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도 피가 많이 설치는 한해였다. 늦봄 논 전체를 샅샅이 뒤져가며 그리 피 뽑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이 시기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피가 한창이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모내기한 논에 탈곡을 끝낸 밀 줄기와 보리 줄기를 잘라서 뿌려주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피가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밀농사 실패로 줄기도 뿌려주지 못하고 모내기 이후 벼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것 같아 물을 몇일 빼주었더니 피가 제 세상을 만난던것 같습니다. 피사리는 곡식 가운데 함께 자라고 있는 피를 뽑아내는 작업을 의미하는데 이번에 한 작업은 피사리이기 보다는 "피 수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피가 열매를 맺지 않은 상태라면 뽑아서 둘둘말아 논바닥에 묻으면 그만인데 열매도 나왔고 밀 농사를 위해서 논 말리..
"피의 반란이 시작되는가?" 제목만 보면 무슨 정치 글이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무협 소설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이 글은 한 마지기 논에서 일어나는 끈질긴 생존의 역사일 수 있다. 평범한 한국 사람이 매일 주식으로 먹는 쌀이 식탁에 오르기 까지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그 위대한 생명의 서사시의 귀퉁이를 여는 이야기 일수 있다.요즘은 경지 정리와 함께 기계화된 영농으로 트랙터로 논을 갈고, 이앙기로 모를 심고 제초제가 풀 뽑기를 대신하는 시대지만, 경운기로 논을 갈고 가족이 못줄을 대고 손으로 모를 심은 우리 논에는 가을이면 벼 사이로 삐죽 삐죽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피" 덕분에 아마추어 농부 티를 제대로 내고 만다. 올해 모내기를 한지 3일이 지난 논에는 그 가을의 잔혹사를 준비라도 하듯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