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데미안", "싯다르타", "페터 카멘친트"등 유난히 인상 깊었던 책들 때문일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다시 만나는 것은 떠나보낸 오랜 벗을 다시 만나는 기쁨만큼이나 책 표지의 저자 이름만 보아도 마음이 설렙니다. "이레" 출판사에서 펴낸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은 글쓰기의 재주는 일천하나 시인도 되고 싶고 소설의 저자도 되고 싶은 필자와 같은이에게는 "교과서"와 같은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어 원문이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세의 여러 시는 운문의 깊이와 시 다움을 보여주면서도 저자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옮긴이(두행숙)의 탁월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작이 훌륭한 까닭이겠지요. 책의 독특함은 산문과 운문이 조화롭게 엮여 있는 것과 함께 헤세의 사진과 삽화들이 곳곳에 보너스처럼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운문의 무게에 눌리지도 않고 긴 글조차도 가볍게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씩 나오는 헤세의 사진과 삽화를 만나다 보면 마치 지금 그와 함께 있어 그의 육성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정원"과 그 주변 환경, 정원에 몸을 걸치고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시와 긴 글로 풀어내는 헤세를 만나다 보면 어떤 글쓰기를 배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샘솟습니다. 꽃 하나, 나비 한 마리를 소재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헤세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따라해 보리라!" 하는 욕망이 불일 듯합니다. 

두껍지 않은 시집을 붙들고는 무거운 마음에 시를 읽어 내려가는 것 자체가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소설가는 고뇌로 집필했을 두꺼운 장편 소설을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깃털 마냥 가볍게 읽어 보낼 때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정원일의 즐거움"은 이러한 염려를 날려버리는 마법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중의 무게가 느껴진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위의 그림은 49페이지에 있는 "파란 나비"라는 시의 친필 원고 사진입니다.  이런 사진과 삽화가 함께하는 책이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이 사진의 "파란 나비" 시를 아래에 옮겨봅니다.

 

파란 나비

작은 파란 나비 한 마리가

바람에 날려 파닥인다.

진주 같은 빛이 질풍처럼

반짝이고 퍼덕이다 사라진다.

 

그렇게 한순간 반짝이다

그렇게 사라지며

행복이 내게 눈짓하는 것이 보였다.

반짝이고 퍼덕이다 사라지는 것이.

 

728x90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