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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살다보면 특히 최근에 지은 양옥집이 아닌 오래된 한옥이나 전형적인 농촌 주택에서는 해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쥐나 뱀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라면 농촌만큼은 아니지만 도시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프랑스 파리만 해도 2017년에 400만마리로 추정되는 쥐와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 했으니 까요. 그만큼 인류의 역사와 쥐의 생존은 그 괴적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불어로 Peste는 흑사병(黑死病)을 말하는데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입니다. 2016년 탄저균이라고도 불리는 페스트균을 주한미군이 통보 없이 한국땅에 들여온 것 때문에 말썽이 있기도 했습니다. 흑사병하면 쥐가 연상되는 이유는 쥐가 균을 사람에게 옮기는 벼룩의 숙주이기 때문입니다. 쥐를 숙주로 쥐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서 사람에 까지도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균이 아니더라도 쥐를 보는것만 해도 징그럽지요. 어릴적 쥐약 먹고 죽은 쥐를 길에서 보기라도 하면 의미도 모른체 침을 뱉고 제자리에서 몇바퀴 돌아던 기억도 있습니다.
페스트는 중세를 비롯하여 인류 역사상 엄청난 사상자를 낸 전염병입니다. 왜 이런 끔찍한 전염병을 까뮈는 소설의 소재로 했을까?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일지 사회 부조리에 대한 저항일지는 읽는 독자에게 몫이 아닐까 싶다.
북 아프리카 알제리의 제 2 도시 오랑이 소설의 배경이 된 것은 저자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의 태어나고 생활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쥐떼가 죽어나가고, 사람이 점차로 죽고 페스트로 판정나면서 도시는 고립되고 페스트라는 거대한 위력 앞에서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와 무력감에 빠집니다. 끝까지 싸우는 의사 리외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처음에는 어떻게 하든 이 도시를 벗어나려 했지만 끝내는 페스트와 싸우는 일에 함께 기자 랑베르와 같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찌 손써볼 기회 조차도 찾지 못한채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봉사 활동에 참여 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일부는 밀수로 수익을 올리고, 오히려 페스트가 물러갈 것을 걱정하며 현재를 즐기는 코타르와 같은 부류도 있었습니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 일제 치하의 조선, 폭력적 군대에 포위된 광주와 처럼 힘과 폭압으로 희생을 강요 당했던 '오랑'도 있었지만 돈과 권력으로 정체를 두겹, 세겹 숨긴체 자신의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재의 '오랑'도 있습니다. 까뮈가 그린 여러 인물 속에는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힘을 떨치는 세력의 정체도 상황도 모른체 그냥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부조리에 맞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의외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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