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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방조제를 지나서 천북면 하만리의 두룽개길을 걷고 있는 서해랑길은 국도를 가로질러 하만 4리를 지나면서 천북면 사호리로 접어든다. 사호 교차로부터는 사호장은로 도로를 따라서 해안으로 나간다. 해안으로 나온 길은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물이 빠진 간조시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만조시에는 길이 막히므로 이 구간은 반드시 물때를 확인하고 가야 한다. 가족과 함께 이동했던 필자의 경우에도 중간 지점까지는 망가진 산책로를 뚫고 겨우 겨우 이동할 수 있었지만 이후로는 만조로 길이 막혀 아예 갈 수가 없었다. 만조시에 갈 수밖에 없다면 사호 3리부터 중간길로 우회하는 것이 적절하고 중간지점까지 이동해서 길을 막혔다면 녹색 경로로 우회할 수 있다. 길은 사호리를 지나서 천북 굴단지가 있는 장은리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날씨는 그냥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34도에 육박하지만, 주위 모습은 가을이다. 벌어진 밤송이도 땅에 떨어지고, 감도 노랗게 익어가고 있고, 석류도 탐스럽게 익었다.
주렁주렁 달린 대추나무는 풍요로운 가을임을 외치고 있다.
대표적인 여름꽃 중의 하나인 능소화가 허물어져가는 가옥을 붙들고 아름다움을 전한다. 집이나 사람이나 살지 않거나 관리하지 않으면 점점 더 낡아갈 수밖에 없지만 자연의 식물들은 낡고 늙어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두룽개골을 빠져나온 길은 40번 국도 홍보로를 가로질러 서쪽으로 이동한다. 62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었다.
사호리로 갈라지는 하만 교차로 아래에서 국도를 가로지른 길은 구릉지의 마을길을 돌아서 하만 4리로 향한다. 파란 하늘의 흰구름을 보면 영락없는 가을 하늘인데, 왜 이리 찌는듯한 날씨인지 동행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맥을 못 춘다. 물을 넉넉히 챙겨 오기는 했지만 62코스 경로 상에 물을 보충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이 또한 비상이다.
배롱나무를 백일홍 나무라고도 하지만 원래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인 백일홍을 한 농가 정원에서 만난다. 멕시코가 원산이라고 한다.
산아래로 이어진 마을길을 돌아가는 길은 하만 4리 앞에서 도로를 만나서 도로를 따라서 이동한다.
한 농가의 텃밭에서 만난 도라지 꽃이 청초하다. 심고 싶은 작물 중의 하나이다. 도라지 꽃색이 단아한 한복색 같아 참 보기 좋다.
하만 4리부터 도로변을 걷는 길은 도로의 갓길을 따라 사호리 방면으로 이동한다.
사호교차로에서 사호교를 건너서 사호장은로 도로로를 걷는 길은 도로를 따라 해변으로 나간다.
길은 도로를 따라 사기점골, 사호 3리 짓개를 차례로 지난다. 사기점골은 옛날에 사기를 구웠던 동네라고 한다. 이곳을 지나면서 폭염 속에서 물이 떨어진 일행은 때마침 동네분들의 친절한 도움 덕분에 생수를 여섯 병이나 보충하면서 나머지 여정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해안으로 나온 길은 천북 굴따라길이라는 이름의 길과 합류하여 길을 이어간다. 천북 굴따라길은 공룡 발자국 화석이 있다는 학성리 맨삽지에서 천북 굴단지까지 7.9Km에 이르는 길이다.
해안에서 보이는 그림은 수평선 대신 안면도가 자리하는 풍경이다. 남서쪽으로는 해저 터널로 육지와 연결된 원산도와 안면도를 이어주는 원산안면대교도 보인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안면도와 나란히 북쪽으로 향한다. 구름이 오후의 태양을 조금 막아 주고 있는 것이 다행이지만 무더위만큼은 어쩔 수 없다.
해안길을 걷다가 우연히 순비기나무꽃에서 열심히 꿀을 따고 있는 호박벌을 만났다. 덩치는 꿀벌보다 크지만 순둥순둥하니 귀엽다.
호박벌에 집중하느라 놓칠뻔한 순비기나무의 보라색 꽃도 일품이다. 영롱한 보랏빛이다. 꽃이 지면 검정 열매가 맺히는데 만형자라는 이름의 한약재이다. 식물이라고는 뿌리내리기도 어려운 소금기 많은 땅에서 벌에도 사람에도 유용한 식물이라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천북 굴따라길 덕분에 아름다운 해변길을 이어간다. 예전에는 사호 3리 마을로 돌아갔어야 하는 길도 해안길로 직접 갈 수 있다.
해안 데크길을 통해 사호 3리 포구로 넘어온 길은 계속 북쪽으로 이동한다.
사호 3리 포구 이후의 길이 문제였다. 사실 물이 빠진 상태에서는 난간이 있는 이길로 가지 않고 해안으로 내려가서 걸어도 된다. 해안을 따라서 마을분들이 물이 빠질 때 사용하는 콘크리트 길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때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우리는 난간이 있는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 길은 잘 정비되지도 않았고 길도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ㅠㅠ
망가진 길을 원망할 일도 아니었다. 물때를 감안했어야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패착이었다. 결국 길이 망가진 구간에서는 해안으로 내려와서 이동했다.
물때를 돌아보니 우리가 이곳을 지나던 때가 오후 3시 30분경이었는데 물 높이가 가장 높은 만조의 절정기였다. 물론 한두 시간 기다리면 물이 빠지겠지만, 당일 여행으로 떠나온 나그네가 무더위 속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령시에서 길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흙이 길로 쏟아져 내려서 이미 길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냥 이곳은 간조 때 지나가는 것이 답이다. 만조와 간조의 물 높이 차이가 7미터에 이르니 간조 인근 시간에 지나면 그냥 해안으로 이어진 콘크리트 길을 걸을 수 있다. 지금은 만조 때라 볼 수도 없지만 물이 빠지면 해안 절벽 아래로 거짓말처럼 콘크리트 길이 드러난다. 위성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은 만조 때라 해안으로는 갈 수 없으니 천북굴따라길의 흔적을 따라서 계속 이동한다.
산속으로 조성된 임도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종아리는 풀에 긁혀서 말이 아니다.
임도를 내려오니 이곳도 물이 차서 건널 수가 없다. 물이 빠지면 노두길이 드러나서 직진하여 건널 수 있는 길이지만 지금은 해안선을 돌아서 가야 한다.
결국 사호 2리까지 진행한 길은 만조 물에 막혀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신발을 벗고 계단으로 이동해 보려 했지만 물이 허벅지까지 차는 깊이까지도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이런 우리를 지켜본 동네 분들은 길이 없으니 돌아가라는 분도 있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한 시간 정도 기다리면 물이 빠지니 기다렸다 가는 게 좋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다. 우리 일행은 모두가 신발을 벗었다가 다시 신는 촌극을 벌여야만 했다.
우회로는 사호 2리 노인회관을 끼고 좌회전하여 돌아가면 이후로는 숲길을 거쳐 장은리 천북 굴단지에서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명절을 맞이해서 가족과 함께한 서해랑길 걷기는 예상치 못한 폭염과 만조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 독특한 경험을 한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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