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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TMB경로가 아닌 GR5 경로 중에 있는 로베르 블랑 산장을 출발하여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인 세이뉴 고개를 지나서 이탈리아 쿠르메이유까지 이동하는 TMB 4일 차 걷기는 세이뉴 고개를 앞둔 지점까지 왔으니 큰 고비는 넘긴 것입니다. 14Km가 넘는 걷기 일정 중에서 눈길과 암벽 타기, 쇠줄 타기가 있었던 초반 4Km의 난 코스를 지나왔기 때문에 남은 거리가 10Km가 넘기는 하지만 완만한 내리막 길이기 때문에 마음에 부담은 없는 길입니다.

 

쇠줄을 붙잡으면서 절벽을 타고 오르면 완만한 내리막 아래로 멀리 세이뉴 고개가 보입니다. 저희 TMB 걷기 일정중에는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조금 흐린 지 아침에는 눈이 내렸고 세이뉴 고개에 이르니 강한 바람과 함께 안개가 자욱합니다. 아무래도 고개가 구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모테 산장 쪽에서 올라오던 사람들은 비가 내렸었는지 판초 우의를 걸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고도가 조금 높은 산장에 있었다고 밤새 내린 눈을 보았지만, 모테 산장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비를 맞았으니 거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도 날씨 차이가 큽니다. 

   

구름 속에 갇힌 세이뉴 고개(Col de la Seigne, 2,520m)의 모습입니다. 다른 고개 같으면 고개를 오른 성취감을 만끽하는 풍경으로 고개가 가득할 텐데 쌀쌀한 날씨와 강한 바람 때문에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인 세이뉴 고개는 한산합니다.

 

저희도 로베르 블랑 산장을 떠나 세이뉴 고개까지 이르는 난코스를 정복한 기쁨을 뒤로 한채 라 카제르메따 산장으로 향합니다. 클래식 TMB 코스에 들어선 만큼 급경사의 절벽을 오르내릴 걱정도 없고 쇠줄을 붙잡고 아슬아슬한 스릴을 맛보는 일도 없습니다. 완만한 내리막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여유가 있을 뿐입니다.

 

세이뉴 고개에서는 구름 속이었는지 쌀쌀한 바람과 자욱한 안개 뿐이었는데 고개를 지나니 구름이 조금씩 물러가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산등성이는 글레이셔 침봉(Glaciers, 3,816m)의 한 자락이었는데 빙하를 품고 있는 반대편보다는 조금은 덜 아찔한 모양새입니다.

 

얼마 가지 않아 라 카제르메따 산장(Rifugio La Casermetta, 2,365m)이 보입니다. 여전히 바람이 세기는 하지만 난코스를 지나온 저희를 스스로 격려하고, 자축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라 카제르메따 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0분이었으니 세이뉴 고개에서 산장까지는 20여분 내외의 가까운 거리였지만 로베르 블랑 산장에서 세이뉴 고개까지 4Km 내외의 짧은 거리를 상당히 오랜 시간을 투여해서 걸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라 카제르메따 산장은 말 그대로 대피소일 뿐이고 내부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식당은 없었습니다. 과거에는 이탈리아/프랑스 국경에 설치된 세관 건물이기도 했고, 이탈리아 국경 수비대의 병영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몽블랑 모형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과 산악 정보 센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희처럼 산장에서 쉴 것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바람을 피해서 산장 주변에 쪼그리고 앉아 잠깐의 휴식을 취하고 갑니다. 저희도 한쪽에서 버너로 물을 데워 점심도 해결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앉아 있을 자리도 변변치 않았던 산장 주위에서 추운 날씨를 견디며 취한 휴식이었지만 난코스를 돌파한 기쁨 덕분에 추위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산장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쓸 만큼의 비가 뿌리지는 않았지만 쌀쌀한 날씨도 견딜 겸 판초 우의를 쓴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끔 몇 방울씩 비가 뿌리기는 했지만 난코스를 통과한 만큼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걱정거리나 염려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고비를 통과한 자가 누리는 여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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