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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부부가 걷는 해파랑길 여행기 마지막 글이다. 일단 대진 1리 해변에서 마차진 해변을 거쳐 통일 전망대까지 해파랑길 49코스를 마무리한다.

 

대진 1리 끝자락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북쪽으로는 금강산 콘도가 서있고 남쪽으로는 대진 1리 해변을 지나 멀리 대진 등대도 보인다.

 

대진 1리에서 마차진리 넘어가는 경계에는 고성군 시내버스 종점이 있다. 이곳에서 명파리로 가는 미니 버스가 대기 중이다. 나중에 명파리에서 저 버스를 타고 나올 예정이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므로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길은 금강산 콘도 앞의 산책길로 이어진다. 금강산 육로 관광은 중단되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꾸준한 모양이었다. 세상일은 모를 일이다. 어느 순간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 땅이 쑥대밭이 될 수도 있고, 독일처럼 담을 허물고 두발로 이북 땅을 걸어갈 일이 있을 수도 있다. 과연 내 생애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현시점에서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금강산 콘도를 돌아가면 바로 앞에는 무송정 또는 무선정이라 부르는 작은 섬을 지난다. 이름 유래에 무성한 소나무가 있을 것이란 추측을 했지만 엉뚱하게도 조선 성종 당시 무송 부원군 윤자운이 이곳을 다녀갔다고 붙은 이름이란다.

 

금강산 콘도를 돌아 나오면 조용한 마차진 해변이 나온다. 

 

드디어 통일 전망대에 도착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통일 전망대가 아니라 통일 전망대 출입 신고소이다. 통일 전망대는 10km를 더 가야 한다. 출입 신고소는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통일 전망대로 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육장으로 모이라는 방송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안보 교육이 다시 시작된 모양이다.

 

평화 통일 대장군과 민족 공조 여장군 장승이 안내하고 있는 해파랑길 마지막 스탬프함에서 해파랑길 49코스를 마무리하고 50코스를 시작한다. 출입 신고소에 도착할 무렵부터 빗줄기가 굵어져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빗속에서 옆지기가 가방 깊숙이 넣어둔 수첩을 찾느라 곤욕을 치른다. 마지막 스탬프함인데, 빗속에서 가방 이곳저곳을 뒤지다가 결국 매점 쪽으로 들어가 우산을 내려놓고 겨우 찾았다. 명파리에서 나올 버스를 타야 하는데, 걸어갔다가 나올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다. 배고프면 짜증을 폭발시키는 옆지기를 위해 급하게 옥수수와 호떡으로 간식을 구입해서 가방에 담았다.

 

통일 전망대까지 가려면 출입 신고소에서 신분증, 입장료를 내고 안보 교육을 받고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지만 제진 검문소 직전까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걷는 다면 출입 신고도 입장료도 필요 없다. 우리는 출입 신고소 앞을 지나 명파리로 이어지는 금강산로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옛 해파랑길 경로로 이동한다. 현재의 해파랑길 경로는 금강산로 도로를 거치지 않고 마차진리에서 명파리 산길로 진입해서 명파리 마을을 거치지 않고 명파 해변에서 바로 제진 검문소 앞까지 간다.

 

빗줄기가 굵어져서 들리는 소리는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발자국 소리, 스마트폰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는 음악소리뿐이다. 명파리 버스 시간을 맞추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빗속에서도 큰 걸음으로 힘을 내본다. 차량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지 걷기에 안전한 길은 아니다.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방향을 바꾸어 가며 걷는다. 지금의 해파랑길이 산으로 경로를 바꾼 이유를 이해할만하다.

 

통일 전망대로 가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 표지판에서 좌회전하여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간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는 길인 금강산로를 따라 쭉 직진해도 마찬가지로 통일 전망대로 갈 수 있다. 두 도로 모두 제진 검문소를 거치기 때문이다. 

 

해파랑길 50코스의 새 경로는 7번 국도와 금강산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산길로 진입하여 길을 이어간다. 도로 표지판 뒤편의 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배봉리와 명파리 방면으로 금강산로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괴테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모른다"라고 했던가! 빗 속에서 호떡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해파랑길의 참다운 의미를 모른다라는 우스개 소리를 할 법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른 아침 어제저녁에 사둔 편의점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시작한 걷기는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추가적인 요기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길을 이어 왔다. 두 사람 모두 일단 여정을 빨리 보자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시장기에 약한 옆지기의 속도가 점점 처지자 일단 출입 신고소에서 구입해둔 간식을 먹도록 했다. 가방을 앞으로 둘러메고 우산을 쓰고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가운데 호떡을 먹으면서 걷고 있는 옆지기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속으로 ㅎㅎㅎ하는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옆지기는 구입했던 호떡을 다 먹으면서도 앞서 걷는 나를 열심히 쫓아왔다.

 

명파리로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고개 꼭대기에서 고성 배봉리 봉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마을 뒤편에 봉화를 올리던 봉화봉이 있는 마을이라고 배봉리라 불렀다고 한다. 배봉리와 명파리 주민들은 민통선 안쪽으로 군부대 통제 아래 출입 영농을 한다고 한다. 

 

이제는 배봉리에서 명파리로 넘어간다. 바로 우측으로는 통일 전망대로 향하는 7번 국도가 달린다. 

 

명파 1교를 지나 명파리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명파리는 광산천과 명파천 두 갈래의 하천이 흘러들어 비옥한 토지를 만들고 명파 해변에서 동해로 빠져나간다. 

 

제진리 방향으로 명파리 마을길을 걷는다. 길을 끝낼 때쯤 되니 굵었던 빗줄기도 조금씩 잦아든다. 

 

명파 보건소를 지나 금강산 슈퍼를 앞두었는데 때마침 버스가 들어온다. 버스 정류장에는 우비를 입은 여성 한분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파랑길을 끝낸 분이었을 텐데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냈을 때 사람들과 나누던 감격의 기쁨은 해파랑길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어찌 보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는 공간, 여전히 긴장이 감도는 공간에서 길을 마무리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의미와 감격은 동행하는 옆지기와 나누어도 충분했다. 

 

미니 버스를 탄 우리는 여정을 끝낸 기쁨으로 신발부터 모두 젖어버린 피곤마저 잊어버린 채 들뜬 마음으로 마차진리 버스 종점에서 버스를 내렸다. 그런데 버스의 안내 방송도 종점이라고 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대진항까지 가는 분이 있냐고 물으신다.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탔던 또 다른 해파랑길 여행자는 대진항까지 가셨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가 시내버스로  간성 터미널로 이동하여 동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간성 터미널에서 천천히 생각해 보니 그분처럼 대진항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싶었다. 시내버스로 간성 터미널까지 가는 시간이 한참 걸리는 문제도 있고, 서울 가는 버스 티켓의 우선권이 대진 터미널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한 사람만 좌석이 확정이고 한 사람은 좌석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좌석을 나란히 갈 수 있도록 바꿔주기는 했지만, 이런 이유는 대진 터미널이 아직 전산화가 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란다. 대진항에서 대진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1km 정도이니 걸어가도 좋을 거리였다. 

 

표를 끊고 터미널 앞에 있는 식당에서 돼지 불고기로 넉넉한 식사를 하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어제 말려둔 양말로 갈아 신어도 젖은 신발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코로나가 얌전해지면서 사람들은 일상으로 모두 돌아온 모양이다. 고성에서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빈자리가 없다. 전철에서 기차표를 예매하려고 하는데 아뿔싸, 일요일에 서울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기차표가 없다. 다행히 KTX 입석표를 구입해서 내려올 수 있었다. KTX 입석이라도 좋다. 이제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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