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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 포구를 출발한 올레길 9코스는 박수기정 위로 올라가 월라봉을 향한다. 최근에 변경된 올레길 9코스는 월라봉 우측 길을 통해서 군산으로 가지만 오전 내내 올레 8코스를 걸은 우리는 체력을 감안해서 월라봉을 오르는 이전의 올레길 코스로 간다. 올레길 표식도 리본도 없어 길 찾기가 어렵지만 우리의 체력을 감안한 고육책이었다.

 

넓은 들을 의미하는 난드르를 병칭으로 가지고 있는 대평 마을의 포구는 고려시대 원나라가 제주를 말 목장으로 강점하던 시기에는 말을 실어 나르는 포구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포구의 우측의 "난드르로"를 따라서 올레길 9코스를 시작한다.

 

대평 포구를 지나서 "난드르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길은 끝나고 올레길이 시작된다. 이전에는 박수기정 절벽을 따라 박수기정 잔디밭으로 가는 경로였으나 사유지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몰질" 말길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대평 포구가 고려 시대 원으로 말을 가져가기 위한 포구라고 했으니 제주 서부 산간 지역에서 키우던 말들을 포구로 몰고 내려가던 길인 것이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길을 걸으며 당나귀와 함께 했던 추억이 떠오르는 길이다. 무거운 짐을 메고 계단을 묵묵히 올라가는 당나귀 일행을 만나면 길 한쪽으로 비켜서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힘든 일을 하고 당나귀가 받는 보상은 노란 옥수수 알갱이가 고작이었지만 짐을 내려놓고 내려가는 길에서는 등에 나귀를 모는 소년을 싣고 내려가기도 했다.

 

땀과 함께하는 더위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오후의 강렬한 태양을 숲길을 지나며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박수기정의 높이가 1백여 미터이니 급한 경사를 조금 오르다 보면 절벽 위에 오르게 된다. 작은 숲 터널에서 들리는 소리는 허리에 찬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나지막한 노랫소리, 자갈 바닥을 내딛는 발자국 소리, 거친 숨소리뿐이다.

 

중간 언덕에서 바라본 대평 포구와 대평 마을의 풍경이다. 대평 포구 근처로는 카페와 펜션들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한 모습이다. 2020년 통계를 보면 서귀포시의 주택 중에 17%가 외지인이라고 한다. 다주택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그만큼 무주택자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 제주도라는 것도 씁쓸한 현실이다.

 

대평포구부터는 안덕면 대평리(창천리)에서 감산리로 넘어왔다. 대평리가 이름이 더 알려져서 헷갈릴 수 있는데 대평리는 법정리는 아니고 행정리로만 존재한다. 길이 평탄해지기 시작한 것이 박수기정 위로 올라온 모양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대평리(창천리)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이 지점에서 박수기정 절벽 위를 걷는 옛길과 갈라진다. 박수기정 위를 걷는 아쉬움은 가슴에 묻고 산봉우리를 향해서 걷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장 최근의 9코스 산봉우리인 군산으로 갈지, 직전 올레 9코스의 산봉우리였던 월라봉으로 갈지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정권을 가진 옆지기 님께서 일단 가보고 결정하신다는 말씀에 그저 조마조마할 뿐이다.

 

농경지 사이를 지나 감산리 마을길을 찾아 이동한다. 농로 사이에 우뚝 선 나무는 나무 몸통을 휘감은 덩굴 덕분의 원시의 분위기마저 풍긴다.

 

대평 포구에서 바라본 박수 기정은 깎아지른 절벽의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막상 절벽 위로 올라서면 상상과 다르게 대부분 농지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사유지가 많다 보니 처음에는 박수기정 위를 걸어 월라봉으로 갔다가 다음에는 박수기정위의 길을 포기하고 마을길을 통해 월라봉으로 갔는데 이제는 월라봉도 생략하고 군산으로 향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비포장 농로를 지나 "한밭로"라는 포장도로에 이르면 지금의 올레길은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이동하도록 표지판도 올레 리본도 잘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군산이 아니라 월라봉으로 가려면 우리는 이 지점에서 좌회전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올레 표식을 따라 우회전하여 이동했다. 지금의 올레 9코스로 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아니지만 시간과 체력을 감안하여 월라봉으로 경로를 바꿀 것이라면 갔던 길을 다시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완만한 오르막의 한밭로를 걷다 보니 9코스의 종점인 화순항과 산방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도착했다. 대흥사라는 사찰 위쪽이었다. 때마침 나무 그늘도 있고 바람도 불어서 잠시 쉬어가며 위치도 확인하고 이후 이동 경로도 결정하기로 했다. 오후 3시 30분을 바라보는 시각,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지만 해는 이미 동쪽으로 지고 있었다. 이미 올레 8코스를 걸은 상태라 힘들어하는 옆지기는 최단 코스인 월라봉으로 가자고 결정을 내린다. 문제는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를 확인하니 갈라지는 부분으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 상태였다. 지도 앱으로는 사찰에서 월라봉으로 가는 길이 있어서 한 걸음이라고 아끼고 싶은 욕심에 절로 내려가 길을 찾아보았으나 힘만 축낸 헛수고였다. 힘들어하는 옆지기의 눈치를 살살보며 오던 길을 조심스럽게 돌아가야 하는 신세였다. ㅠㅠ

 

다행히 힘들게 올라왔던 한밭로 오르막길을 천천히 내려가서 포장된 한밭로 길을 지나 비포장 도로를 조금 걸으니 우측에서 이전 올레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올레길 화살표도 없고 리본도 없는 길이었지만 수많은 올레꾼들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길은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길도 한두 해가 지나면 풀이 무성해져서 아무리 지도 앱이 있어도 길을 찾기가 어려울 테지만 아직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고 밟힌 풀의 모습을 보니 오늘도 사람이 지나간 모양이었다. 포털도 많은 걷기 안내 정보에서도 여전히 이곳을 올레길 9코스로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력과 시간만 괜찮았다면 군산으로 향하는 지금의 올레길도 좋았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월라봉 오르기를 시작한다. 올레길 리본은 없지만 아직은 길이 보존되어 있는 상태라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월라봉을 오르는 길은 계곡 아래로 화순 해변과 산방산을 등지고 걷는 길이다.

 

200미터의 월라봉은 산 반대쪽에서 오르는 길은 진지 동굴을 비롯해서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지만 이쪽에서는 얼마 후에는 등산로 입구도 찾기 어려울 듯 보인다. 올레길이 지날 때는 올레 표식과 리본이 길을 안내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의 회복 과정이라 보면 될는지 모르겠다.

 

방목하는 가축들이 지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은 출입구와 데크길을 지난다. 이제는 아스라이 사라진 옛 올레길의 흔적이다.

 

잠시 돌아서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데 순간 날아가는 매미 한 마리가 사진 속에 잡혔다. 이번 여행에서는 유난히 매미 소리가 강하게 귀청을 때렸던 여행이었다. 제주에서 고막이 얼얼 거릴 정도의 매미 소리를 들으며 걸었던 것도 추억이 될 듯하다. 멀리 우리가 길을 돌아 지나왔던 박수기정 위의 농지도 보인다.

 

길은 조금 험하지만 이 정도는 걸어야 산을 오르는 것 아닌가? 하는 호기스러운 말을 내뱉을 만큼 아기자기한 산길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2백 미터가 넘지 않는다는 생각이 덜 힘들게 했을는지도 모른다.

 

저질 체력의 한쌍이 쉬어갈 자리를 고르기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수많은 세월을 지내왔을 아름다운 등산로를 이제는 올레길에서 만날 수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훌륭한 산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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