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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호박 넝쿨만큼 그 생명력을 견줄 식물이 또 있을까? 늦가을이나 이른 봄 똥거름이라도 한 바가지 묻어놓은 곳이라면 넝쿨은 가지마다 손을 뻗어내느라 제정신이 아닐겁니다. 주인은 호박을 심었는지 버렸는지 잊어버릴 쯤 되어 작대기 하나 들고 호박 덩쿨을 헤집다 보면 엉겁결에 발견하는 호박덩이는 먹지않아도 이미 포만감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농촌에 내려야 빼먹지 않고 심은 작물이 호박인데 두종류를 심어 왔습니다. 하나는 단호박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호박입니다. 두가지 호박을 같은 시기에 심어도 단호박은 조선 호박보다는 수확시기가 빨라서 이모작이 가능할까 하고 몇번 시도해 보았는데 아직 성공은 하지 못했습니다. 조선 호박은 애호박 시절에는 3~4일만 지나도 크기가 엄청 커지고 속에는 씨도 생기기 때문에 적당한 크기가 되면 아침 마다 산책겸 한바퀴 돌아 아내에게 반찬거리로 상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박 썰기로 새우젓 넣고 볶아 먹어도 좋고 된장찌개에 얼큰한 청양고추와 함께 끓여내면 계절 음식으로 그만이죠. 늦 가을 서리 내리기 전에 늙은 호박을 수확할 때면 숨겨놓은 보물을 찾는 것과 같은 신나는 기분이 듭니다. 껍질을 살짝 벗겨 사과 껍질 깍듯 길게 잘라서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으로 말리면 어른신들은 떡에 넣어 별미로 드시거나 오가리로 찌개나 조림에 넣어 드시기도 하지만 말린채로 씹으면 달짝찌근 한것이 독특한 풍미가 있습니다.
작년에 수확한 늙은 호박은 씨를 긁어내고 솥단지에 푹 쪄서 즙을 내어 일부분은 선물하고 나머지는 아이들과 함께 마셨는데 이 또한 괜찮은 호박 활용법이었습니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호박즙은 밀봉하더라도 금방 발효되기 때문에 밀봉한 것이 터질거나 맛이 시어버릴 수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아무튼 호박 넝쿨이 창궐할 여름이 기대가 되면서도 올해도 어렵지 않게 여름을 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단호박, 조선 호박과 함께 맷돌 호박을 심었습니다. 맷돌 호박이 약효가 좋다는 풍문이 있었는지 씨앗이 의외로 고가였는데 장모님께서 선물로 주신 씨앗 덕분에 올해는 둥글 납작한 맷돌 호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런데, 호박은 심으면 싹도 잘나고 키우기도 어렵지 않은 작물인데 올해는 의외로 싹이 잘 트지 않았습니다.
싹이 잘 터서 떡잎이 튼실한 것도 있지만 떡잎 조차 볼수 없는 것도 상당수가 되었습니다. 포트에 넣은 상토가 문제인지 아니면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주었는데 갑자기 올라간 기온 탓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다음 부터는 여유 있게 모종을 준비해야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작은 잎을 가진 호박이라도 몇주만 지나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그야말로 창궐하는 수준으로 넝쿨을 뻣어갈 것입니다. 창궐하는 호박 넝쿨도 떡잎으로 시작한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격언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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