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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산 정상을 지나면 강동 사랑길의 부부 사랑길을 따라 제전항으로 내려가서 정자항에서 9코스를 마무리한다.
"해양남과 육양녀"라는 이름의 장소. 보통 낮에는 바다에서 육지로 해풍이 불고, 밤에는 육지에서 바다로 육풍이 부는데, 산 능선인 이곳에서 자연스레 바다 바람과 육지 바람이 만나는 곳이란 이야기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이곳은 강동 사랑길 중의 4구간인 부부의 길과 3구간인 연인의 길이 좌우로 갈라지는 지점이다. 옥녀봉으로 가면 3구간, 강동 축구장 쪽으로 가면 4구간이다. 중간 아래로 내려가면 3구간과 4구간이 같이 가는 길이다. 이름하여 옹녀로와 강쇠로. 해파랑길은 이 길을 따라 내려간다.
19금 영화에서나 나왔던 주인공의 이름으로 길이름을 붙이다니, 옹녀로, 강쇠로 뭐야! 지자체가 짓궂은가?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해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할 텐데 하는 마음으로 바쁜 발걸음으로 산을 부지런히 내려간다.
옹녀 나무, 강쇠 나무란 팻말을 붙여 놓았지만, 19금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강해서인지 강동 사랑길의 스토리텔링이 가슴에 다가올 겨를이 없다. 옹녀 나무는 한 뿌리이지만 가지가 두 갈래로 뻗은 나무를 지칭하고, 산 나무에 붙은 죽은 나뭇가지를 삭정이라 하는데, 둥그스름한 삭정이가 붙은 나무를 강쇠 나무라 하는 모양이다.
옹녀길, 강쇠길 주위로는 소나무와 오리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다. 완만한 내리막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부지런히 걸어서 해가 지기 전에 산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의 옹녀, 강쇠 이야기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전설과는 다른 전혀 19금스럽지 않은 색다른 전설이다. 옹녀라는 이름은 옹기에서 나온 여인이라는 의미로 용왕님의 셋째 공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제전마을에 살던 장어가 소풍 나온 공주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용왕은 장어를 피해서 공주를 옹기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려고 했는데, 그만 그 옹기가 바닷가에서 낚시하던 강쇠에 걸린 것이고, 그 옹기에서 나온 여인이라 옹녀라 했다는 것이다. 다시 옹녀를 옹기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려 했지만 이번에는 용의 여의주가 옹기를 깨뜨려서 결국 옹녀는 강쇠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다. 그런 연인의 길, 부부의 길을 옆지기와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산을 내려오니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내려올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동해안로 도로를 가로질러 제전항으로 향한다. "사랑길 제전 장어"라는 간판이 있는데 바로 전설에서 옹녀를 짝사랑했던 그 벌로 눈이 먼 상태로 태평양까지 다녀와야 했던 제전 장어이다. 간판은 제전항 앞에 있는 장어집을 광고하고 있는 것인데 울산 북구의 1호 마을 기업이란 한다. 지자체에서 가게를 오픈하는데 예산을 지원하고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제전 마을은 작은 어촌 마을이지만 마을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1층이 장어집, 2층이 박물관이다. 제전은 닥나무 밭이란 뜻으로 이 마을에는 한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닥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어스름해진 제전항 옆 해안의 모습. 멀리 해안가로 8층짜리 오피스텔이 보이는데, 길은 오피스텔 앞쪽의 해안가로 조성된 산책로를 통해 판지항으로 이어진다.
데크길에서 바라본 제전항 방면의 야경이다. 해가 긴 여름철이라면 이 시간에도 밝은 풍경이겠지만, 겨울 걷기의 단점이 해가 빨리 지는 것이라면 장점은 이 시간에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어항인 판지항 앞에는 버스로 만든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조명이 더해지면서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판지항을 지나 해안 모퉁이를 돌아서니 멀리 화려한 불빛의 정자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조근 더 걸으니 깜빡이는 불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정자항의 등대가 보인다. 드디어 해파랑길 9코스를 마무리한다. 코스는 시발점은 정자항 가지 전에 있다.
해파랑길 9코스를 끝낸 우리는 숙소가 있는 정자 해변까지 10코스를 2Km 정도를 더 걷는다.
도로변에 외로이 서 있는 화석 안내판. 1970년대부터 학계에서는 울산시 북구 강동 해안에 대량의 화석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이 지역의 개발이 진행될 때마다 패류와 갑각류 화석이 계속 발견되고 있지만 별다른 체계적인 대처가 없는 모양이다.
정자천교를 넘어서 정자항으로 향한다.
정자항은 참가자미도 많이 잡히지만 대게도 유명해서 정자항 앞으로는 대게집이 줄지어 있었다. 동해안에서 잡히는 대게는 수심 200미터 이하에서 서식하는데 이곳 정자항은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대게가 잡히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겠다.
환하게 밝힌 불들이 곧 있으면 바다로 나갈 떠날 배들의 모습에서 생기를 느끼게 한다. 대게의 경우 여름철은 금어기이고 12월부터 4~5월까지가 제철이라고 한다. 참가자미의 경우에는 동구의 방어진항과 더불어 정자항이 전국 가지미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라고 한다.
해안 벽 위에는 각양각색 모양의 돌들을 올려놓았다. 아마도 앞쪽에 있는 횟집 주인이 올려놓은 모양인데 해안 벽 위의 작은 갤러리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야심한 시각에 이곳을 지나는 객의 시선을 끌어 놓았으니 이 정도면 갤러리라 해도 뭐 어쩌랴!
오늘의 숙소 정자 베니스 호텔. 비싸지 않은 가격에 만족감이 높았던 숙소였다.
무엇보다 연 이틀 강행군에 지친 옆지기는 입욕제를 넣은 커다란 욕조에서 마음껏 피로를 풀며 참으로 좋아했다. 코로나 때문에 온천에 가지 못한 지가 한참이라 더욱 그러했나 보다. 편의점이나 배달 가능한 음식점들도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것 또한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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