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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장길에 읽을 책을 하나 골랐다. 기독교 서적은 저자들의 주관적인 시각이 성경에 비해 너무 식상하고, 건강 관련 책을 읽자니 사전식이라 지루하고 약간 미신적인 면이 없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술 서적에 머리를 파 묻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얼마전 옆지기가 아름다운가게에서 구입한 "나를 훔쳐라"가 눈에 들어 왔다. 저자 박성원을 알고 있을 정도의 문학에 조예가 깊은 수준이 아니었지만 "나를 훔쳐라"는 강렬한 제목이 여행길의 동반자로 삼기에 충분했다.

"나를 훔쳐라"는 소설의 제목은 아니고 여러 소설을 하나로 묶은 소설집이다. "댈러웨이의 창, 중심성맥락망막염, 이상한 가역 반응, 실마리, 런어웨이 프로세스, 호라지좆, 왈가닥 류씨"의 소설들로 구성했는데, 모두 "나"를 돌아보게 하는 "나"를 찾는 과정을 안내한다. 내 안에 잠재한 또다른 세계, 또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책을 읽으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생각의 한 귀통이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인지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훔쳐라"를 한국판 데미안이라해도 될까? 싶다.

여러 소재와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라는 존재를 살피고 있지만 이 소설집의 특성을 설명하는 단어를 하나 꼽자면 "실험"이지 않나 싶다. "우비고, 아등그러질, 도글도글, 투미하고, 쟁글쟁글, 슬렁슬렁, 어벌쩡하게, 되알진, 무르춤한" 등등 책의 곳곳에 자리한 우리말들은 우매한 독자의 눈에는 생경스럽지만 네이버사전을 쳐보면 "아하!"하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정확한 의미가 있는 단어들 이었다. 대부분 의성어나 의태어로 이런 단어들을 만나면 입모양으로 어떤 의미일까 상상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군대시절 야간 사격 훈련을 하다보면 표적이 잘 보이지 않을때 시야를 다른곳으로 했다가 표적으로 향하면 조금 나아지곤 하는데 저자가 풍성하게 뿌려놓은 생경스러운 단어들이 "나"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어 선택과 함께 소재의 독특성도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지 않나 싶다. 구더기를 품고 사는 구더기 사내, 호라지좆(천문동)을 비롯한 식물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등은 참 기발하다 싶다. "나"의 내면에 잠재한 생각과 욕구를 대면하고, 내가 당연시하는 모든 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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