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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1코스는 모슬봉을 지나면 보성리에 도착한다.
모슬봉 언덕길을 부지런히 올라오니 나이 먹은 백구 한 마리가 흐흐하며 미소 짓는다. 세상에 저런 개가 있나! 사람이 지나가도, 멈추어 서서 사진을 찍어도 미소만 지을 뿐 도통 짓지 않는다. 백구 나름의 연륜이 쌓은 것일까? 모슬봉의 기운을 받아 넓은 마음을 가진 것일까? 아니면, 올레꾼들을 하도 보아서 그러려니 하는 것일까? 사진을 자세히 보면 미소 짓는 백구의 모습은 만화 영화에서 씩 웃는 캐릭터의 모습 같다.
모슬봉 언덕에서 해안을 보니 아랫마을보다는 수평선이 깨끗하게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수평선과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수평선은 그 맛이 다르다. 아마도 시야에 사람 사는 풍경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나 싶다. 여행지에서의 시간 보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대하며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더 설레는 이치 아닐까?
농가 밖에 쌓아놓은 마늘 자루의 태그를 보니 "대정 최남단 마늘"이라고 적혀 있다. 대정읍은 제주 마늘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마늘 주산지로 8월 초는 한참 마늘 종자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제주에서는 보통 8월 하순에서 9월 상순까지 마늘을 파종하므로 종자를 한참 준비하는 시기인 것이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삼삼오오 앉아서 손으로 마늘 쪽 나누기를 하지만 대단위 농장에서는 마늘 쪽 분리기라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늘 주산지라고 하면 서산과 의성을 떠올리곤 했는데 제주 특히 서귀포의 마늘 생산량은 의성군에 육박한다. 대정읍 농로를 지날 때 보니 많은 밭들이 땅을 갈아 놓았고 어떤 밭들은 비닐까지 덮어 놓았는데 대부분 마늘밭인 모양이다.
올레길 11코스는 모슬봉 능선을 넘어가는 길을 가다가 우회전하여 모슬봉 반대편으로 능선을 돌아간다. 내년 초 이른 봄이면 푸릇푸릇한 마늘잎을 선보일 마늘밭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모슬봉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능선길은 다시 우회전하여 숲길로 진입한다.
숲길을 따라 모슬봉 바로 아래 능선을 돌아간다. 오로지 구름이 복권 당첨처럼 주는 그늘이 있는 들판 걷기보다는 나무 그늘이 있는 숲길 걷기는 정말 좋다.
모슬봉 숲길을 나오면 일주서로에서 모슬봉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나는데 가파른 도로를 따라서 얼마간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가파른 포장도로를 끝까지 오르면 군부대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올레길은 중간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모슬봉 아래를 우측으로 돌아간다. 상모리 공동묘지를 지나는 길이다.
올레 11코스는 어찌 보면 올레길 중에서 공동묘지를 가장 많이 지나가는 코스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상모리 공동묘지를 시작으로 대정읍 공설 묘지, 칠성 공동묘지, 천주교 공동묘지까지 대규모 공동묘지들의 근처를 지나다 보니 누군가는 올레길 11코스를 묘지 투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여성 혼자 깊은 산중에 있는 공동묘지를 지나면 조금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숲길, 들길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멍 때리며 걷는 것이 태반인지라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올 공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제주에서는 무덤을 환하게 밝히려고 묘지 입구에 배롱나무를 심는 다고 하는데, 이곳에도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가 한 여름을 붉은 꽃으로 밝히고 있다.
공동묘지 구간을 지나온 올레길은 다시 울창한 숲길을 통해서 길을 이어간다. 나무 그늘 사이로 가끔은 따가운 햇살이 들어와 눈 부실 때도 있지만 상긋한 숲 냄새, 솔솔 부는 바람, 새소리와 초록 가득한 녹음까지 오감을 깨우는 숲길은 참 좋다.
모슬봉 아래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숲길,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보니 나무들 사이로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은 모슬봉에서 정동 방향으로 5Km 떨어져 있다.
올레 11코스 17.3Km 중에서 5Km를 지나고 있다는 표식이 등장했다. 겨우 3분의 1을 지났지만 이후는 내리막길과 평지를 걷는다. 갈길이 멀다. 이제 숲길을 나오면 다시 공동묘지 단지를 지난다.
공동묘지 단지를 지나는 길에서 바라본 모습은 수많은 묘지 뒤로 우뚝 솟은 산방산과 산방산과 모슬봉 사이에 뾰족한 봉우리를 드러내며 수줍게 자리 잡은 단산과 금산이다. 2020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매장을 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비율이 90%에 육박하고 있지만 제주도와 충남의 경우에는 80%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 지역들의 장례에 대한 생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주도의 경우에도 20년 전에는 화장하는 비율이 10%에 불과했으니 제주의 장례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야 할 상모리, 동일리, 보성리, 신평리, 무릉리로 이어지는 대정읍의 넓은 들판 방향을 바라본다. 우측으로 실루엣만 살짝 보이는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있다. 걷기 하는 사람들만 들어오라는 표식을 따라 산불 감시 초소로 이동하면 올레길 11코스 모슬봉 중간 스탬프함을 만날 수 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그렇지 이곳은 산 전체가 묘지인 곳이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나고 자라서, 오름으로 돌아간다" 말이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그림이다.
모슬봉 중간 스탬프함을 지나면 숲길을 조금 올라갔다가 이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모슬봉을 내려가는 길은 봉우리 반대편보다는 경사가 조금 급한 숲길이다.
숲길에서 만난 요란한 매미 소리를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고막을 때리는 엄청난 여름 제주 매미의 소리가 시끄럽기는 하지만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여름다운 소리이니까!
모슬봉을 내려가는 길, 대정읍의 넓은 들판과 함께 대정읍 구억리 일대에 자리한 정주 인구 2만 명의 제주 영어 교육 도시도 눈에 들어온다. 계획 도시인만큼 멀리서도 아파트와 같은 큰 건물들이 구별되어 보인다. 소위 자금력 있는 맹모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란다. ㅠㅠ
편안한 포장길을 따라서 모슬봉을 내려간다. 길이 포장되어 있는 이유는 이곳이 공동묘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묘지 길을 나오면 신평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만나고 한동안 이 도로변을 따라 걷는다. 대정읍 공동묘지라는 표지판을 뒤로하고 이제는 망자의 공간이 아니라 산자의 공간으로 걸어보자.
신평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걷는다. 별도의 자전거길도 도보로도 없기 때문에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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