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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TMB 걷기 여행의 마지막 고개인 발므 고개(Col de Balme, 2,191m)에 오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첫날부터 오늘까지 계속 화창한 날씨로 알프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감사도 있었지만, TMB 2일 차에 거의 탈진 상태로 산장에 도착했던 경험과 클래식 TMB 경로가 아닌 곳을 걸었던 TMB 3일 차, 4일 차의 아찔한 기억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발므 고개에서 바라보는 프랑스 샤모니 방향의 풍경은 가까이는 케이블카 종점을 중심으로 널찍한 초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는 빙하를 머리에 이고 있는 고봉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발므 고개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경이었는데 딸랑딸랑 워낭 소리를 내며 한 무리의 소떼들이 케이블카 정류장 근처에서 초지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이곳까지 스키를 메고 올라와서 지금은 초지가 펼쳐져 있는 이곳을 스키로 활강하며 내려가겠지만 7월의 발므 고개는 스키 대신 자전거를 리프트에 걸고 이곳까지 올라온 산악자전거 마니아들로 넘쳐 납니다. 자전거로 힘들게 오르막을 오르는 대신에 리프트를 이용하고 비탈을 자전거로 내려가는 스릴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발므 고개 주변으로 다양한 경로로 길이 있으니 스키 마니아, MTB 마니아들에게는 계절에 관계없이 레포츠를 즐기기에 환상적인 장소 겠다 싶었습니다.

 

발므 고개에서 바라본 샤모니 계곡과 몽블랑의 전경입니다. 화창한 날씨에 뻥 뚫린 시야는 하얀 몽블랑을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초등학교 시절 "몽블랑"이란 그림물감으로 몽블랑이란 이름을 뭔지도 모르고 만났는데 이제야 그 정체를 제대로 만납니다.

 

발므 고개 대피소 앞 풀밭에 앉아 이른 점심과 간식을 먹으면서 고개에서 누리는 마지막 휴식 시간을 가집니다. 일주일 넘게 먹다 보니 이제는 물리는 비상식량도 고추장의 위력 앞에서는 먹을만하게 변모합니다. 이제 힘든 걷기를 끝이라는 해방감 때문일까요? 없던 입맛도 살아납니다. 산 능선 이곳저곳으로 이어진 길을 보니 산악자전거를 가지고 이곳까지 온 분들은 정말 상쾌한 라이딩으로 내려가겠구나! 하는 부러운 마음도 생깁니다. 어찌했든 주요 걷기를 끝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음 여정을 구상하는 이 시간은 정말 평화로운 마음 가득입니다. 옆지기에게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지, 걸어 내려갈지를 결정하도록 넘겨 놓았지만, 그 결정을 기다리는 기다림도 조바심보다는 또 다른 만남에 대한 기대로 다가옵니다.

  

발므 고개에서의 즐거운 한때를 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인도 청년의 정렬 어린 프러포즈였습니다. 함께 산지 20년이 넘은 저희는 고추장에 비빈 밥을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 시선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한수저, 한수저 우물우물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너댓 명의 여대생들이 저희 근처에서 고개를 오른 기쁨을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은 인도인 여대생이었고요. 그런데 동료로 보이는 인도인 청년 한 명이 그들 앞에 오더니 무릎을 꿇고 반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프러포즈였습니다! 인도인 여성은 "오 마이 갓! 오 마이 갓!"을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저 멀리 몽블랑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경치에 흠뻑 취해 있을 때인데 그 순간에 다가온 프러포즈라니...... 발을 동동 구르며 "오 마이 갓!"을 연발하는 그 여성의 마음, 무릎을 꿇고 여자 친구의 답을 기다리는 남성의 마음을 생각하니 지천명의 눈가에도 촉촉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의 대화임에도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한 덩어리처럼 두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반지를 품에 품고 스위스에서 발므 고개를 오르는 내내 온갖 상상과 기대로 땀과 숨은 아무 거칠 것이 아니었을 청년의 마음도 되어 보고, 남자 친구가 무릎으로 내민 반지에 발을 동동 구르며 감격하는 청년의 마음도 되어 보면 그저 감격에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꼭 껴안는 순간 식사를 하던 저희도, 주위의 친구들로 모두 환호를 지르며 박수로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사랑!  그 무엇으로도 대치 불가능한 사랑을 고갯마루에서 생중계로 만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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