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오미-송정 간의 지리산 둘레길 17코스 끝자락에 와서 둘레길을 완주할 것인가? 아니면 석주관과 칠의사묘를 들러서 갈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을 방문하고는 싶은데 체력과 시간, 기차 예매 시간등을 감안하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미부터 같은 코스로 함께 왔던 지리산 둘레길과 백의종군로, 조선수군재건로가 갈라지는 곳에 도달했습니다. 둘레길을 마저 걸으면(2.9Km) 약간의 산행을 거쳐 산 하나만 넘으면 송정에 도착하고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재건로는 산아래로 내려가면 석주관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할 까 고민하다가 옆지기와 가위바위보 제가 이기면 둘레길, 옆지기가 이기면 석주관으로 가기로 했는데 옆지기가 이겨서 석주관으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둘레길에서 석주관으로 향하는 길은 지도에서 보듯이 계곡을 따라 쭉 내려가는 길로 듬성 듬성 계곡에 들어서 있는 사찰과 민가들을 지나서 갑니다. 주소로는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해당 합니다.

 

 

 

계곡에 자리잡은 민가들이 계곡 아래까지 듬성 듬성 쭉 이어집니다. 산길이 민가들 근처로 지나기 때문에 때로는 지나는 행인을 보고 짖는 개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므로 조용히 지나야 겠지요.

 

 

 

마을이 생긴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집 주위로 나무들의 크기가 엄청납니다.

 

 

 

 

이 길에서는 둘레길 표지는 볼 수 없습니다. 백의종군로의 석주관 표지를 보고 계속 걷습니다.

 

 

 

이제 산을 다 내려왔는지 19번 국도의 자동차소리도 들리고 멀리 한옥도 보입니다. 

 

 

 

 

구례 석주관성, 사적385호,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

고려말 왜구가 섬진강을 통해 전라도 내륙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석주관성을 쌓았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많은 의병들이 왜적의 전라도 진입을 막기 위해 싸우다 순절한 역사의 현장이다. 노고단에서 왕시루봉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맥에 위치한 석주관성(石柱關城)은 칠봉산 남쪽 봉우리 20m 아래에서부터 칠의각 주차장 후면까지 이어져 있다. 성벽의 전체 길이는 약 750m이며, 높이 1~1.5m, 폭은 1m 내외이다. 성축은 흙과 돌을 무질서하게 섞어 쌓은 토석혼축부와 돌로 쌓은 석축부로 이루어져 있다. 석주관성 왼편에는 당시 구례현감과 7명의 의병장이 모셔져 있는 칠의사묘(사적 106호)가 있다. 

예전부터 왜구가 어떻게 전라도 내륙까지 침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석주관성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 답은 바로 남해로 이어진 섬진강이었습니다. 

 

 

 

 

 

정유재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로 가는 관문이었던 석주관을 지키던 왕득인(王得仁)을 비롯한 7의사와 당시 구례 현감의 묘가 있는 사적 106호인 칠의사묘입니다. 

 

 

 

7의사묘 건너편에 있는 건물들은 7의사를 기리는 사당입니다. 성터 옆에 세워진 사당입니다. 계단을 통해 사당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칠의사는 7의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사당 옆으로 석주관성터로 가는 통로가 있습니다.

 

 

 

 

7의사가 순절하기 전에 이순신 장군도 당시 상황을 보고 받으셨군요. 장군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명량해전을 시작으로한 조선 수군의 재건이 없었더라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점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었겠지만 7의사의 순절 당시 명나라 군사들이 가까운 남원에 주둔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석주관을 거쳐서 송정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피아골에서 나오는 버스와 송정에서 나오는 버스로 구례 터미널까지 이동했다가 터미널에서 구례구로 이동하면 됩니다. 송정 정류장의 버스 시간표를 첨부합니다. 다음 둘레길 걷기는 피아골을 거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