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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아테네오(Ateneo de Madrid)에 이어서 세르반테스와 동시대에 쌍벽을 이루던 로페 데 베가의 집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는 세르반테스가 말년에 살았던 집(Casa de Cervantes)도 지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로페 데 베가의 집이 위치한 거리의 이름은 세르반테스 길(Calle de Cervantes) 입니다.



마드리드 아테네오에서 로페 데 베가 박물관으로 가는 골목길. 대형 마트의 슈퍼인 까르푸 익스프레스도 보입니다. 다시 언급하겠지만 파리나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에서는 저런 대형 체인점의 슈퍼를 이용하는 것이 여행비를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을 제외하고는 왠만한 중소 도시에는 대형 마트의 체인점 슈퍼들이 있었습니다. 위에서 보이는 다음 골목길에서 죄회전하면 로페 데 베가 박물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가장 작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로페 데 베가 박물관(Lope de Vega Museum, http://www.casamuseolopedevega.org/en) 입니다. 박물관은 스페인의 16세기 극작가인 로페 데 베가의 집으로 뒤뜰에 있는 정원도 볼만 합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월요일 휴관) 하는데 공간이 작다보니 인원수에 제한이 있고 신청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이드 투어만 제공한다고 합니다. 이메일로 예약을 하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로 15명 단위의 가이드 투어를 하는데 관련 이메일은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시간, 언어, 인적 사항등을 적어 예약 메일을 보내면 위와 같은 예약 되었다는 간단한 메일이 날라옵니다.



로페 데 베가가 1610년에 구입해서 그가 죽음을 맞이한 1635년까지 살았던 집으로 그 이후 집 주인들이 나름 집의 모양을 바꾸어 살다가 1930년대에 스페인 왕립 학술원(Royal Academy of the Spanish Language)에서 구입하여 17세기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1935년부터 공개했다고 합니다.



1935년에 스페인 왕립 학술원에서 복원했다는 표지석이 뒷 마당 한켠에 붙어 있습니다.



오전 11시 예약이라 남는 시간에 뒷뜰의 정원을 먼저 둘러 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무료로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온도가 높은 스페인 남부는 가로수로 오렌지를 나무를 심기도 한다지만 마드리드에서 유리 온실이 아닌 노지에 있는 오렌지 나무를 보다니 생경스럽습니다. 하긴 마드리드가 겨울에도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으니 생존은 할 수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이곳의 무화과를 보니 한국에서 한참 크고 있을 무화과가 생각 납니다. 잎도 열매도 한국의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오전이라 그런지 더욱 평화롭고 아침 햇살이 따스합니다.



마드리드의 각 골목마다 붙어 있는 길 이름은 골목이 만나는 곳의 주택 상단에 위의 그림처럼 붙어 있으므로 걷기에 참조하면 됩니다. 9장의 타일에 정성껏 그림과 글로 만들어 놓은 길 표지판은 단순 정보를 넘어서 예술적, 역사적 가치까지 더 해집니다. 위의 그림은 로페 데 베가 박물관 앞쪽의 길이름들로 집은 로페 데 베가의 집이지만 당대 라이벌인 세르반테스가 길이름으로 붙어 있습니다.



박물관 정문의 모습입니다. 정문도 옛 시절을 그대로 복원한 모양입니다. 노크할 때 사용하는 쇠뭉치와 밖을 내다 볼수 있는 작은창이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로페 데 베가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과 그가 집필하던 공간과 소장품들이 있는 박물관은 위의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반인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만 안내에 따라 올라 갈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예약한 이름으로 예약 시간을 확인하고 바로 앞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면 됩니다. 저희는 배낭이 있어서 배낭을 안내 데스크에 맡겨 두었습니다. 별도의 공간이 없었음에도 친절하게 보관해 주시더군요. 



시간이 되니 한 남성분이 저희 일행을 데리고 계단을 통해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일행은 저희 둘과 프랑스에서 혼자 여행 온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한명 총 3명이 단촐하게 가이드 투어에 나섰습니다. 시간이 맞고 예약자가 많지 않으면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관람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영어로 가이드를 신청했는데 그냥 스페인어로 설명을 진행하시더군요. 가끔 영어도 쓰시면서 소통해 주셔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설명이 있으니 생생한 관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방은 작은 예배실로 로페는 한때 성직자가 되려고도 했었답니다. 그럼에도 여성 편력 때문에 실패 했지만 그런 파란만장한 삶은 그의 다양한 작품에 녹아들어가서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성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는 소설 분야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의 생애 내내 가난을 벗어 날 수 없었던 반면 로페는 극작가로 살아가며 연극의 대중화라는 큰 족적을 남기면서도 엄청난 부를 누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집은 로페의 두번째 부인과 살았던 집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좌측은 산 이시드로(San Isidro)의 조각상으로 마드리드에서는 매년 5월 15일 전후로 산 이시드로 축제가 열리는데 12세기에 농민 신분으로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던 산 이시드로를 기리는 축제입니다. 큰 인형을 앞세운 거인 행렬이 독특한 축제입니다.



예배실의 조각과 그림들은 실제로 로페가 구입한 것들로 사후에 그의 딸이 기증한 것이라 합니다. 우측 그림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Saint Catherine of Siena)를 그린 그림입니다.



그의 공부방에서는 프랑스 왕궁이나 귀족들의 서재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저 당시에는 책 값이 엄청나게 비싸서 왠만한 능력으로는 책을 구입할 수 없었지만 성공한 작가로 엄청난 부를 누렸던 로페로서는 저런 책꽂이가 가능했다는 해설이었습니다. 하긴 오늘날에도 몇몇 인기 작가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기는 하죠.



가죽으로 만든 책상 덮개와 의자등 그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로페의 주요 작품들이 탄생한 장소입니다.



그의 집필실에 걸려 있는 그림들. 우측에 있는 그림은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의 집필실은 거리를 향해 있는 이집에서 가장 큰 공간으로 그가 책을 집필하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책상 반대쪽으로는 사람들이 집을 방문하여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었습니다.



로페의 서재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이곳에서 여성들이 방문자를 받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바느질을 하는 장소 였다고 합니다. 바닥에 매트를 깔아 놓은 형태입니다.



벽면을 태피스트리와 벨벳으로 장식하고 거울을 걸어 놓는등 여성들의 공간 답게 꾸며 놓았습니다. 당시 귀족, 지식인들의 삶을 옅볼 수 있었습니다.



오일 램프와 자기 그릇이 놓여 있는 식당의 모습입니다.



해설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스페인도 전통 자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8세기초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장악이후 500년을 거치면서 이슬람 문화와 함께 자기 기술이 전수되었다는 것입니다. 8세기초 중국으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아 수세기 동안 존재했던 러스터웨어(lustreware)가 스페인의 전통 자기로 불린운다 합니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스페인이 러스터웨어등의 연질자기를 먼저 시작했지만 스페인의 토질이 고온에서 구워내는 경질 자기를 만들기에 적절치 않았고 여러가지 다른 이유로 인해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독일의 마이센 자기, 영국의 본 차이나등 나름의 경질 자기들을 개발하는 성과가 있었지만 스페인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엌의 모습입니다. 19세기 유럽 귀족의 부엌과는 상대가 안되는 모습이기는 합니다. 불을 지펴서 요리를 하는 17세기 당시의 모습을 복원한 것이니까요. 집을 복원하여 박물관으로 꾸미면서 원래 부엌의 위치는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층 더 올라가면 또다른 방들이 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지만 요리사와 같은 일하는 사람들의 방도 있었을 것입니다. 복원된것처럼 2층이 아니었을 겁니다.



아들방입니다. 이곳에서는 해설가가 위의 사진과 같은 독특한 물품을 소개해 주었는데 우리나라의 금줄처럼 아이가 태어나거나 제사를 지낼때 외부인을 막아 부정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처럼 아이 허리에 채워서 건강을 기원했다고 합니다. 이땅에는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 뿐만아니라 샤머니즘도 분명하게 존재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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