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1차 여행기 - 국립대만박물관
1차 대만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대만 여행을 준비하며 비가 많이 온다는 이야기에 우산도 준비하고 판초 우의도 가져왔지만 한 번도 사용한 일이었을 정도로 여행 내내 화창한 날이 이어졌다. 대만 여행 마지막 날인 오늘도 화창한 날씨에 마음이 상쾌하다. 오늘 조식은 숙소에서 첫 일정인 국립대만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노채수전포(老蔡水煎包 漢口店)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멀리 국립대만박물관도 보이고 일요일 아침인데도 가게 앞은 만두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만두 세 종류를 두 개씩 시키고 밀크 티 두 개를 시켜서 160 NTD를 지불했다. 매장 안에서 먹어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방식이 특이했다. 위에는 촉촉한 찐만두 모양인데 만두 바닥은 오븐이나 화덕에 구워낸 모양새다. 매장 내에서 먹는 것이지만 별다른 도구 없이 그냥 비닐봉지를 도구 삼아 붙잡고 먹었다.
포근포근한 만두피와 촉촉한 육즙이 풍부한 고기만두도 좋았지만, 부추가 풍성하게 들어간 만두, 양배추가 주재료이었던 만두도 훌륭했다.
조식을 끝낸 우리는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 국립대만박물관(國立臺灣博物館)으로 향한다.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있는 황소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나라의 누렁이 황소처럼 대만의 전통 황소도 귀중한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2024년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을 꺾고 우승한 것이 엄청난 뉴스였는지 박물관 앞에 대만 영웅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박물관 개장 시간이 조금 남아 있어서 박물관 주위를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열녀문과 같은 성격의 황씨절효방(黃氏節孝坊)이다. 19세기 청나라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28세에 남편을 잃은 황이냥이란 분이 아이들을 데리고 대만으로 넘어와 시아버지를 봉양하며 살았다고 한다. 물론 이 가문이 타이베이 시내에 상당한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은 유적이다. 다른 하나는 행단(杏壇)이라 새겨진 공자상이다. 공자가 은행나무로 만든 단에 앉아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행단의 유래가 있지만 대만에 있는 뿌리 깊은 유교 문화를 인식할 수 있을 뿐 주변에 은행나무는 없다.
대만 최초의 기관차인 증기 기관차 전시관을 돌아 박물관 뒤편으로 가면 대만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을 기리는 정자를 만날 수 있다.
정자의 주인공은 명청 교체기에 있었던 정성공(鄭成功)이라는 인물이다. 중국인 무역상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성공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자 명 부흥 운동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대만으로 시선을 돌려 당시에 대만을 점령하고 있던 네덜란드를 축출했다고 한다. 이후에 갑자기 그가 죽음으로 긴 역사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청에서는 그를 예우했다고 한다. 이것이 대만이 중국 역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계기라고 한다. 야자수를 조경수로 두고 있는 박물관의 모습이 이채롭다.
공원 안내도를 보면 공원 이름이 2.28 평화 공원이라 되어 있는데, 장제스가 통치하던 시절, 이곳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서려 있는 곳이다. 제주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제주 4.3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다. 돌이켜 보면 장제스는 2.28 말고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와 같은 짓도 했는지 묻고 싶다. 물론 2.28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접하면 사람이 이렇게 잔혹할 수 있는가? 말을 잃을 정도 이기는 하다.
한국에서 구입한 박물관 입장 바우처로 티켓을 받으려고 하니 바우처가 이곳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아뿔싸! 알고 보니 대만 남부 도시인 타이난에 국립 대만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의 바우처를 끊은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1인당 30 NTD를 지불하고 티켓을 구입했다. 입장권을 보며 대만은 원색 계열의 색상을 좋아하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파브르 곤충기처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중에 하나는 곤충이다. 특히나 머슴아를 둔 어머니들은 곤충을 서슴없이 만지는 아들을 보면 기겁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신나는 그런 대상일 뿐이다. 박물관은 이솝우화 "여우와 매미"를 통해서 우리를 곤충의 세계로 안내한다. "여우와 매미" 이야기는 여우가 매미를 잡아먹기 위해서 여러 가지 꾀를 내지만 눈치를 챈 매미가 나뭇잎을 던져주고 그걸 먹다가 뱉어버린 여우가 매미에게 따지자 매미는 "난 전에 네 똥 속에서 매미의 날개를 본 적이 있어"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다. 이곳의 매력은 매미처럼 소리를 내는 곤충의 세계로 관람객을 이끈다는 것이다.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이 세계에 빠져들면 나름의 재미가 있다.
다양한 곤충 보관 도구를 보면 떠오른 것은 애니메이션 뮬란이었다. 주인공 뮬란의 할머니가 키우던 귀뚜라미 바로 그것이다. 와우!
무엇보다 재미있던 것은 소리를 내는 곤충들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뚜껑을 열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는 동심을 잃어버린 필자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곤충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잠시 동심에 빠져 있었던 공간을 나와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국립 대만 박물관은 19세기 일제 강점기 당시에 대만 총독부의 상품 전시관으로 처음 건립되었다고 한다.
대만의 생태와 환경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섬나라이니 만큼 바다 환경과 친숙한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대만 하면 타이완섬 본섬만 생각하지만 대만은 16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이 섬들에 2,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으니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국기를 통해 대만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지배 역사이다. 고대에도 나름의 부족 국가가 있었지만 서구 열강에 침탈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세계사에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현재의 시각이다. 첫 시작은 포르투갈이 "포르모사, Formosa"라는 이름을 알리면서 시작되었고 본격적인 침탈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스페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후로 정성공이 대만의 일부를 통치했고, 이후로는 청나라가 대만을 복속시켰지만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일본은 물러났지만 본토에 있었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들어오면서 중화민국이 생기게 된 것이다. 아주 잠시 존재했던 포모사 공화국의 국기는 황호기라 불린다고 한다.
반공을 강렬하게 새긴 현재의 대만 국기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의 심벌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 국기는 시대적 배경이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중국인 포로 중에 자유를 위해 망명한 사람들의 이름으로 글씨를 새긴 것인데 당시에 이들을 "반공 영웅"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특히 한국에서......
현재의 세계사는 소위 대항해시대 전후로 나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대륙도 이곳 대만도 서구 열강의 침탈 이후로 시류의 흐름에 엄청난 요동을 겪은 듯이 보인다. 이곳도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고 살았지만 원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서구 침탈과 청의 개입부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고산족이라 불리게 되었고, 중화민국 건국 이후에는 2.28처럼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말았다.
짧은 애니메이션을 틀어주는 작은 영화관도 있었다.
20세기 초 이곳에 살던 파이완족의 모습이라고 한다.
박물관 지하로 내려가면 층고가 낮아서 키가 큰 사람들은 불편하겠지만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꼼꼼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볼 수 있는 움직이는 그림을 이곳에서는 곳곳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마련해 놓았다. 희귀한 장치이니 동영상으로 하나 남겨 놓는다.
1층으로 올라와서 박물관 돔을 보는 것을 끝으로 박물관을 나선다.
박물관을 나온 우리는 박물관 뒤를 돌아서 2.28 공원을 걷는다. 박물관 앞에 대만 묵옥의 원석이라며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옥 상품으로 다듬어 놓지 않고 그냥 덩그러니 있으니 그 누가 이것이 귀중한 옥의 원석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우처를 잘못 구입해서 티켓을 현금으로 구입했다는 것만 생각했지, 어디에 위치한 박물관 티켓을 구입한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이 구글 검색하니 바우처와 동일한 이름의 박물관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이다. 국립 역사박물관은 타이베이에도 있고 타이난에도 있었는데 필자가 구입한 것은 타이난에 위치한 것이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상황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박물관 앞에는 12월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노란 꽃이 존재감을 뽐낸다. 12월인데......
아들이 국립역사박물관을 찾았다고 해서 그곳으로 가는 길 연못은 자라 세상이다. 그런데 자라를 보면 왜 한 번도 먹어 보지도 못한 용봉탕을 떠올리는지, 이 의식의 흐름은 어디에서 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