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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셔 빙하(Le glacier des Glaciers) 아래 부분을 가로지르는 과정에서 망가진 출렁다리 덕택에 없어진 길을 등산화를 물에 적셔가며 겨우 건넜는데 TMB 걷기 4일 차는 이제 산등성이를 하나 넘고 계곡을 가로지러 다시 산등성이를 하나 오르면 위험한 구간은 완전히 벗어나서 세이뉴 고개에서 클래식 TMB 경로와 합류하게 됩니다.
길 없는 계곡을 뚫고 지나오니 드디어 쇠줄을 붙잡고 지나야 하는 구간이 나타납니다. 무거운 배낭을 뒤에 매달고 쇠줄을 타는 것은 보기와 달리 긴장감 가득이었습니다. 다행히 손아귀의 힘은 누구 못지않은 옆지기도 차분하게 잘 따라 오릅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가파른데 아무런 장치가 없는 구간보다는 나았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가파른 산비탈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더라도 길의 흔적이 있는 흙길이라는 점은 이 경로에서는 고속도로 수준의 좋은 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길은 사진처럼 얼마 가지 않아 커다란 바위로 턱 하니 막힙니다. 머리서 보면 도대체 저곳을 어떻게 넘어가지? 하는 아찔함만이 마음에 가득합니다.
아찔함 가득한 마음으로 잠시 서서 아래쪽 계곡을 바라봅니다. 계곡 사진에서 우측 위쪽 산허리에 있었던 로베르 블랑 산장에서 계곡이 정면으로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이동했으니 그나마 많이 온 것입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계곡 아래쪽으로 빙하마을도 있고 많이 사람들이 들리는 모테 산장도 있을 것입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저길 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싶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만날 커다란 바위가 여전히 마음에 중압감을 주지만 집에 가려면 바위를 올라야 합니다. 어쩔 수가 없습니다.
흙길 끝에 길을 가로막았던 바위도 막상 가까이에 가서 한 발씩 집중하며 오르다 보니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겁을 집어 먹으면 더 어려운 것이라는 점을 바위를 오르면서도 능선에 올라서도 다시금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바위를 올라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글레이셔 빙하(Le glacier des Glaciers)의 아찔한 모습입니다. 저 빙하 바로 아래를 지나왔으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할 뿐입니다.
산등성이에 올라 만난 것은 온통 돌밭인 산비탈 길입니다. 길의 흔적이 있는 곳도 있지만 이런 곳에서는 멀리 있는 길표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고 말지요. 노란색 두 줄짜리 등산로 표식이 있는 돌이나 누군가 쌓아 놓은 작은 돌탑이 유일한 길잡이입니다.
가파른 산비탈 길을 이번에는 눈이 가로막았습니다. 어제 눈길에서 구르다 저 세상으로 갈뻔한 경험을 했던 저로서는 우회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그림입니다. 조금 돌더라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ㅠㅠ
멀리 모테 산장에서 세이뉴 고개로 가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드디어 클래식 TMB 경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산등성이를 지나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절벽에서 만난 노란색 두 줄짜리 등산로 표식.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이제 거의 마지막 표식일 것 같으니 사진으로 남깁니다. 계곡만 지나 마지막 산등성이를 오르면 곧 세이뉴 고개이니까요.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길은 가파른데 자갈과 흙이 섞여있는 미끄러웠습니다.
드디어 앞에 보이는 산등성이만 오르면 위험 구간은 모두 끝나고 세이뉴 고개에서 클래식 TMB 경로와 합류합니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하단은 눈길이고 흙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다가 그다음은 대체 저기를 어떻게? 하는 물음표만 남게 하는 황당한 길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헤쳐온 길처럼 포기하지 않고 한 발씩 오르다 보면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계곡 하단부 횡단은 눈길을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제와 오늘 저희가 걸은 눈길은 인생에서 또다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겨울에도 경험하기 어려운 것을 몸으로 체험했으니 당시에는 무섭고 힘든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옆지기의 경우 눈길을 더욱 힘들어했습니다. 아이젠이 없는 상태에서 조금씩 녹는 눈길을 걷는 것은 미끄러짐에 대한 두려움을 놓을 수가 없게 했습니다. 한번 미끄러지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고 뒤에서 미끄러지면 앞에 가는 사람도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조심 보폭을 좁게 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눈길을 걷다가 한쪽 발이 하염없이 눈 속으로 들어가면서 가슴이 철렁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옆지기가 마음을 추스르고 스틱을 이곳저곳으로 옮겨 찍으면서 발을 꺼내기는 했지만 그 당시 심정은 마치 빙하지대의 클레바스를 경험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눈길 아래쪽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 알면서도 그곳을 지날 때는 정말 심장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가득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 코스를 지난 다음의 스틱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저곳이 구부러져서 접지 못하는 스틱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눈길을 무사히 통과해서 걷기 시작한 지그재그 흙길은 물기를 머금고 있고 약한 토질이라 미끄러웠지만 나름 걸을만했습니다.
문제는 지그재그 다음의 바위길이었습니다. 절벽의 바위산을 쇠줄을 붙잡고 한참을 올라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줄을 잡고 이동하면 위험하니 한 사람씩 신호를 보내며 오르고, 둘 다 한 줄을 통과하면 그다음 줄을 붙잡고 한 사람씩 다시 절벽을 오르는 방식이었습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파른 절벽 위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서있는 것만도 힘든데 옆지기가 천천히 잘 따라오는 것이 얼마나 대견했던지요. 그나마 쇠줄이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어젯밤 로베르 블랑 산장에 "오 마이 갓!"을 외치며 울며 들어온 여성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나타난 세이뉴 고개 표지판. 이 표지판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저희는 서로를 너무도 뜨겁게 껴안았습니다.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이보다 더 진심이고, 더 뜨거운 포옹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한동안 뜨거운 포옹을 한 채로 이틀 동안 온갖 고비를 넘기며 이곳까지 올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계곡 아래의 모습입니다. 절벽 아래로 계곡에 쌓인 눈과 그 아래로 흐르는 계곡물을 보니 저 눈길에서 빠지지 않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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