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막쉬 암만 사원 - 인도 첸나이 여행기 32
인도 첸나이 여행 중에서 앞선 이틀은 첸나이 시내를 중심으로 박물관이나 유적지, 해변을 다녔다면 오늘은 숙소가 위치해 있는 칸치푸람 시의 힌두 사원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카막쉬 암만 사원(Kamakshi Amman Temple)으로 향한다.
카막쉬 암만 사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칸치푸람 기차역의 모습이다. 여기서 기차를 타면 동부 칸치푸람 역을 거쳐서 첸나이로 올라가는데 중간에 성 도마산 역과 우리가 잠시 다녀왔던 첸나이 에그모어 역을 거쳐서 종착지인 첸나이 비치 역까지 2시간 40분이나 걸린다고 한다.
칸치푸람은 칸치(Kanchi)라고도 하는데 사원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오래된 많은 사원을 가지고 있으며 위치는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72Km정도 떨어져 있다. 역사는 3세기 팔라바 왕조(Pallavas)로 거슬러 올라가고 이후 촐라 왕조, 비자야나가르 제국 등이 이곳을 지배했다고 한다. 그 칸치푸람에서 대표적인 사원 세 가지를 다녀오는 여정이다.
일단 사원에 도착했는데 높다란 담벼락은 내부를 도저히 볼 수 없는 마치 왕궁과 같은 모습이었고 피라미드 모양의 탑이 세워진 장소에 입구가 있기는 한데 동서남북 입구중에 한쪽만 열어 두었기 때문에 열린 입구를 찾느라 사원 주위로 한 바퀴 돌아야 했다.
힌두 사원들은 통상 정사각형 형태로 동서남북으로 높은 탑문을 만드는데 이를 고푸람(Gopuram) 또는 고푸라(Gopura) 라고 한다. 화려한 조각들을 한층 한층 쌓아 올린 모양이 마치 피라미드처럼 보인다.
사원 입구는 시장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때마침 힌두 승려, 인형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된 행진이 있었다. 통상 힌두 축제가 열리면 악마 인형을 태우는 등의 퍼포먼스가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입구에는 소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입구 앞에서 고푸람을 바라보니 그 규모가 더 엄청나 보인다. 같은듯 다른 수많은 힌두신들을 조각해 놓았다. 대부분의 힌두 사원들은 맨발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사원에는 사원 좌측에 무료로 신발을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이곳에 신발을 맡기고 현지인들처럼 맨발로 들어갔다. 양말을 신기는 했지만 맨발로 돌바닥을 밟는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사원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사원에 들어가자마자 현지인들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았다. 가족과 함께 사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먼 곳에서 온 이방인들이 반갑고 신기했나 보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지만 해맑게 같이 사진을 찍자는 그들의 눈빛이 싫지만은 않았다. 입구에서는 가족 단위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입구에서 이곳 사람들의 격한 환영을 받은 우리는 사원을 한바퀴 돌기 위해서 걸음을 떼기 시작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어린 남자아이가 우리에게 달려와서는 그렇게 걸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하며 당황했는데 아이의 손짓과 그 아이를 보낸 부모의 손짓을 보니 우리가 가던 반대 방향 즉, 시계 방향으로 걸으란 이야기였다. 우리는 처음 들어온 힌두 사원을 돌아보느라 걷는 것이지만 이곳 사람들이 힌두 사원을 시계 방향으로 걷는 것은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원 방문을 끝내고 나왔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원을 향하고 있었다. 사원을 나오면서 만나는 현지인들 중에는 삭발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머리를 깎는 것에 얽힌 이야기가 있었다. 힌두 신자들은 사원에 가서 머리카락을 잘라서 신에 바치는 행위가 자신을 드린것과 같다고 여기거나, 감사의 의미로 머리카락을 잘라서 바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머리카락을 바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큰 사원들은 머리를 전문적으로 깎는 사람들을 두고 줄을 서서 머리카락을 바치는 사람들을 소화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팔아 상당한 수입을 올린다고 하니 우리네 어머니들이 힘든 살림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사연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아무튼 사원을 나와서 동쪽 입구를 지나는데 입구 장식이 독특했다. 바나나 나무를 통째로 잘라서 기둥에 묶어 놓았고 입구 위에는 인도 국기를 연상시키는 천 장식을 해 놓았다.
측면의 고푸람은 정문의 고푸람 보다는 규모나 장식에 있어 조금 작은 느낌이다.
나귀가 끌고 가는 작은 짐수레를 보고 있자니 삶의 애환이 잔잔히 느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