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TMB 3일 차 걷기를 시작합니다. 모험과 스릴, 공포와 기도, 절망과 기쁨이 함께 했던 경로입니다. 클래식한 TMB 경로가 아니다 보니 TMB 표지판도 없고 미리 준비한 GPS 경로가 담긴 스마트폰 지도와 돌무더기나 바위에 노란색 페인트로 칠해진 두 줄짜리 표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경로입니다. 한 가지 더 앞서간 이들의 발자국도 있기는 합니다. 본옴므 산장(Refuge de La Croix du Bonhomme, 2,477m)은 여러 갈래의 길이 연결되는 지점에 위치한 산장으로 저희처럼 TMB를 역 시계 방향으로 걷는 분들의 경우 3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는 산장에서 바로 본옴므 고개(Col de La Croix du Bonhomme)를 통해 하산하는 방법으로 이 산장에서 머물지 않는 사람들이 보통 이 방법을 선택합니다. 내려가면 레 샤피우(Les Chapieux)에서 묵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방법 두 가지는 일단 위의 그림처럼 어제 산장으로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가서 교차로에서 푸흐 고개(Col des Fours)까지 가는 것은 동일합니다.  푸흐 고개에 이르면 한 가지 방법은 하산하여 빙하마을과 모테 산장(Refuge des Mottets)으로 가는 것이고 나머지 한 방법이 저희처럼 산을 계속 올라 푸흐 북쪽 봉우리(Tete Nord Des Fours)를 거쳐서 로베르 블랑 산장(Refuge Robert Blanc)으로 가는 것입니다. 헷갈려하는 이들이 의외로 있었습니다.

 

본옴므 교차로에 다시 올라서 구름 한 점 없는 주변 경치를 감상합니다. 아침에는 다행히 해를 등지고 걷겠습니다.

 

어제 올라왔던 본옴므 고개와 발므 산장 표식을 뒤로하고 30분 표식이 있는 푸흐 고개(Col des Fours) 방향으로 걷습니다.

 

해발 2천 미터대에서 오르내리는 TMB 3일 차는 시작부터 눈길입니다. 빙판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눈길이기는 해도 아이젠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푸흐 고개(Col des Fours) 가는 길은 바위 산과 눈길의 연속입니다. 험난한 하루를 예고하는 듯도 합니다.

 

7월의 얼지 않은 눈길이라 다행이기는 하지만 눈길은 역시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10여분 눈길을 걸어 올라 뒤돌아 본 눈길입니다. 눈길을 걸을 때의 특징은 거의 바로 발 앞만 보고 걸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중해서 걷다 보면 내가 걷는 이 길에 대한 두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기는 합니다.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니 아침 해가 눈 덮인 산을 고문하듯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습니다. 

 

클래식 TMB 경로가 아닌 경우에는 누군가 쌓아놓은 이런 탑들이 길을 알려 줍니다. 이제는 바위를 기어 올라가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전문 클라이밍 수준은 아니지만 초보 트래커에게는 억! 소리 나게 하는 코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후에 만날 코스에 비하면 약하기는 하지만......

 

저 멀리 하얀 봉우리는 과연 알프스의 최고봉 몽블랑일까요? 

 

깎아지른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길은 정말 다리를 후들거리게 합니다. 한쪽으로 발을 디뎌 구르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안녕! 입니다. 뒤집어 보면 이런 길을 걸어야 만날 수 있는 환상적인 풍경도 있다는 것입니다.

 

푸흐 고개(Col des Fours, 2,685m) 앞에서 저희보다 조금 일찍 출발한 청년 그룹을 만났습니다. 미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푸흐 고개까지 올라갔다가 길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내려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도를 보면서 한참 토론 중이었습니다. 저희를 만나서는 저 위로 올라가면 안 된다고 어디로 갈 예정인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간다고 하니 자신들의 지도를 훑어보더니 알 수가 없다고 그러더군요. 저희가 인쇄한 지도를 보여주고 그 친구들이 가진 지도를 받아 보니 이곳에서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가는 길은 아예 표시가 없었습니다. 그제야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이 일이 보통 일은 아니구나 하고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은 모테 산장으로 갈 모양이었는데 하산길을 내리막 길도 눈이 가득해서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이기는 했습니다.

 

지도에서 처럼 저희는 푸흐 고개에서 계속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지만 저 친구들처럼 우측으로 꺾어져서 하산을 하면 빙하마을과 모테 산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꺾어지는 지점을 못 찾고 있었던 거죠. 

 

저희는 GPS를 켜서 맵스닷미로 현재 경로가 정상임을 확인하고 푸흐 북쪽 봉우리를 향해 걷습니다. 드문드문 놓인 돌탑들을 따라서 바위를 기어 올라갑니다. 무서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바로 앞의 바위를 붙잡고 기어 올라갑니다.

 

산 넘어 산이라고 바위를 올라서 바라보면 바로 앞에 저 바위는 또 어떻게 오르나? 하는 바위 넘어 바위입니다.

 

그래도, 바위 하나씩을 넘다 보니 올라온 길이 까마득하게 한눈에 보입니다.

 

깎아지른 산등성이를 걷는 짜릿함과 스릴이 있는 길이지만, 만약 날씨가 좋지 않았다면? 어우! 생각만 해도 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푸흐 북쪽 봉우리(Tete Nord Des Fours, 2,756m) 근처에 도달하면 그야말로 스펙터클한 전경을 만나게 됩니다. 바위와 눈길을 거쳐 올라온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어제 저희와 길을 함께 했던 뻬나 침봉(Aiguilles de la Pennaz)의 모습입니다. 

 

산등성이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은 동서남북 어디로도 거칠 것이 없는 뻥 뚫린 전망입니다. 산등성이에 서서 푸흐 북쪽 봉우리부터 시작하여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면서 찍은 동영상입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방향으로 고봉들이 즐비한 알프스의 모습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걸었던 발므 산장을 거치며 올라왔던 경로의 모습입니다. 길의 윤곽만 있고 다른 것은 보이지 않네요. 

 

조베 호수를 품고 있는 산의 모습이 절경 그 자체입니다. 조베 호수를 거쳐서 오늘 목적지인 로베르 블랑 산장으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넘어가야 할 고개들을 보니 머리가 절레절레 저어 집니다. 

 

행운과 같은 풍경입니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덕에 아주 먼 곳의 산까지 시야에 들어오는 행운을 누리지만 날씨가 좋지 않고 바람이 강했다면? 오오 정말 생각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축복입니다. 축복!

 

푸흐 북쪽 봉우리(Tete Nord Des Fours, 2,756m)에는 원판으로 각 방향에 어떤 산이 있는지를 안내하고 있는데 원판을 보니 아까 보았던 하얀 봉우리가 몽블랑이 맞는 보양입니다. 

 

한 커플이 먼저 봉우리에 도착해 있었는데 작은 망원경을 가지고 있더군요. 걸어 보니, 망원경이 경치를 감상하는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클래식 TMB가 아닌 경우 등산로라는 표식이 바위에 노란색 페인트로 두 줄 그어 놓거나 작은 돌탑을 쌓아 놓는 게 전부 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찾아야 헤매지 않고 길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망원경은 이런 것을 찾을 때 아주 유용합니다. 저희가 앞선 커플이 남겨 놓은 눈길 위 발자국을 따라 얼마간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이후에는 눈이 없는 바위 길 등에서는 표식을 찾지 못해 엉뚱한 길로 치우쳤다가 GPS로 원래 경로로 다시 회복하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불필요한 체력 소모가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몽블랑 방향으로 길을 이어 갑니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을 지도로 확인하면 위의 그림과 같습니다.

 

728x90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