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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비채에서 출간한 마리 사빈 로제(Marie-Sabine Roger)의 "바보 아저씨 제르맹, La Tête en friche"를 택한것은 파리 걷기 여행을 준비하던 올해초였습니다. 서점의 프랑스 문학 코너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끝에 고른 책이었는데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책에 빠져들듯한 몰입도를 가져다 주는 책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작가의 뛰어남과 더불어 불어의 언어적 특성을 놓치지 않고 그 분위기를 잘 살려주신 옮긴이 이현희 님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2010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리 걷기 여행중에 쉼을 주었던 작은 공원들을 만날때 마다 주인공 제르맹과 마르게리트가 비둘기의 마리수를 세고 책읽기 시간을 가졌던 공원이 떠올라서 그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여행 후에 책을 읽을 때는 파리의 작은 공원을 떠올리면서 몰입하며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1유로짜리 바게트를 들고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고 노숙자에게는 지친 심신을 쉴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40대의 제르맹과 80대의 마르게리트에게는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진정한 삶의 관계를 나누는 장소 였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나이 어린 독자에게는 조금 부담이 될수도 있겠다 싶은 수준의 분위기가 있기는 합니다. 등장 인물이 40대 중반의 제르맹과 나이든 그의 친구들, 제르맹의 어머니, 그리고 80대의 마르게리트이니 이들의 일상 생활을 가감없이 표현하다 보면 당연히 성인 수준의 장면들이 나올수 밖에 없겠죠. 그렇다고 무슨 성인 연애 소설의 묘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중년의 자연스러운 삶이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판 책 제목이 "바보 아저씨 제르맹"이라고는 했지만 제르맹은 "바보"라기 보다는 일상에 치어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중년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힘든 밥벌이와 친구들과의 유흥, 가족과 갈등들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인생. 한국의 중년도 제르맹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기본 교육 덕택에 문맹이 아닐뿐, 텍스트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은 또다른 문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쳇바퀴 같은 중년의 삶에 금을 낸 것은 80대의 외로운 할머니 마르게리트였습니다. 그녀는 까뮈의 "페스트"를 제르맹에게 읽어 주었고 사전을 선물 했으며 제르맹과 대화 가운데 인디언을 공감대로 칠레의 소설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을 읽어 주었습니다. 일방적인 교육의 의도도 아니었고 이 둘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관계 속에 이루어진, 책을 매개로한 이 두 주인공의 시간들은 필자가 제르맹이 된것처럼 마르게리트가 제르맹에 읽어준 책들을 서점에서 구입하게 했습니다. 


알파벳도 익숙치 않던 제르맹이 도서관에서 처음 빌린책 쥘 쉬페르비엘의 "난바다의 아이"를 마르게리트에 읽어주던 장면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참 의미를 가진 사람과의 관계 만큼 사람을 신나게 하는 것이 또 있을 까요? 성과 나이, 환경을 뛰어 넘어 마음을 열고 사람을 대하자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내 옆에 있는 가족과 먼저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보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책을 매개로 삼는 지혜를 가져보자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정말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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