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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KTM)을 이륙한 에어차이나 비행기는 기수를 돌려 중국 청두로 향한다. 땅 위에 펼쳐진 집들이 레고 블록처럼 보인다. 카트만두 인구가 320만 명이라 하니 정말 엄청난 규모다. 물이 풍부한 계곡이라 하더라도 급격하게 진행되는 도시화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네팔도 안녕이다.
타멜 거리에서 구입했던 책을 읽고 있었는데 창밖으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국 청두에서 카트만두로 넘어올 때 누렸던 풍경이지만 다시 만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다. 옆지기를 콕콕 찔러 몇 컷을 남긴다. 이런 풍경을 만날 때면 창가 자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옆 자리에서 고개를 빼들고 창 밖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근처 자리에 한국인 중년 커플이 앉아 있었는데 체크인이 늦었는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괜히 아는 척하지 않았다.
이제 저 설산도 안녕이다. 읽고 있던 책은 영국에서 출판된 "Teach Yourself" 시리즈로 "Writing Poetry"란 제목의 시 쓰기 관련 서적으로 젊은 시절 시 한 편 쓰겠다고 끙끙대던 기억을 소환시키는 그런 책이었다. 나름 책에 빠져서 한참을 집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옆 자리에 앉은 중년의 한국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 기내 면세품 브로슈어를 읽느라 열중했다. 복장을 보면 그 커플도 청두 경유로 네팔에 트래킹을 다녀가는 모양이었다.
카트만두-청두 노선의 기내식은 청두-인천 노선의 기내식과는 차이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카트만두-청두 노선의 기내식이 나아 보였다. 카트만두 공항에서의 점심이 애매한 측면이 있었는데 기내식 덕분에 시장기 없는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다.
2년 전 청두 경유 파리행 비행기를 탄 경험과 열흘 전 청두 경유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탄 경험, 그리고 오늘 환승 경험을 종합해 보면 72시간 자유 환승을 위한 입국 심사 절차와 환승 호텔 이용 방법이 2년 전과는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우선 72시간 자유 환승(72 Houe Free Transit) 부스는 없을 때도 있기 때문에 외국인 입국 심사 줄 어떤 곳으로 들어 가도 상관없다. 문제는 환승 고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인데 2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에 인천에서 청두로 들어올 때도 일정이 표시된 E-Ticket과 여권을 보여주면 해결되었는데 카트만두에서 청두로 들어올 때는 관련 내역을 작성해 오라는 것이었다. 바로 앞에서 입국 심사를 하던 사람들은 또 그냥 통과시키고 누구는 써오라고 하고 담당자마다 제각각이었다. 결국 우리는 머물 예정인 환승 호텔을 비롯해서 돌아갈 환승 편 항공기까지 적는 양식을 작성해서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들 입장에서 보면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환승객이 양식을 써서 제출해 주면 여러 질문도 필요 없이 심사가 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짐을 찾아서 나가는 과정도 보통은 세관 검사 장비를 켜 두지 않고 통과시켰는데 카트만두에서 청두로 오는 항공편에서는 일일이 장비를 통과시켜야 했다. 우리는 일단 짐을 찾아서 출국장으로 올라가 우측 맨 끝 통로를 통해서 위의 그림과 같은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2 터미널로 이동하여 환승 호텔을 확인하고 호텔 담당자를 호출했지만 이 과정도 2년 전과는 달라진 모양이었다. 일단 청두 공항 2 터미널 출국장 R열에 에어차이나 체크인 카운터는 그대로 존재하지만 환승 호텔 서비스 카운터는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 표시가 없이 관련 서비스를 수행했지만 환승 호텔 사용 방식이 달라진 것으로 보였다. 에어 차이나 고객이 환승 호텔 예약을 하는 시점에 이미 어떤 호텔로 가는지가 확정이 되므로 해당 호텔에서 1 터미널로 바로 나와서 해당 호텔에 배정된 고객 이름을 들고 대기하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1 터미널에서 나올 때 이름을 보지 못했는데 호텔로 가는 셔틀에서 안내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종이를 보니 우리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2 터미널까지 올 필요 없이 1 터미널에서 호텔 담당자를 만나면 되는 것이었다. 아마도 셔틀버스를 채우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때문에 한참을 기다리지 않았을까 싶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버스에 맨 나중에 승차한 덕택에 호텔 체크인은 맨 처음으로 할 수 있었다. ㅎㅎ
이번에 예약된 무료 환승 호텔은 상샹 에비에이션 호텔(Shangxiang Aviation Hotel)로 환승객 들은 대부분 꼭대기층으로 배정하는 모양이었다. 환승 호텔의 방에 들어온 시각은 9시 30분으로 카트만두에서 준비한 한국 컵라면과 함께 일반 라면으로 뽀글이를 해 먹었는데 뽀글이가 나름 만족스러웠다. 20년도 훨씬 지난 세월, 군대에서 선임들이 먹던 뽀글이라도 얻어먹는 날에는 입맛을 다시면서 뽀글이 라면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중국 땅에서 해 먹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컵라면은 몇 젓가락이면 끝이었는데 뽀글이 라면은 나름 식사가 되었다.
네팔에서 준비한 간식으로 짧은 휴식 후에 깊은 잠에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뭔가 하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모닝콜이었다. 옆지기와 둘 다 세상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닝콜이 아니었다면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이른 아침 시간에 출발하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다. 호텔 데스크에서는 미리 약속한 시간에 내려오도록 모닝콜을 해준 것이었다. 급하게 짐을 챙겨 내려오니 터미널로 가는 다른 일행들도 있었다.
호텔 데스크에 방 카드키를 반납하니 아침을 먹지 못한다고 비닐봉지에 주스 하나와 빵을 담아서 건네주었다. 마치 어릴 적 소풍 가는 길에 받았던 도시락 느낌이었다. 청두 공항에는 오전 6시를 바라보는 시간에 도착했다. 7시 5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는 체크인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호텔에서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해둔 덕택에 아주 간편하게 체크인을 하고 탑승권을 받을 수 있었다. 탑승권을 받은 다음, 보안 검사 들어가기 전에 옆지기와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호텔에서 건네준 빵과 주스를 먹는데 어린 시절 소풍 때가 떠올라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폼나는 샌드위치나 토스트와 따스한 커피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미소를 짓게 한 호텔의 성의가 고마웠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은 비가 보인다. 참 희한하다. 파리 걷기 여행 때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때도, TMB 트레킹 때도 여정 중에는 매일 좋은 날씨를 보이다가 돌아갈 때면 약간의 비가 내렸는데 마치 징크스처럼 오늘도 청두 공항에서 비를 만났다. 여행을 차분히 마감하라는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인천-청두 간은 A330-200 기종이 투입되고 있었다. 한국에서 청두로 올 때는 개인 스크린이 동작하지 않아서 영화도 보지 못했는데 다행히 청두에서 인천으로 갈 때는 영화 한 편 제대로 감상했다.
비행기가 구름 위로 올라오니 청두 공항에서 만났던 보슬비는 어디로 사라지고 비행기는 아침 태양을 바라보며 시간을 거슬러 날아간다.
이번 여행 마지막 기내식. 환승 때문에 왕복 4회의 기내식을 먹었는데 나름 도움이 되었다. 모두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었지만 기내식이 제공되어 시간 관리에도 유용했다. 인천 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해서 입국 심사장으로 이동하는데 바로 앞에 아부다비에서 날아온 비행기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전 TMB 여행 때 이용했던 항공편이었는데 아부다비에서 도착한 승객들은 체열 모니터링 및 신고서를 작성해야 했지만 중국에서 날아온 항공기는 무사통과다. 검역이 항공편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떠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염려도 있었지만 여행을 다녀온 결과를 돌아보면 TMB 보다도 수월한 산행이지 않았나 싶다. 이번 여행도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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