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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발리푸람 2 - 인도 첸나이 여행기 36

야라바 2020. 4. 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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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고푸람인 로야 고푸람(Roya gopuram, Rayar gopuram)을 지나 산등성이 따라 여정을 이어간다.

 

바라하 동굴 사원(Varaha Cave Temple)에 도착했다. 여기도 바위를 깎아 만든 사원으로 마하발리푸람에서 유일하게 아침, 저녁으로 의식이 열리는 장소라고 한다. 발랄한 인도 학생들이 사원을 가득 채웠다. 어릴 적 소풍이라고는 서울 주변의 왕릉을 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곳 아이들도 비슷한가 보다. 7세기 발라바 왕조에 의해 세워졌다.

 

바라하(Varaha)는 비슈누(Vishnu)의 10가지 화신(아바타) 중의 하나로 부조와 같이 멧돼지 머리를 하고 있는 신이다. 뱀의 모양을 하고 있는 악신 나가(Naga)에게서 아내를 구하는 장면이다.

 

여신 두르가(Durga)와 비슈누의 아내 락슈미(Lakshmi)의 모습.

 

진지하게 사진을 찍고 있는 꼬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천장의 섬세한 조각도 이목을 주목시킨다.

 

사원 입구에는 두명의 문지기가 사원을 지키고 있다.

 

바라하 동굴 사원(Varaha Cave Temple)을 지나 언덕을 내려오면 가네샤 라타(Ganesha Ratha)를 만나게 된다. 라타(Ratha)는 힌두교의 신들이 타는 마차 모양의 사원을 말하는데 가네샤 라타는 마하발리푸람 지역에 있는 10개의 라타 중에 하나라고 한다. 커다란 화강암 바위 하나를 깎아서 만든 것으로 7세기경에 제작된 것이다.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를 기리는 사원으로 가네샤는 시바의 아들로 지혜의 신이자 채식주의의 신이라 한다.

 

가네샤 라타를 지나고 있는데 라타 앞에서 많은 아이들이 몰려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힌두 승려가 아이들 입에 음식을 한입씩 넣어 주고 있었지만 몰려든 아이들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언덕을 내려와 평지에 이르면 유적지의 북쪽 출입문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 마하발리푸람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크리슈나의 버터볼(Krishna's Butterball)을 만날 수 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가면서 미끄럼을 타서 그런지 바위가 반들반들하니 자연 미끄럼틀이 되었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흔들 바위처럼 바위 경사면에서 앉아서 오랜 세월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바위로 폭이 5미터, 높이는 6미터에 이르며 무게는 250톤에 이른다고 한다.

 

버터 볼이 있는 장소는 해돋이와 해넘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우리는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었다.

 

석양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남서쪽을 바라보며 붉게 지는 해를 보느라 여념이 없고 토요일 오후를 맞이해서 친구와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사람들은 인증숏을 찍으며 그들만의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 있다.

 

뒤에서 보면 바위가 마치 버터 덩어리를 자른 듯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크리슈나(Krishna)는 비슈누의 화신중의 하나로 버터를 좋아해서 어머니 몰래 버터를 훔쳐 먹었다고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배경으로 버터 볼이라 불린다고 한다.

 

석양을 배경으로 인증숏을 남기고 있는 현지인 커플의 모습이 아름답다.

 

버터볼에서 환상적인 석양 감상을 끝낸 우리는 북쪽 출입문을 나와서 길을 따라 내려가며 "갠지스강의 하강, Descent of the Ganges"이라는 작품을 감상한다.

 

폭 29미커, 높이 13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으로 두 덩이의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7세기경 팔라바 왕조에 의해서 제작된 작품으로 하늘에 있던 갠지스강이 시바신의 몸을 타고 땅으로 내려온 사건을 묘사한 것이다. 4대 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갠지스강은 히말라야에서 발원하여 인도 북부를 동쪽으로 흐르다가 벵골만으로 흘러드는 약 2,600Km의 강으로 힌두교 신자들에게 영험한 강으로 믿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강에서 목욕하는 것으로 영혼을 정화시킨다고 하지만 오염 때문에 이 강에서 목욕하는 상당수가 피부병이나 풍토병에 걸린다고 한다. 2007년에는 심한 오염에 상류에 건설된 댐 때문에 그 오염이 극심해지자 힌두 승려들이 집단으로 자살하겠다는 협박을 했고 댐의 방류량을 늘려야 했다는 사건도 있었다. 

 

길 바로 옆으로는 스리 스탈라 사야나 페루말(Sri Sthala Sayana Perumal) 사원이 있었다. 다시 보아도 힌두 사원의 담벼락은 참 높다.

 

갠지스강의 하강(Descent of the Ganges) 바로 옆으로는 크리슈나 만다파(Krishna Mandapa)가 있는데 이곳은 바위를 파내서 만든 만다파는 아니라고 한다. 7세기경에는 지붕없이 바로 옆의 갠지스강의 하강처럼 바위에 크리슈나와 관련된 조각만 있었지만 16세기에 비자야나가르 제국에 의해서 만다파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다파 안쪽으로는 작은 동굴이 있었다. 석회암 같은 무른 돌도 아니고 단단한 화강암을 정과 망치로 조금씩 깨서 이런 동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단순 노동보다는 종교의 행위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16세기에 덧 붙여진 만다파 공간은 기둥이며 지붕이 앞서 만났던 다른 만다파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역시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과 다른 곳의 석재를 가져다 세우고 얹어 놓은 것과는 차이가 크다. 

 

크리슈나는 목동의 신이기도 한데 신화에서는 치즈와 우유같은 유제품을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한다. 우유 짜는 여자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크리스냐를 표현하고 있는 조각이다.

 

크리슈나가 고바르드한 언덕(Govardhan Hill)을 손가락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조각. 고바르드한은 크리슈나가 어릴 적 살았던 곳인데 인드라가 화가 나서 내린 비로 홍수가 나자 크리슈나가 고바르드한 언덕 전체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는 신화를 묘사한 것이다.

 

구석의 모서리까지 세밀한 조각을 남겼다.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이 흘렀고 많은 관람객에게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개방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단단한 화강암을 작품의 재료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공들은 힘도 많이 들고 작업 진척도 더뎠을 것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인해 혜택을 후손이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리고 결과를 빨리 볼 수 없더라도 원칙대로 묵묵히 밀고 나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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