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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TMB 2일 차 걷기의 마지막 단계인 본옴므 고개에서 본옴므 산장까지 가는 길이 남았습니다. 지도에서 보듯이 경사는 급하지 않지만 본옴므 교차로까지 산허리를 고도를 높이며 걷고, 교차로에서 산장까지는 내리막을 약간만 걸으면 됩니다. 길은 어렵지 않은데 날이 쌀쌀한 데다가 몸이 지쳐서 상당히 힘들었던 구간입니다.
본옴므 고개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세찬 바람과 함께 엄숙함이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날씨도 춥고 바람도 세차서 몇 사람이 들어가서 쉴 수 있는 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대피소는 의자만 있고 별다른 시설이나 장치는 없는 그야말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한 장소였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만의 휴식처로 잠시 동안 머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청년이 들어왔는데, 공간이 작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위스 트리앙에서 왔다는 청년과 함께 참 힘들고 춥다는 공감부터 지금까지의 여정과 앞으로의 여정까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의 대화치 곤 가장 오래 한 대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 넘어가는 시점에 다시 산장을 향해 걸음을 옮깁니다. 중간에 너무 휴식이 많았는지 이제는 과연 해가 있을 때 산장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지금에 와서 저 눈길 사진을 다시 보면 가슴이 시릿할 정도로 아찔함을 느낍니다. 눈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구르기라도 하면 눈 경사면을 따라 정처 없는 하강길이 되고 마는 아찔한 길입니다.
고개를 조금 올라오면 본옴므 고개로 연결되는 또 다른 경로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la Saussaz"라 불리는 시골길인데 멀리 보이는 건물이 반갑지만 산장은 아니고 완만한 계곡에서 소를 치는 목동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래로 방금 전 휴식을 취했던 대피소가 보입니다. 건너편의 깎아지른 산 능선은 녹음은 하나도 없이 회색빛으로 베일 듯 서 있습니다. 헉헉 거리는 이 시점에 위로가 되는 것은 "내 뒤에 아직도 사람들이 있다!" 였습니다. 곧 깨질 위로지만......
본옴므 교차로 고개(Col de La Croix du Bonhomme, 2,479m)까지 가는 길은 이어지는 암석 길입니다. 문제는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이었는데 물도 있고 간식도 있었지만 잠깐 쉬며 먹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게트를 먹고 있는 저희를 지나치는 한 가족은 부모와 두 딸이 걷는 팀이었는데 자기들끼리 "오, 빵을 먹고 있네!"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빵을 먹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입니다. 저희의 큰 실수였죠. 사탕이나 초코바 챙기는 것을 깜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천사 같은 아저씨 한 분을 만난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나갔는지 저희를 지나가는 사람이 이제는 없고 우리가 마지막 인가보다 생각할 즈음에 거의 지게처럼 생긴 허름한 배낭을 멘 한 아저씨가 저희를 지나신 것입니다. 저희가 걸음을 멈추고 길에서 배낭을 바위에 기댄 채로 쉬면서 "봉주흐"하며 인사를 건넸는데 잠시 발걸음을 멈추시더니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몸 상태는 "나 좀 업고 갈래요?"라고 말하고 싶은 상태였습니다. 혹시 사탕 있냐고 물어보시더니 없다고 하니 바로 달려오셔서는 손을 벌리라고 하시면서 사탕을 한 움큼 쏟아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분 챙기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너무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오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떠나셨는데 그렇지 않아도 우리도 "Step by Step"으로 한 걸음씩 가고 있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정말로 백 걸음 걷다, 쉬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받은 사탕을 입에 넣고 출발하려는데 그분이 가던 길을 되돌아오시더니 다른 사탕을 손에 부어 주시면서 민트향 캔디가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진짜 날개 없는 천사였습니다.
몸은 지치고 힘들어도 어스름한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꽃은 눈에 들어오는 모양입니다.
돌 틈에 뿌리를 내린 하얀 야생화가 정말 곱습니다.
드디어 산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본옴므 교차로 고개(Col de La Croix du Bonhomme, 2,479m)에서 바라본 산장의 모습입니다. 그래도 아직 해가 있을 때 산장에 도착했습니다.
본옴므 산장(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 2,477m)은 사이트에서(https://refugecroixdubonhomme.ffcam.fr/GB_le-mot-du-gardien.html) 예약을 해도 1주일 전에 전화로(+33 4 79 07 05 28) 예약을 확인해야 하는 조금 특이한 곳이기는 했지만 영어 소통도 좋았고 괜찮은 숙소였습니다. 저녁식사가 7시에 시작하는데 저희가 식사 준비가 한창일 때 도착해서 식당 가득 다들 분주한 상태였습니다. 예약 확인 전에 먼저 신발을 벗어서 신발 보관실에 따로 두고 들어오게 하는데 저희는 슬리퍼를 가져갔으므로 문제가 없었지만 어떤 분은 맨발로 다니시더군요. TMB 산장들이 많은 경우 이런 방식이므로 슬리퍼를 가져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예약 확인을 하고 여러 설명과 함께 방을 배정해 주었는데 저희방은 아콩카과 산(Aconcagua) 명패가 붙은 방이었습니다. 큰 산장인 만큼 방이 많은데 세계의 유명산의 이름을 방 이름으로 붙인 것입니다. 아콩카과산에 대해서는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이산에 가려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장면을 본 것이 처음인데 앞으로 어떤 인연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에 있는 해발 6,962m의 산으로 안데스 산맥의 최고봉으로 남미에서도 제일 높지만 아시아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합니다.
한방에 4명이 자는 구조였는데 2층 침대에 위아래 한 명씩 잘 수 있고 공간도 비교적 넓은 산장이었습니다. 2인 1박에 49유로로 예약했었습니다. 식사 없이 숙박만 하는 것이었지만 옆지기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누워 버렸고 저도 혼자서 뭘 해 먹는 게 내키지 않아 물만 마시고 바로 취침에 들었습니다. 침구들도 괜찮았습니다. 샤워실이 있었지만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주인장은 사용할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그러더군요. 그래도 내부에 세면실이 있어서 간단히 씻고 누울 수 있었습니다. 몸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있었지만 옆지기는 이틀 연속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산장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어제저녁 그렇게 좋지 않은 몸상태로 저녁도 먹지 않고 잠을 잤는데, 자면서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기까지 했는데, 그 몇 시간의 잠이 몸을 회복시켜 놓더군요. 방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누웠던 옆지기도 걸을만하다고 합니다. 일단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하니 창 밖으로 여명이 비추자마자 짐을 챙겨서 조용히 방을 나왔습니다. 본옴므 산장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입니다. 공기는 차갑지만 여명이 올라오는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산장 실내는 복잡하므로 바깥으로 나와서 기둥 아래에 버너를 켜고 수프와 간편 조리 밥으로 아침을 든든히 채우고 점심까지 챙겨서 TMB 3일 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아주 맑은 날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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