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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도 피가 많이 설치는 한해였다. 늦봄 논 전체를 샅샅이 뒤져가며 그리 피 뽑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이 시기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피가 한창이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모내기한 논에 탈곡을 끝낸 밀 줄기와 보리 줄기를 잘라서 뿌려주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피가 거의 없었는데 올해는 밀농사 실패로 줄기도 뿌려주지 못하고 모내기 이후 벼가 자리를 잡지 못하는것 같아 물을 몇일 빼주었더니 피가 제 세상을 만난던것 같습니다. 

피사리는 곡식 가운데 함께 자라고 있는 피를 뽑아내는 작업을 의미하는데 이번에 한 작업은 피사리이기 보다는 "피 수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네요. 피가 열매를 맺지 않은 상태라면 뽑아서 둘둘말아 논바닥에 묻으면 그만인데 열매도 나왔고 밀 농사를 위해서 논 말리기를 하고 있는 상태라 열매만 마늘쫑 뽑듯이 "뽁뽁" 뽑거나 전지 가위로 목을 댕강댕강 쳐냈습니다. 물론 씨앗이 논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했고요.


조금 익은 피들은 살짝만 만져도 후두둑 떨어지기 때문에 조심스레 잘라서 모았습니다. 자른 피를 말려보니 피도 중요한 잡곡이라는 것이 헛말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하긴 농업기술원에서 수확량이 좋은 식용 피를 공급해서 어떤 분은 벼 대신 피를 심어서 짭잘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도 듣기는 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피가 비타민 B1, 칼슘, 인, 철분, 식이섬유등이 풍부하다고 합니다. "피죽도 못 얻어먹는 ..."이라는 말이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피가 잘 마르면 과연 피죽이나 끓여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피죽을 끓여 먹는 날이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피와의 온전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 기장, 수수, 메밀, 율무와 함께 기본 잡곡으로 불려지는 식물 "피"와의 설레는 첫 식사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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