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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보랑 산장(Refuge de Nant Borrant, 1,459m)을 지난 TMB 2일 차 걷기는 중반 넘어서고 있습니다. 날이 맑은 만큼 이제 알프스의 강한 햇빛도 감내해야 합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숲은 없어지고 햇빛을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나중에 보니 팔 토씨를 착용한 부분은 괜찮은데 챙이 긴 모자를 착용했어도 얼굴과 종아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크림 바르기 싫어하는 필자도 나중에는 챙겨 발랐습니다. 낭보랑 산장을 떠난 여정은 얼마가지 않아 "Nant du Lancher"라는 이름의 급류를 하나 지납니다. 산 꼭대기에서 내려온 이 급류 또한 봉넝강으로 합류합니다.

 

낭보랑 산장 이후 얼마간은 약간의 경사가 있는 길로 고도를 높이지만, 이 구간을 지나면 한동안 평탄한 오르막길, 넓은 초원길을 걷습니다. 이후로 당분간은 위의 그림과 같은 큰 나무를 가까이 두고 함께 길을 걷는 대신 돌과 바위, 풀, 야생화와 길을 걸을 것입니다.

 

마을로 가는 갈림길에서도(La Rollaz) 큰길로 계속 직진합니다. 발므 산장으로 가는 길에는 정면과 우측으로 뾰족하게 생긴 뻬나침봉(Aiguilles de la Penaz, 2,688m)이 함께 합니다.

 

일단 평탄한 오르막에 들어서면 발므 산장까지는 아름다운 들판 경치를 감상하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발므 산장 이후로는 지도의 등고선이 촘촘한 것처럼 200여 미터의 경사가 급한 길을 올라야 합니다. 오르막을 올라 고도 1,900미터에 이르면 다시 평탄한 조베 평원이 펼쳐지는 길입니다.

 

길이 평탄하고 넓은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인 만큼 사람들의 표정에는 지친 기색보다는 여유가 묻어납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데이지. 바람에 흔들리는 데이지가 들판을 걷는 이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영어 이름이 조금 우스운데 황소 눈 데이지라 한답니다. 이름을 듣고 꽃을 다시 보면 진짜 황소 눈이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알프스의 들국화입니다. 원래 들국화란 품종이나 분류는 없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을 들국화라 부르기도 하듯이, 들에 핀 국화과의 데이지를 들국화라 부른 듯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푸른 하늘에 흰구름이 산봉우리를 감싸며 지나가는 장엄한 모습에 위압감과 함께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일들에 대한 두려움도 살짝 엄습해 옵니다. 부디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어야 할 텐데......

 

주말을 맞아 애견을 데리고 산행에 나선 사람들의 가벼운 차림에서 삶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차림으로 봐서는 성당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당일치기로 걷기에 나선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발므 산장이나 조베 호수까지만 다녀와도 좋을 듯합니다.

 

뻬나침봉 아래로 머리 발므 산장이 보이는 듯합니다. 들판 한편으로는 소들이 워낭 소리를 내면서 풀 뜯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은 털도 검고 뿔도 앞으로 향하게 날카로운 것이 엄청 사나워 보입니다. 그런데, 소들과 저희 사이에는 가느다란 철책선 하나밖에 없으니, 소들이 성질이라도 부리는 날에는......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합니다. 소들의 짧은 일상을 동영상으로 첨부합니다.

 

TMB 경로에는 시계 방향 또는 저희처럼 역 시계 방향으로 걷는 사람도 많지만 위의 사진처럼 산악마라톤을 즐기는 분들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걷기만도 힘든 경로를 뛰는 UTMB(Ultra-Trail du Mont-Blanc)는 아주 유명하죠. 2019년에는 8월 26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렸습니다. 저희가 걷는 과정에서 보면 눈길도 경사가 아주 급한 곳에서도 뛰어 내려가는 분들입니다. 2019년 결과를 보니 미국, 프랑스, 스페인 출신들이 많았고 동양인들은 적은데 반갑게도 우리나라의 심재덕 이란 분이 출전하셔서 상위권에 진입하셨습니다. 어떤 분인가 찾아보니 대우조선에 근무하시는 51세의 직장인이었습니다. 호흡기 때문에 뛰기 시작하셨다는데 지금까지 엄청난 기록을 세우고 계셨던 분이셨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키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경이 예술 그 자체입니다.

 

앞을 보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의 풍경이 뻬나봉의 경치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입니다. 몸은 힘들지만, 이 여행 정말 오길 잘했다 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게 됩니다.

 

발므 산장 직전에서 만난 식수대. 물이 얼마나 찼는지, 정말 얼음물 수준이었습니다.

 

짐을 나르던 당나귀도 잠시 목을 축이고 갑니다. 의외로 물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하더군요. 많은 경우 산장 간의 짐 운반 서비스는 차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 있는 산장의 경우에는 위의 그림처럼 별도의 가방에 개인별 짐을 약 7Kg 정도까지 담아서 당나귀를 통해 운반해 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성 마부도 있었습니다.

 

이곳도 봉넝강의 줄기인데 이 다리를 건너면 발므 산장입니다.

 

발므 산장(Chalet Refuge La Balme, 1,706m)에 도착했습니다. 화장실도 있고 쉴만한 공간이지만 직전 식수대 옆 벤치에서 한참을 쉬었기 때문에 이번 산장은 그냥 패스하기로 했습니다.

 

뻬나침봉을 배경으로 한 발므 산장의 모습입니다. 다녀와 보니 만약 최단 경로로 TMB를 돈다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 본옴므 산장을 생략하고 바로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가는 방법도 있겠다 싶습니다.

 

발므 산장을 지나서 바라본 아래쪽의 전경입니다. 올라온 길이 아득하니 그만큼 많이 걸었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저희와 같은 배낭족들은 웬만하면 뭔가를 시켜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산장보다는 쉬기 좋은 명당자리를 찾아 배낭을 벗습니다. 널찍한 바위 위에 자리를 잡은 커플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발므 산장 위에 세워진 표지판. 표지판에는 특이하게 저희가 모레 묵을 로베르 블랑 산장과 오늘의 목적지 근처인 본옴므 고개 그리고 모테 산장도 등장하고 있는데 지금은 한 방향이지만 얼마 후에 갈림길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시간이 엄청나게 남았네요. ㅠㅠ

 

앞으로 올라갈 길입니다. 멀리 보이는 송전탑을 지나야 합니다. 아직은 까마득합니다.

 

갈길은 멀지만 주위의 야생화들을 보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아봅니다.

 

발므 산장 뒤 언덕에서 바라본 산장의 모습입니다.

 

조베 호수와 본옴므 고개 방향을 따라 계속 걷습니다.

 

조금씩 멀어지는 발므 산장의 모습입니다. 같은 길인데 몇 발자국 전진했다가 뒤 돌아보면 어느새인가 새로운 풍경화가 눈에 다가옵니다.

 

참 신기한 것이 덩치 큰 소들이 이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라와서 돌과 자갈 천지인 이곳의 풀을 뜯을 수 있는지 신기할 뿐입니다. 경사가 상당히 급한 곳도 많고 사람이 오르기에도 아찔한 곳이 많은데......

 

고도 1,900미터 근처의 지역이지만 이곳도 봉넝강의 줄기가 이어집니다. 아마도 발므 폭포(Cascade de la Balme)가 아닌가 싶습니다.

 

송전탑 근처에서 바라본 전경과 지금까지 올라온 길입니다. 여전히 발므 산장이 시야권에 있습니다.

 

조베 평원(Plan Jovet, 1,920m)에 도착했습니다. 조베 호수(Lacs Jovet)로 가는 갈림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서 조베 호수를 지나 아찔한 고개를 넘으면 모레 묵을 예정인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목적지로 가려면 이 방향이 아니라 우측의 TMB 표지를 따라 이동해야 합니다.

  

어렵게 올라온 오르막의 땀을 식힐 겸 다시 신발을 벗고 조베 호수에서 내려오는 불에 발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물은 3초 이상을 담그지 못할 정도로 얼음물입니다. 고도가 높아서 인지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기가 무섭게 쌀쌀한 기운이 몰려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눈을 들어 보면 바로 앞에 있는 멀지 않은 산에 잔설이 하얗게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외투를 꺼내 입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모양입니다.

 

물이 차가워 발을 오래 담그고 있지는 못했지만 피로도 풀리고 정신도 바짝 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개울가에 앉아서 10여 분간 휴식을 취했는데 주변 풍경은 기온이 낮아서 그런지 이제 막 겨울에서 깨어난 봄 풍경과도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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