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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동안 머물렀던 포카라의 호텔 UNI를 떠나면서 옆지기에게 저녁 식사 메뉴를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여행을 계획할 당시만 해도 무사히 산행을 끝내고 포카라로 돌아오면 나에게 스스로 상을 준다는 의미의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넉넉한 예산으로 한국 식당에서 거나한 저녁을 먹거나 스테이크 집에서 고기를 썰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길을 찾아가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옆지기가 호응만 하면 바로 실행될 일이었다. 그러나, 옆지기는 조금 생각하더니 배도 고프지 않고 일단 야간 버스 타는 곳 근처로 가서 패스트푸드 점이 있으면 먹자고 한다. 길을 찾아가야 하는 부담은 덜었지만 과연 야간 버스 타는 곳 근처에 가면 마음에 드는 식당이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그렇지만, 옆지기의 말을 따라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포카라 시내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몇 시간 전에 답사차 왔었던 거리에는 우리가 찾는 패스트푸드점은 보이지 않았다. 배낭을 둘러멘 동양인 커플이 가로등 없는 네팔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썩 좋은 풍경도 아니었지만 어두운 거리가 조금은 무서웠는지 옆지기는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나를 붙잡고 걷는다. 야간 버스가 멈추는 정류장을 중심으로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식당은 찾을 수 었었고, 화려한 조명에 외관이 패스트푸드점처럼 생겨서 들어가 보면 담배 연기가 가득한 술집이었다. 

 

그러다가 야간 버스 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작은 빵집에 들어갔는데 우연 치고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였다. 이름하여 빨간 장미 빵집(Red Rose Cafe & Bakery)이었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빵집으로 메뉴판도 그림처럼 낡고 깔끔한 인테리어는 없었지만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크루아상 2개와 콜라 2개에 180루피였으니 긴 시간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저렴했다. 

  

카트만두 가는 야간 버스가 길건너에서 타는지 물어보니 잘생긴 남자 주인은 맞다고 했다. 여주인은 영어에 서투른지 모든 응대는 남편을 시켰다. 문 닫는 시간을 물어보니 9시라고 하길래 버스 시간까지 있어도 되냐고 물으니 그러라고 한다. 주위에 한국에 간 사람들이 많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크루아상 하나와 콜라 하나 시키고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안주인은 반가운 눈치는 아니었다. 안주인이 직접 만든 케이크와 빵을 파는데 오랜 시간 앉아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케이크 좋아하는 옆지기에게 케이크 먹겠냐고 하니 그걸 또 괜찮다고 거절한다. 

이 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부부의 두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6살짜리 큰딸과 개구쟁이 남동생이 만들어 내는 그림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게 만들어 주었다. 아이들 때문인지 아니면 가게에 죽치고 앉아 있는 동양인 때문인지 몰라도 바로 옆 약국을 운영하는 여주인도 가게를 들락거리며 아이들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약국 여주인이 다녀간 다음에 옆지기는 "정말 예쁘다"며 네팔 여인들의 미모를 칭찬한다. 네팔도 민족 구성이 다양해서 눈이 깊은 여인들이 어떤 민족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주인에게 옆지기의 말을 전하니 조금은 우쭐해하는 표정이다. 아무튼 우리의 이목을 사로잡은 대상은 예쁜 약국집 여자나 잘생긴 남주인, 여주인도 아니고 주인장의 두 아이들이었다.

6살짜리 누나는 학습지처럼 보이는 문제집을 풀면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빠를 부른다. 딸바보처럼 보이는 젊은 아빠는 꼼꼼하게 딸을 가르쳐 주지만 정작 딸내미는 이방인의 시선이 쑥스러운지 집중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잠시 한눈을 파는 것을 엄마에게 들키면 한국 엄마 저리 가라 하는 엄마의 엄한 잔소리를 듣고는 이내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그런 누나 주위에서 세상모르는 아들내미는 땅바닥과 씨름 중이다. 맨발로 가게 바닥을 뒹굴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옆집 아저씨에게 붙들려 오기도 하고 그야말로 천방지축이었다. 그런 아들을 달래는 젊은 아빠의 무기는 바로 풍선이었는데 그걸 가지고는 한참을 놀았다. 그러다가 죽돌이, 죽순이가 빵집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네 가족은 빵집 뒤 공간에서 차례로 식사를 했는데, 식사 자리에서도 가만히 있을 아이들이 아니지 않은가? 뒤에서는 엄마의 잔소리와 때 부리는 아이의 소리가 섞여 들려오다가도 그래도 엄한 엄마의 힘이 강력한지 아이들은 엄마의 통제력 아래 곧 조용해졌다. 6살짜리 아이와 네팔 숫자 읽기를 할 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가며 엑, 두이, 띤, 짤, 빠쯔..... 그다음을 세지 못하니 주인장이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처, 사뜨를 이어간다. 이방인도 자기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을 일, 이, 삼, 사 하고 있으니 신기했던 모양이고 주인장도 네팔 숫자를 읽으려 하는 제가 대견해 보인 모양이다. 외국인이 자기 나라말을 하는 것은 어찌 되었든 기분 좋은 일이니까. 저녁 8시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 시간에 맞추어 가게를 나오는데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었다. 

 

야간 버스는 우리가 이용한 자가담바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버스가 오면 자가담바인지 차장에게 가서 물어야 했다. 두어 대를 보내고 나서야 버스에 탈 수 있었는데 우리가 내일 날짜를 오늘로 바꾼 것이 통보가 되었는지 이름을 대니 차장은 바로 알아 들었다. 자가담바 회사는 버스를 동시에 두대를 투입하는데 우리가 탈 버스는 뒤에 오는 것인지 기다렸다 탈것인지 아니면 가다가 바꾸어 탈것인지를 묻길래 일단 승차했는데 10여분쯤 후에 버스가 멈추더니 버스를 갈아타라고 한다. 한 곳에서 버스 두대가 한참을 멈추어 서서 기다렸는데 예약 변경 시 들은 대로 맨 끝 자리로 배정되었고 버스는 외국인들로 만석 상태로 카트만두로 출발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올 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카트만두로 돌아갈 때는 거의 만석이었으니 미리 예약해 두길 잘했고 예약 변경도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본격적으로 카트만두를 향해서 달리자 마실 물과 토스트와 감자가 전달되었는데 나름 먹을만했다. 카트만두에서 떠날 때는 종이 포장된 샌드위치여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옆지기가 꾸역꾸역 먹어 치웠는데, 포카라에서 출발할 때는 포일에 포장된 빵과 감자라 둘 다 바로 먹어 치웠다. 카트만두와 포카라 사이를 오고 가는 길은 같았지만 한번 경험한 상태로 버스를 탔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전에 10Km에 가까운 거리를 걷고, 또 포카라 시내를 걸은 피곤 때문인지 몰라도 엄청나게 흔들리는 버스의 맨 끝 자리에서 나름 쪽잠도 자면서 편안하게 카트만두로 이동할 수 있었다. 포카라에서 잠깐 있었던 숙소의 암울함을 탈출하는 해방감, ABC 히말라야 트래킹을 무사히 끝냈다는 성취감, 카트만두에서 선물 같은 하루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섞여서 자리는 불편할지언정 마음만은 호텔이었다. 원래 계획대로 였다면 카트만두에 새벽에 도착해서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느라 분주했을 텐데 이제는 그야말로 즐기고, 누리는 시간만이 남은 것이었다.

 

밤 9시쯤에 포카라를 떠난 야간 버스가 카트만두 타멜(Thamel)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 40분경이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때는 포카라 근처에서 한참을 머물렀다가 포카라로 들어갔는데 카트만두로 들어올 때는 그런 과정 없이 승객들의 하차 지점을 하나씩 물어보더니 차례로 내려 주었다. 우리가 포카라로 갈 때 버스를 탔던 발라주 촉을 지나면서는 버스가 어디까지 갈지 몰라 조금 초조해졌다. 어디서 내릴지 몰라 긴장하고 있던 차에 앞에서 타멜이라는 소리에 바로 버스를 내릴 수 있었다. 같이 내린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들고 배낭을 메고 있는 젊은 여성 한 명과 다른 청년이 가는 길을 따라서 일단 컴컴한 카트만두의 새벽길을 걷기 시작했다. 카트만두의 새벽 거리의 풍경은 흡사 남대문 시장과 같았다. 전구를 켜 놓은 노점상에서 이른 아침을 먹는 사람들, 청소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는데 우리는 일단 얼리 체크인을 하는 숙소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금까지 경험한 숙소들 중에는 새벽에 체크인해서 다름 날 오전까지 머물 수 있는 호텔이 없었으니 막막했지만 그런 숙소가 없으면 체크인 시간까지 어떻게 버티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도 앱을 보면서 호텔이 많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방색기가 마치 만국기처럼 걸려 있는 거리를 통해서 타멜의 골목을 들어간다. 걷다 보니 앞서 갔던 서양인 커플 중에서 여성 혼자만 덩그러니 되돌아온다. 커플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버스에서 내리면서 급 만남을 가졌었나 보다. 하긴 버스에서도 같이 앉아있던 사람들이 아니었으니...... 남성의 짐 들어주기 작전이 통하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일정이 달랐던지......  젊은 솔로 여행객들이 서로 산중에서 만났었더라면 인연이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진짜 커플인데 그것도 이십 년이 넘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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