英雄)으로 추앙받는 인물인 정관잉(鄭觀應)이 살던 저택인 만다린 하우스(Mandarin’s House, 鄭家大屋)의 입구 모습입니다. 10:00 ~ 18:00에 무료 입장할 수 있지만 수요일 휴관이라 아쉽게도 관람하지 못했습니다. 1869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로 중국 건축양식과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나타나던 시기의 대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건물입니다.
릴라우 광장을 지나면 아마 사원을 향해서 오던 길을 계속 내려 갑니다.
아마 사원쪽으로 길을 조금 걷다보면 좌측에 무어리시 배럭(Moorish Barracks)이라는 세계 문화 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1874년에 세워진 무어리시 배럭은 마카오의 치안을 담당했던 인도 고아인 용병들의 숙소 였다고 합니다. 포르투갈령 인도 였던 인도 서부의 고아(Goa)에서 사람들을 데려와서 치안을 담당케 했던 것이지요. 인도인의 영향이었을까요? 건물은 무굴제국의 요소가 가미된 신 고전주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마카오의 해양 관련 업무와 급수를 담당하는 관청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카오 남서부 끝자락에 위치한 아마 사원(A-Ma Temple, 媽閣廟)에 도착했습니다. 상인과 어부를 풍랑으로부터 지켜준다는 여신 ‘아마’를 기리는 사원입니다.
규모가 큰 사원입니다. 아마 사원의 이름과 마카오라는 이름이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마카오라는 이름을 "A-Ma-Gau" 즉 "아마 만(灣)"에서 따온 것이라 합니다.
도교의 영향인지 부조 조각들은 자연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자욱한 연기 냄새를 피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들이 비용을 들여가면서 태운 것만큼 연기처럼 염려과 걱정거리들도 날아갈까? 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간절히 비는 내용은 다르겠지만 염려를 날려 버리고 마음에 소망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어 지길하는 마음입니다.
아마 사원 바로 앞에는 마카오 해사 박물관(Maritime Museum, 海事博物館)이 있습니다. 해군 사관 학교 관련이 아니라 바다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으로 어부의 일상이나 포르투갈 해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면 입구에서 1인당 10 MOP로 지불하고 입장할 수 있습니다. 매표구가 따로 있지는 않았습니다.
입구를 통해 내부로 들어온 모습입니다. 우측 사진에서 앉아 계신 분이 입장권을 판매하시는 분입니다. 1층에 화장실과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관람은 1층부터 한층 한층 위로 올라가면서 관람합니다.
1층은 마카오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전시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했을 이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전시가 있는데 한 부스에서는 좌석에 앉아서 좌석별로 배치된 수화기를 들고 언어를 선택해서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는 없고 영어는 지원했습니다.
이곳 사람들의 고기잡이 모습을 모형이지만 실감나게 접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동력선이 아닌 전통배를 가지고 하는 고기 잡이 모습도 눈길을 사로 잡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배와는 사뭇 다른 배들의 모습이라서 더욱 그랬던것 같습니다.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조선소 모형을 보면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조선소들의 전형이 비슷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어촌도 그렇지만 목숨을 내놓고 배를 띄워야만 했던 마카오의 어부들도 신을 의지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표현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우측의 큰 기둥 3개는 향입니다. 대륙의 스케일이 향에도 적용된 모양입니다.
마카오 전통배의 모형.
좌우로 새장을 넓직하게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배. 아무래도 가마우지를 데리고 다녔을것 같습니다.
어민들의 또다른 수입원인 굴의 성장 과정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전시물입니다.
어느 나라의 어촌이나 모형배에 무언가를 실어 바다로 띄워 보내는 풍습은 비슷한가 봅니다. 재난을 막아 달라는 간절함, 풍어를 위한 간절함일 것입니다.
전시실 위로 올라가면 서구 열강의 다양한 배부터 현대의 페리까지 다양한 배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큰 배에서 물건을 내려 해안에 상륙할 때 사용했을 법한 보트들.
동양의 배들은 돛을 달던가 아니면 노젓기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고대 중국에 있었던 수차로 움직이는 배의 모형입니다.
배 내부에서 손잡이를 붙잡아 몸의 중심을 잡고 발로 페달을 밟아 배 양쪽의 수차를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당나라 때인 5세기 중국에 있었던 휠 보트 또는 페달 휠 보트라는 배 입니다.
명나라 때의 탐험가인 정화(鄭和)입니다.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나 환관의 삶을 살았지만 영락제가 황제에 오르는 과정에 공을 세워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에 올랐고 영락제의 명에 따라 1405년 1차 원정 출발부터 1433년 9차 원정을 돌아올 때까지 베트남, 태국, 인도, 스리랑카부터 아라비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엄청난 원정을 수행한 인물입니다. 1차 원정때 사용한 배의 크기가 길이 137미터, 폭 56미터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고 총 64척의 배에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고 하니 함대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중국에 정화가 같은 인물이 이어졌다면 세계사는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 입니다.
포르투갈의 캐러벨(Caravel). 원래는 포르투갈 연안에서 고기 잡이용 배로 사용하던것이었는데 탐험용 주력 선박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3장의 삼각 돛을 활용하면 역풍에서도 45도 바깥을 지그재그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에 원거리 항해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좌측 사진은 별자리 관측 도구인 카말(Kamal)입니다. 별 관측 도구를 이용해서 고도를 파악하여 배가 현재 어느 위도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던 도구로 중국에서 발명된 나침반이 있던 상태에서도 19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별자리 관측 방법을 우선해서 사용했고 나침반은 날씨가 흐려서 별자리 관측이 어렵거나 카말의 보조 도구 정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캐러벨(Caravel)의 단점을 보완해서 원거리 항해에 적합하도록 제작한 캐럭(carrack)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주력 범선이었다고 합니다.
데드 아이(Deadeyes)라 부르는 선박 도구로 범선의 밧줄을 감는 용도로 사용하던 도구입니다. "deadman’s eye" 라고도 합니다.
기아 요새(Guia Lighthouse, 東望洋燈塔)의 모형과 마카오 전경을 담은 사진.
다양한 관측 장비. 약간의 입장료를 받기는 했지만 나름 알찬 전시물로 참 잘 들렀다라는 생각을 했던 박물관입니다.
캠핑에서도 뱃일에서도 밧줄 매듭은 기본이죠. 이곳에서는 밧줄 매듭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부스가 있었는데 형제로 보이는 친구들이 열심히 매듭을 해보고 있었습니다. 하긴 밧줄 매듭은 가끔 텃밭 농사에서도 쓸모가 있습니다.
현재의 마카오 공항은 19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전에는 군사용 활주로를 임시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은 2차 대전 이전에 마카오에서 사용하던 수상비행기의 모습입니다.
컴퍼스를 비롯해서 항해에 사용하는 각종 도구들입니다.
현대에 사용하는 다양한 여객선 모형들입니다. 마카오 일정을 끝내고 홍콩으로 넘어갈 때 승선할 페리의 모형도 미리 살펴 봅니다.
모래 채취선과 컨테이너선등 특수 선박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을 새롭게 배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대형 선박에서 사용하는 밧줄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물입니다. 가느다란것이 모여서 두꺼운 밧줄이 만들어 지는 체계적인 과정을 만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동남아에서 가장 위험한 기후적 위협은 태풍일 것입니다. 지금이야 기상 위성을 활용한 예보로 어느 정도 대비를 할 수 있지만 예전 같으면 온도와 습도 변화의 측정 정도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처음 보는 우측의 초대형 온도계와 요즘도 사용하는 정밀 습도 기록기가 보입니다.
맨 꼭대기 층까지 관람을 끝내면 계단을 통해 내려오게 되는데 통로에는 수족관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이 나름 다양한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좌측부터 계피, 후추, 정향(Clove), 차로 배에 싣고 다니면서 사고 팔았던 물건들입니다.
해사 박물관을 나오면서 바라본 아마 사원의 모습입니다. 사원 앞의 너른 광장도 포르투갈 식의 돌 장식 바닥입니다. 이제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해서(버스 종점) 마카오 반도 북측의 중국과 마카오 국경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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