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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25코스는 23km에 이르는 긴 코스이긴 하지만 대부분 포장길을 걷기 때문에 컨디션 관리만 잘하면 무리 없는 여정이다. 다만 우리는 24코스에 이어서 25코스 일부를 더 걷고 숙소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에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기성 터미널을 떠난 길은 초반에는 평탄한 읍내길과 논길을 걷지만 이후에는 고개 두 개를 넘어서 사동항에 도착하고, 그 이후에 고개를 하나 더 넘어야 망양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나마 포장길을 걸으니 다행이다.
기성 읍내에는 척산 시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장날은 1일, 6일이라고 한다. 장날이 아니라서 한산하다. 숙소에서 구워 먹을 고기와 간식거리를 구입하고 화장실도 다녀온 다음 재충전하여 길을 떠난다.
읍내를 빠져나오면 논길 사이로 길을 이어간다. 해파랑길에서 만나기 어려운 논길 횡단이다.
논 건너편으로는 울진비행훈련원 기숙사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항공 전문학교 소속으로 보통 1년간의 교육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부분 기숙사에 입소하는 모양이다. 매달 모집을 하고 두 달에 한번 입과를 한다. 평균 나이가 30세라고 하고 상당한 외국어 능력과 면접도 거쳐야 입과 할 수 있다. 국가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물론 돈도 많이 소요된다.
논길을 벗어나면 본격적으로 도로변 길을 따라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에서 바라본 기성면의 들판.
길이 넓지 않다 보니 차량이 다가올 때는 도로변을 걷는 것이 부담되기도 한다. 자동차 입장에서도 도보자 입장에서도 상호 시야가 확보될 수 있는 방법으로 걷는 것이 좋다. 자동차 입장에서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들을 보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고개 두 개를 넘으니 다시 바다가 보인다. 사동항이다.
기다란 방파제가 있고 주위로는 낮은 산들을 병풍으로 두르고 있는 마을이다.
항구 입구는 알록달록 테트라포드들이 해안선을 지키고 있다.
이 지역의 특성인지 여기저기 집단 봉분이 산재해 있다. 거의 납골당 수준이다. 각자 주인이라도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봉분들에 잡초도 없고 중간중간 꽃을 놓고 간 흔적을 보면 꾸준히 사람들이 다녀가는 모양이다.
열심히 걸었으니 사동항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마을은 그저 고요하다.
잠시 휴식 후 일어서는데 옆지기가 뒤돌아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돌아보니 멀리 산 능선으로 풍력 발전기들이 생생 돌고 있었다. 사동리에 있는 현종산에 설치된 15기의 발전기로 울진군 전체 세대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라고 한다. 2019년 상업 발전을 시작했는데 영덕처럼 이곳도 2007년 대형 산불로 인한 산림 훼손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국가 어항이라고 하지만 항구 한쪽으로는 다른 항구들처럼 요트 정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시대 변화의 흐름은 항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과 어업과 레저가 병행되는 항구는 가능한 것일까? 좋은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재해 피난처, 어업 전진 기지로 활용되는 국가 어항이지만 항구 구석에서 헤엄치는 물새들만이 파장을 일으킬 뿐 항구는 고요함 그 자체다.
마을길을 따라 내려오는 작은 개천을 건너는 사동항 진입교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 길을 천천히 오르며 잘 지은 전원주택들을 보니 뒤로는 산이 감싸주고 남향으로 햇빛도 잘 들어오고, 인근에 바다도 있으니 참 살기 좋겠다 하는 부러움의 탄성을 연발한다.
25코스의 마지막 고개라 할 수 있는 일명 흙리 고개를 넘는다.
흙리 고개를 넘어서면 망양 1리로 접어든다.
망양리 숙소까지는 넓은 모래사장과 함께하며 평탄하게 걷는 길이다.
조금 더 가면 기성 망양 해수욕장이 있기는 하지만 망양 1리 시작 부분인 이곳부터 고운 모래의 해변은 기가 막히다. 한걸음 한걸음 절뚝거리는 무거운 발을 옮기고 있는 옆지기도 숙소를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남은 힘을 쥐어짜는 듯하다. 오늘 하루 많이 걷기는 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23코스 나머지에 24코스를 모두 걷고 25코스 일부까지 걸었으니 발이 고생이다.
오늘의 숙소는 세상의 모든 아침 펜션이다.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서 푹 쉴 수 있었다.
펜션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과 펜션 수영장. 젊은이들이 노는 공간에서 노땅들이 민폐를 끼칠 수는 있겠지만 여름이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베트남 여행의 추억도 떠오른다.
최근 해파랑길에서 애용하고 있는 간편 김밥 싸는 과정을 남겨 놓기로 했다. 김은 김밥용 김이 아니라 조미김이다. 간도 맞추어 주고 김밥을 말은 다음에 기름을 칠할 필요도 없어진다. 통상 10장이 아니라 5장씩 포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절반으로 자르고 준비한 재료를 넣고 말기만 하면 끝이다. 먹을 때는 자르지 않고 하나씩 들고 먹으면 된다. 재료는 우선 5개짜리 소시지를 길게 반으로 자르고 뜨거운 물로 데쳐서 준비한다. 노란무와 우엉은 세트로 된 것을 구입해서 물기를 빼고 절반으로 자른다. 세 가지 재료를 넣고 말면 끝인데, 선호하는 간의 정도에 따라 노란무와 우엉을 두 개씩 넣을지, 한 개씩 넣을지를 결정하면 된다. 이렇게 싼 간편 김밥은 비닐봉지에 넣어서 배낭에 넣고 시장기가 오기 전에 자주 먹으면 컨디션 유지에 도움이 되었다. 식당을 찾을 필요도 없고 앉을자리만 있으면 식사가 가능하니 우리 부부에게는 참으로 적절한 식사 방법이다. 조미김이라 김밥을 말 때 잘 터질 수가 있는데 직접 들고 먹을 것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오늘은 걷기를 끝낸 다음 울진 터미널에서 버스로 영덕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조금 서둘러 출발했다. 여름에 다시 한번 이곳에 올까? 하는 충동도 생기는 펜션을 뒤로하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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