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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를 지나서 순천에 들어선 백의종군길은 황전천을 따라 괴목삼거리까지 내려왔는데 괴목리를 벗어나 이후로는 계월천을 따라 송치재를 넘는다. 백의종군길과 함께 남쪽으로 향하던 전라선 철도는 괴목역 이후로 학구역까지 병풍산을 관통하는 5.6Km에 이르는 터널을 지난다. 백의종군길은 남쪽으로 내려가며 17번 국도 순천로를 거치기도 하는데 국도는 송치터널을 지나서 가고 백의종군길은 송치재를 넘는 옛길을 거쳐서 송치재휴게소 인근에서 터널을 빠져나온 국도와 다시 만난다.

 

지난번 여행에서 괴목삼거리까지 걷고 33번 버스로 구례구역으로 이동하여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동일한 방법으로 구례구역까지는 KTX로 이동하고 역 앞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괴목삼거리로 이동하여 여정을 시작했다. 버스는 순천시에서 공지한 버스 시간표 대로 정확하게 역 앞에 도착했다. 지난 여행이 2026년 가장 더운 날씨였으니 이번 여행은 조금 낫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지만 올여름의 더위는 식을 줄을 모른다.

 

길은 괴목 구나무장 시장을 지나서 황전면 읍내를 가로질러 간다. 괴목의 괴(槐)는 회화나무나 느티나무를 뜻하는데 옛날에 이곳에 있었던 느티나무 아홉 그루 덕분에 홍수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괴목 구나무는 느티나무 아홉 그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4일, 9일 오일장이다.

 

읍내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했는데 껍질까지 있는 뒷다리 살을 듬성듬성 썰어 넣은 나름 특이한 김치찌개였다. 지역 여행을 하면서 이런저런 식당에서 식사를 해보지만 뻔할 것 같은 김치찌개가 나름 주인장의 개성이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식사를 하면서 동네 분이 커피를 마시러 식당에 방문하여 주인장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순천시가 각 지역으로 내려보내는 예산이 적은 돈이 아닌데 그 돈으로 마을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그분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종의 뒷담화이었는데, 선진국답게 각 지역으로 내려오는 풍부한 예산이 주민들의 합심으로 잘 활용되기를 바라본다.

 

황전천으로 합류하는 월용천을 건너는 괴목교를 통해 읍내를 빠져나간다. 이따금씩 구름이 해를 가리면 좋기도 하지만 양산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기가 점점 귀찮아진다.

 

황전면사무소를 들어가는 입구부터 월전 중학교 인근까지는 "황전 백의종군 맨 발길"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산책로를 조성해 놓았다. 빨간 백의종군길 리본만 만나도 반가운데 이순신 백의종군길을 제대로 알리고 있어서 참으로 반가운 길이었다.

 

길지 않은 황전 백의종군 맨 발길을 벗어나 마을길로 들어서니 깃털유홍초라고도 부르는 덩굴 식물인 새깃유홍초가 작지만 아주 매력적인 붉은색 꽃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골목길 담벼락을 넘은 능소화는 긴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과도 같다. 능소화가 만개하는 8월 여름은 능소화의 계절이다.

 

분꽃도 골목 정원 풍경의 한몫을 담당한다.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속에 분 같은 하얀 가루가 나온다고 분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릴 적, 지금처럼 외래 식물이 많이 없을 때는 우리의 정원을 담당했던 추억의 꽃이다. 달맞이꽃처럼 분꽃도 해 질 녘이나 밤에 꽃잎을 여는 야행성의 꽃이다.

 

길은 17번 국도 순천로를 따라서 지금은 폐역인 괴목역 앞을 지난다. 남쪽으로 향하는 전라선 철도는 이곳 괴목역을 지나면 병풍산을 관통하는 5.6Km의 터널로 진입한다.

 

잠시 국도변으로 나왔던 길은 다시 괴목리 골목길을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골목길까지 백의종군길 표식이 제대로 되어 있어 좋다.

 

괴목리 골목길을 나온 길은 본격적으로 17번 국도 순천로를 따라 걷는 여정을 시작한다. 국도변이기는 하지만 갓길이 넓어서 걷기에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백야교로 황전천을 건널 무렵에는 까치봉 자락과 맞닿아 있는 맑은 물에서 한바탕 물놀이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지나간다.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명품 복숭아 월등면의 광고판을 보니 구례구역 인근부터 함께 해온 황전면 길도 끝자락을 향해 가는 모양이다. 월등 복숭아는 일조량이 풍부한 고지대에서 키워 과즙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다고 한다. 올여름은 임실, 전주, 순천까지 백의종군길을 걸으며 복숭아와 인연이 깊은 특별한 해이다.

 

국도변을 따라 걷는 길은 황전면에서 월등면 계월리로 들어선다. 송치재가 계월리의 경계를 이룬다.

 

고도를 조금씩 올리고 있는 백의종군길은 계월리의 경계인 송치재까지 고도를 쭉 올려가다가 고개를 넘으면 종점까지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길은 송치마을 쪽으로 들어가서 굴다리로 국도 아래를 통과하여 송치길을 걷기 시작한다. 송치재 고개를 넘는 옛 국도 길이다. 지금의 국도가 지나는 터널이 없을 때는 이 길이 순천시 서면과 월등면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새로운 국도가 생기니 옛 국도는 우리와 같은 뚜벅이들이 편안하고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송치재를 향하는 송치길 아래로는 17번 국도 순천로가 지나는 송치터널 표지판이 등장했다. 

 

국도변을 걸을 때는 들리는 것은 자동차 소리뿐이고 보이는 것은 아스팔트였는데, 송치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자동차 소리는 멀어지고 시선에는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다. 산등성이와 천천히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17번 국도는 거대한 교각을 지나 송치 터널 안으로 들어간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송치길을 걷다 보니 풍력발전기도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길옆 밭에서 정말 오랜만에 피마자를 밭을 만났다. 이제는 농가에서도 거의 보지 못하는 피마자는 아주까리라고도 불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동서양 모두에서 약용 및 식용으로 활용해 왔던 식물이다. 잎을 말려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피마자기름은 보습이나 두발 관리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전쟁 때는 윤활유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어깨동무를 하고 부르던 고교 야구 응원가의 대표주자 중의 하나였던 아리랑 목동에 나오는 아주까리로 익숙하다.

꽃 바구니 옆에 끼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아주까리 동백꽃이 제 아무리 고와도
몽매간에 생각나는 내 사랑만 하오리까
아리 아리 동동 쓰리 쓰리 동동
아리랑 콧노래를 들려나 주소

 

노래에서 꽃의 화려함을 동배꽃과 견줄 만큼 피마자의 꽃도 화려하다.

 

송치길에는 단풍나무과의 가로수가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가을이 되면 노랗고 붉은 단풍이 일품이라고 한다. 정확한 수종은 모르지만 단풍나무과의 나무답게 헬리콥터 날개 같은 열매가 맺혔다.

 

구불구불 올라가지만 대체로 남동 방향으로 이동하던 길은 방향을 바꾸어 남서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풍력 발전기도 더욱 가까워지고 날개가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사계절 좋은 바람이 불어 효율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숲이 깊다 보니 우람한 두 나무가 연리지가 된 곳도 우연히 만나게 된다. 누군가는 연리지를 깊은 사랑의 상징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우람한 두 개의 나무가 하나가 된 모양새를 보니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대치중인 경쟁자의 모습을 보는 느낌도 있다.

 

깊은 숲길을 자랑하는 송치길을 걷다 보니, 만약 이 길이 여전히 큰 차들이 오가는 국도였다면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리며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터널이 만들어지면서 옛길은 이렇게 도보 여행자들의 공간이 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다.

 

어느덧 길은 송치재 고개를 넘으면서 순천시 월등면에서 서면 학구리로 진입한다.

 

종점인 선평삼거리까지 8Km가 남은 지점, 이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간다. 유일한 어려움이라면 강렬한 태양뿐이다.

 

송치재 고개를 떠난 길은 송치 터널을 빠져나온 국도가 있는 방향으로 계곡에 위치한 학구리 마을을 내려간다.

 

학구리 버스 정류장에서 17번 국도와 만나면 길은 굴다리를 통해서 국도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국도 건너편으로 넘어온 길은 국도 갓길을 걸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오래되어 잘려 나간 백의종군길 리본 흔적만 보아도 반갑다.

 

국도의 갓길을 걷다 보니 예전에 별도의 보행로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흔적만 있을 뿐이다. 잘 관리했으면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길은 송치재 휴게소로 들어선다. 지금도 영업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휴게소 흔적만 있었다. 휴게소에 가면 뭔가 요기를 하거나 간식이라도 사 먹을 수 있다는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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