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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항에서 뼈해장국으로 아주 든든하게 점심을 챙긴 우리는 해파랑길 22코스를 이어서 걷는다. 22코스는 축산항 뒤편의 와우산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봉화산과 망월봉을 지나며 산 능선을 따라 황성개비산, 재구남봉, 일월봉을 지나 목은 이색 기념관에서 도착하면서 산행을 끝낸다. 22코스의 나머지 절반은 평지와 해안길을 걷는다. 대진항과 대진 해수욕장을 거쳐서 고래불 해수욕장에 도착한다.

 

22코스는 본격적인 산행이 필요한 지역이므로 충분한 물과 간식, 그리고 스틱을 꼭 챙겨갈 것을 추천한다. 물론 우리처럼 두 코스를 이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어려운 코스라고 엄살떨 일도 아니지만 두 코스를 이어서 걷다 보니 저질 체력은 스틱의 부재가 상당히 아쉬웠다. 끝내는 산중에서 죽은 나뭇가지를 하나 구해서 지팡이로 사용했다는...... 21코스가 거리는 길지 않지만 절대로 만만하게 볼 코스가 아니었다는 반성이 있었다. 코스에 대한 사전 조사가 부족했다.

 

축산항을 떠나 남 씨 발상지 근처의 계단을 통해서 와우산으로 향한다. 이곳을 남 씨 발상지라고 하는 이유는 원래는 당나라 여남 사람이던 김충이라는 사람이 신라 경덕왕 때에 사신으로 왜 나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서 표류한 끝에 이곳 축산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전설 때문이다. 경덕왕은 김충이 여남 사람이었다며 남 씨라는 성씨를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남 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17세기 조선에 들어왔던 하멜 일행 중에는 전라도 강진에 남아서 조선 여성과 결혼하여 정착했는데 이들도 남 씨 성을 사용했다고 한다. 와우산을 오르는 길에는 유허비와 이런저런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벌써 몸이 무겁다. ㅠㅠ 

 

와우산 언덕에 오르니 죽도산과 축산항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게 하면 영덕의 강구항을 손꼽지만 사실 강구항에 몰려있는 수많은 대게 음식점들에서 소비하는 대게들은 강구항에서 생산되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고 인근 울진과 포항에 생산되는 대게도 가져간다고 한다. 영덕에서는 강구항과 함께 이곳 축산항이 대게 집산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울진의 후포항, 구산항, 죽변항과 포항의 구룡포항이 대게로 유명하다.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축산면 경계라는 안내판이 나오는데 와우산을 넘어가면 바로 영덕군 축산면을 지나서 영해면으로 넘어간다.

 

와우산은 높이가 1백 미터가 넘지 않는 높지 않은 산으로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내리막을 만난다. 완만한 산 모양새가 소가 누운 모양이라고 와우산이라 이름 붙인 모양이다. 봉화산이라는 이름도 많지만 동네 뒷산으로는 와우산이라는 이름도 상당히 많다. 간단히 검색해도 전국에 10여 개가 넘는다.

 

와우산을 내려가니 이곳에도 2022년 대선 포스터가 걸려 있다.

 

와우산을 내려오니 해변으로는 폐쇄된 것으로 보이는 양어장 하나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도로변 데크길을 통해서 축산면을 지나 영해면 사진리로 넘어간다. 

 

데크길 백여 미터를 걸으면 좌측으로 작은 쉼터와 주차장, 간이 화장실이 있는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조심스레 도로를 건너서 대소산 봉수대 방향으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산 정상까지 쭈욱 오르막이지만 다행인 것은 완만한 오르막이라는 점이다. 스틱이나 지팡이가 도움이 되는 코스다. 그런데 이곳은 이 근처 분들이 자주 산행을 다니시는 코스인 모양이었다. 한 그룹의 대학생들도 만났고, 젊은 부부도 있었고, 중년 부부들도 있었다. 봉수대까지 올랐다가 내려가는 분들이었다.

 

우리는 대소산 봉수대에 힘겹게 올라왔지만 사실 등산로 반대편으로는 작은 임도가 있어서 차량으로도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봉수대에 올랐더니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중년 부부들이 사진 찍는다고 소란이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관리하던 봉수대는 낮에는 연기는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전달하는 시설이었다. 이곳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란다. 이곳을 거친 신호가 한양의 남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연기나 불의 개수로 의미를 전달했는데 한 개는 아무 일도 없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가장 먼 국경지역에서 한양까지 12시간 이내면 소식이 전달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에는 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노출되고 메시지의 정밀성에 한계가 있었지만 파발이라는 보완 수단이 있었으니 전신, 전화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국가 운영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었다.

 

돌 난간 위에 잠시 배낭을 얹어두고 고단한 몸을 쉬어간다. 몸이 생생하다면 봉수대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이곳저곳을 구경했겠지만 지금은 조금의 체력이라도 아껴야 하는 비상 상황이다. 무릎에 삐그덕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봉수대에서 바라본 죽도산 방향의 모습이다. 죽도산 전망대의 아득한 모습이 우리가 상당한 거리를 걸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22코스 초입이고 갈길은 멀다.

 

몸이 가볍다면 신나게 내려갔을 내리막 길이 이제는 삐그덕 거리는 무릎 때문에 어우! 어우! 하는 신음과 함께해야 하는 고역이 되고 말았다.

 

봉수대에서 망월봉 가는 길은 전체적으로 내리막이지만 중간에 작은 봉우리를 하나 지난다. 무릎만 문제가 아니라면 뛰어가도 좋을 내리막 길이다.

 

망월봉 가는 길에 위치한 운동 시설이 있는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쉼터 인근의 삼거리에서는 영해 초등학교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과 해파랑길 경로인 목은 이색 등산로로 갈라진다. 영해 초등학교에서 목은 이색 기념관과 괴시리 전통 마을이 멀지 않기 때문에 산행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영해 초등학교로 우회하는 것도 방법이다. 영해 초등학교 방향은 길이 덜 험하다.

 

2022년 2월 한 야산에서 발생한 영덕 산불의 흔적이 이곳까지 남아 있다. 산불 이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는 데는 3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말 안타까운 모습이다.

 

산불에 녹아버린 블루로드 표지판이 산불 당시의 참혹함을 증거하고 있다. 해파랑길 리본은 열에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이렇게 힘겹게 힘겹게 걸어서 그것도 세 번이나 쉬어 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해파랑길 거리 표지판은 고작 4Km 지점이란다. ㅠㅠ

 

산 아래로 영해 읍내와 사진리 해안가를 이어주는 도로가 보인다.

 

영해 읍내와 사진리를 이어주는 도로 위를 건너는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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