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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항에서 해파랑길 26코스의 종점인 죽변항 입구까지는 평탄한 해안길을 걷는 무난한 길이다. 골장항과 봉평 해수욕장을 거쳐서 죽변항에 이른다.

 

대나리항을 지나 양정항으로 가는 길은 좌측으로는 경사도 심한 바위산을 우측으로는 흐린 날씨에 해안으로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는 걷는 길이다. 서늘하게 떨어지는 보슬비는 덤이다. 겨울이 가기 싫은지 늦겨울 내리는 비는 손이 시리게 한다.

 

산으로는 지난번 울진 산불의 상흔이 엄청나다. 산불로 바닥은 시커멓게 불탔지만 이곳의 나무들은 어느 정도 살아남은 듯하다. 이번에 내리는 비로 잔불도 모두 없어지겠지만 겨울비가 살아남은 나무들이 힘을 내는 영양제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정항에 도착했다. 방파제가 있지만 항구 내부도 파도로 출렁거린다.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항구에서는 노인 한분이 까꾸리를 들고 파도에 떠밀려온 돌 미역을 건지고 계신다. 이 지역에서는 파도에 떠밀려온 돌 미역을 건지는 것을 "풍락초를 건진다"라고 한다. 풍락초를 건지는 분들에게는 거센 파도가 돌미역을 해안으로 밀어다 주는 고마운 존재이겠다 싶다.

 

하얀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 너머로 멀리 골장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나무들은 산불에 노랗게 변해 버렸다. 산불이 발생했다고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는 것은 삼림 복구에 소요되는 시간이 30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줄기와 잎이 모두 시커멓게 탄 나무를 심한 상태라고 한다면 위의 사진처럼 잎이 전체적으로 갈변한 나무들은 중간 상태라고 한다. 문제는 나무가 생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잎은 푸른데 줄기 하부가 불에 그을린 경증의 나무들에 해당한다. 이런 경증의 나무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갈등의 여지가 있다. 사람 키 높이 아래로만 불에 그을린 가벼운 상태의 나무들은 80~90% 이상 생존한다는 연구도 있다. 계속 생존할 수 있는지 여부는 3년이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잎이 갈변한 나무들은 이미 생을 다한 것이니 정말 안타깝다.

 

온양리의 곡해교를 넘어서서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우비도 잠시 벗어두고 미리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끼니도 해결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풍경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김밥을 먹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서늘한 날씨를 녹여주는 따뜻한 커피 한잔도 좋았다. 온양리가 기록상으로 가장 오래된 온천인 온양 온천과 이름은 같아 보이지만 마을에 온천이 있는 것은 아니고 일제 강점기에 곡해동, 외온동, 상양정동을 병합하여 온양리로 만들면서 마을 이름을 단순히 합친 것이라  한다.

 

해안으로 테트라포드를 설치해 놓지 않았다면 거친 파도는 해안길까지 물을 튀기지 않았을까 싶다.

 

골장항을 바라보며 온양리에서 봉평리로 가는 길은 해안으로 데크길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거친 파도를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길이었다. 관동팔경 녹색경관길이란 이름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관동팔경 녹색경관길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강원도와 경북 일원에 국토해양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의 보행로와 보행교를 만든 것으로 대부분 해파랑길과 겹친다. 어떤 정부 기관이 하든, 지자체가 하든, 이 이름 저 이름이 부가적으로 붙어도 해파랑길이 꾸준히 잘 관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골장항은 지금의 봉평 1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예부터 해류의 영향으로 어족 자원이 풍부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골장길은 봉평 1리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비를 피할 곳이 없을 때는 버스 정류장도 좋은 쉼터다.

 

해수욕장 앞의 방파제가 이제 봉평 해수욕장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해수욕장 인근이라고 하기에는 해안선이 보이질 않는다. 예전에는 구산 해수욕장과 함께 울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파도가 세기는 하지만 해수욕장이라고 하기에는 모래 해변이 너무도 초라하다.

 

봉평 해수욕장은 2천 년대 들어 해안 침식으로 모래 해안을 잃은 대표적인 장소 중의 하나라고 한다. 1980년대만 해도 20~30미터 폭을 가진 백사장이 있었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현재의 모습이다. 해안선을 지키기에 급급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국 사람의 개발이 초래한 결과가 아닐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많은 나라에서 인공 백사장을 유지하는데 돈을 쏟아붓고 있다.

 

죽변항 방향의 전경이다. 하얀 거품을 만들며 몰려오는 거친 파도가 매서운 모양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싶다.

 

대게의 대나무, 죽변항의 대나무가 하나 되는 조형물이다. 500백 년이 넘었다는 천연기념물 312호 화성리 향나무도 죽변에 있는 나무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이나 시도 기념물로 관리하는 나무에는 주로 은행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소나무들이 있는데 대부분 수명이 긴 나무들이다. 그런데, 울진에는 천연기념물로 관리하고 있는 나무가 두 그루 더 있는데 특이한 수종이다. 하나는 300년이 넘은 수산리 굴참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250년이 넘은 쌍전리 산돌배나무이다. 통상 열매를 맺는 과실수는 수명이 짧은 편이라고 하는데 독특하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중에 유일한 수종들이다. 기념물로 지정되는 나무들을 보면 대부분 전설과 연관된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그만큼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아서 그 명맥을 이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변항 입구까지는 깔끔하게 포장된 인도를 걷는다.

 

드디어 26코스 종점인 죽변항 입구에 도착했다. 빗속에서의 걷기 치고는 무난하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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