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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친구들과의 송년회때 "예전에 읽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요즘 백범일지를 읽고 있는데, 근현대사를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체감하듯 참 재미있게 읽고 있다!" 했더니 친구들의 반응은 넌 어릴적 읽었었냐? 교과서에서도 본적이 없는것 같았는데....한다.
나만 늦었다 싶었는데 TV 프로그램 방영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백범일지를 만난 사람이 적다는 것에 의아해 했다.
백범일지를 시작하면서 한방 얻어 맞은것은 그의 호인 백범의 한자가 하얀 호랑이의 의미가 아니라 소나 돼지를 잡는 백정(白丁)의 백과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범인(凡人)의 범이었던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정부의 문지기를 해도 좋다는 그의 참 겸손이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구라는 이름 또한 예명으로 본명은 김창수로 도피 생활 가운데 김구로 붙여진 것이었다. 삶에 대한 진솔한 고민 가운데 동학에도 참여하여 접주로 활약을 했었고 충남 마곳사에서 승려가 되기도 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해 교육에 매진한 기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드라마 같은 삶을 통해 동학이 발원한 시대적 배경과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교육에 매진했던가를 엿볼 수 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는 일부 식자들의 가슴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이데올로기의 혼란 가운데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삶이 한점의 가림막 없이 표출된 그러한 책이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청년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백범일지 가운데 몇군데 인상 깊었던 몇군데를 골라보았다.
백범이 과거장에서 목도한 부패한 현실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든 공부로 입신양명하여 강가, 이가에게 당한 압제를 면할까 하였는데, 그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거장의 폐해가 이와 같은즉....그들에게는 엽전의 마력이 있는데 어찌하오리까"라며 아버님의 권유에 따라 풍수와 관상 공부를 하는데 곧 스스로의 관상을 보고는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졌다가 [상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고 내적 수양에 힘쓰게 되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마음에 곱 씹어야 될 내용이 아닌가 싶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등 일제 가운데서도 대한 청년의 기백을 떨치던 인물들이 하나같이 김구와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동학 혁명이후 쫓기던 김구를 지켜주던 안태훈 진사가 있었는데 그는 바로 그의 장남이 안중근 의사였던 것이다. 사실 안진사는 동학군을 토벌하는데 앞장 섰는데 김구의 인물을 보고 토벌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지켜 주었으니 훗날 안중근 의사가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될지 그 누가 알았으랴.....아무튼 훌륭한 인물 뒤에는 훌륭한 아버지가 계셨다는 사실 앞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됨됨이가 어떠해야 할지 결심해 보는 바이다.
김구의 경우 아버님 뿐만 아니라 어머님 또한 걸출한 인물이셨는데, 수많은 세월 아들의 옥바라지와 타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결기 있는 여장부의 모습으로 김구에게는 참으로 든든한 배경이 되셨다. 물론 그 분들의 가슴에 엄청난 고통과 인내의 자국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심은 김구로 하여금 조국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 삶을 헌신케 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김구의 배움의 태도는 그가 성균관이나 높은 벼슬을 한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명철한 판단과 여러 사람을 힘있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사형수로 옥중에 있을때 "아침에 도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하는 격으로 손에 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그의 "의리는 유학자에게 배우고 문화와 제도 일체는 세계 각국에서 채택하여 적용하는 것이 국가의 복리가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는 고백 처럼 열심을 다한 그의 독서는 백범일지 끝 부분에 "나의 소원"이라는 제목아래 민족국가, 정치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차례로 서술한 문장에 깊은 이해와 지식의 폭으로 나타난다. 자유란 무엇인가...로 시작하는 그의 설명은 나라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과 지식의 깊이, 그리고 당시 상황을 놓고 고민한 그의 생각이 명쾌하게 드러나서 2013년 현재의 우리나라 상황에서 어떤 가치를 마음의 중심에 두어야 할지 되새기게 해준다.
진짜 마음을 아찔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김구의 부친상 직전 병환에 계신 아버님을 위해 허벅지 살을 떼어 구어 드시게 하고 피를 드리는 장면이었다. 가슴이 오그라들 정도로 아찔했지만 모자란듯하여 다시 한번 살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고통에 살을 베기만 했다는 그의 고백에서는 부모님을 향한 그의 마음이 그대로 가슴에 전해졌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고 어떻게 삶의 가치를 논하고 사회와 국가에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절실하게 부모의 도리, 자식의 도리를 생각해 본다.
김구의 어머님 때문이었을까? 그가 바라보는 여성에 대한 시각은 참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에게 귀감이 된다고 본다. 아내가 될 사람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어머님이 아내의 편만 든다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고, 임정시절 봉빈이라는 처자에 대해서 요원으로서의 능력을 칭찬하는 것을 보면 사람의 귀천, 외모, 환경을 보기 보다 마음에 품은 생각과 됨됨이를 바로 보는 것, 참으로 본받을만한 리더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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